코로나19 여파로 영화관 관객 수가 1주일 만에 절반 이상 감소했다. 서울 시내 한 영화관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고성준 기자
#시사회 취소 개봉 연기 “메르스보다 심해”
“저희도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어요. 차라리 2월 초쯤에 눈치 보지 말고 그대로 시사회라도 진행했으면 좋았을 걸,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돼서….”
영화계 관계자들은 한숨부터 쉬기 바빴다. 코로나19가 ‘중국발’로 표현돼 국내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 무렵인 지난 1월 중순부터 영화계 관계자들은 눈치 보기에 들어갔다고 했다. “시사회와 개봉을 미루느냐, 예정대로 그냥 진행하느냐”의 문제였다. 한 영화의 일정이 틀어지면 다른 영화들도 줄줄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눈치싸움은 지난 2월 둘째 주까지 계속됐다.
영화계가 기류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2015년 메르스 바이러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로 인한 여파를 한몸에 받은 기억이 있어서다. 당시 개봉을 앞두고 있던 ‘연평해전’이 제일 먼저 개봉을 연기했고, 예정돼 있던 VIP 시사회 등 행사를 전면 취소했다. 비슷한 시기 제작보고회와 쇼케이스를 계획했던 ‘암살’과 ‘나의 절친 악당들’ 등의 작품도 일정을 취소했다.
다만 지난 1월부터 2월 초순까지는 국내에서 코로나19의 위험성이 지금처럼 뚜렷하진 않은 상황이었다. 영화계에서 일정 변경을 놓고 주저하던 사이 갑작스레 신천지예수교 대구교회의 2차 집단 감염으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는 게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실제로 2주 전 주말(2월 14~16일)까지 극장가를 찾은 관객들은 152만 873명으로 그 전주 관람객 수인 100만 7756명보다 증가한 추세를 보여 왔다. 이는 ‘정직한 후보’ ‘작은 아씨들’ 등 기대작의 개봉과 맞물린 효과로 파악됐다. 두 작품은 일정을 연기하지 않고 예정대로 2월 12일에 동시 개봉한 바 있다.
코로나19 여파는 신천지교회 2차 집단 감염 이전과 이후로 나눠진다. 사진은 전국신천지피해자연대 회원들이 2월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연 신천지 해체와 신천지 교주 이만희 총회장의 구속수사 촉구 기자회견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박정훈 기자
문제는 집단 감염이 불거져 다중이용시설 전반으로 불똥이 튀면서 시작됐다. 지난 2월 19일 신천지 대구교회 신도 가운데 한 명이 31번 환자로 확진되고, 소강 상태였던 확진자 수가 단 며칠 만에 수백 명으로 불어나면서 관객들의 극장가 발길이 끊겼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진 뒤인 2월 21~23일 전국 관객 수는 총 68만 747명가량으로 전주의 절반조차 되지 않았다. 이는 메르스 직격탄을 맞았던 2015년 6월 관객 수(200만 명 이상)에 비해서도 턱없이 적은 수치다.
결국 영화계는 지난 2월 24일부터 모든 시사회와 각종 영화 행사의 전면 취소 및 연기에 들어갔다. 이날 예정돼 있던 신혜선‧배종옥 주연의 영화 ‘결백’의 언론배급시사회와 배우 인터뷰가 취소됐으며, 디즈니‧픽사의 애니메이션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 역시 시사회를 취소하고 개봉 일정을 3월에서 4월로 연기했다. 전원 여성 배우들의 출연으로 눈길을 모았던 ‘콜’도 개봉을 잠정 연기한 상태다. 정확한 개봉 일정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제훈‧안재홍‧최우식‧박정민‧박해수가 호흡을 맞춰 눈길을 끌었던 영화 ‘사냥의 시간’도 2월 25일 예정돼 있던 시사회를 취소하고 배우들의 인터뷰 일정도 무기한 연기했다. ‘기생충: 흑백판’ ‘이장’ ‘밥정’ ‘나는 보리’ ‘후쿠오카’ 등 2월 말과 3월 초 개봉을 계획했던 모든 작품들도 잠정 연기 공지를 밝혀온 상태다.
배우 진서연이 자신의 인스타스토리에 올린 마스크 폭리 업체와 정부 비판글. 문제가 되자 마스크를 구비하지 않은 촬영 현장 속 어려움을 호소했다. 사진=진서연 인스타스토리 캡처
#마스크 없는 드라마 현장…배우‧스태프 불만도
제작발표회나 쇼케이스는 온라인으로 진행하면 된다지만, 방송을 앞두고 촬영을 멈출 수 없는 드라마 현장의 상황은 더 복잡하다. 영화처럼 일부 손해를 보더라도 일정을 기한 없이 미룰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보니 강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실제로 제작발표회나 기자회견 등 일회성 행사는 이미 취소됐거나 온라인 생방송으로 중계하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넷플릭스의 ‘킹덤 시즌2’, tvN ‘메모리스트’와 ‘하이바이, 마마’, SBS 드라마 ‘하이에나’ 등의 제작발표회가 온라인 중계를 공지한 바 있다.
문제는 현재 방송 중이어서 촬영을 진행하고 있는 작품의 경우다. 스태프와 출연진 등 다수 인원이 밀폐된 공간이나 근거리에서 함께 있을 수밖에 없는 현장 속 우려와 불만이 동시에 커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월 26일 자신의 인스타스토리에 마스크 폭리 업체를 겨냥하며 정부를 비판한 배우 진서연도 촬영 현장의 열악함을 호소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이 마스크 폭리 업체와 정부를 함께 비판한 이유로 “100명이 다 되는 배우들과 스태프들, 매일 좁은 공간에서 지지고 볶는다. 이 상황을 중지할 수도 없고 마스크도 없단다. 아니 못 구한다. 그래도 촬영을 해야 한다니 기가 막힌다”라며 현장에서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한 대책 마련이 제대로 되지 않았음을 꼬집었다. 진서연은 현재 OCN 드라마 ‘본 대로 말하라’에 출연 중이다.
배우 박해진은 드라마 ‘꼰대인턴’ 촬영 현장에 가글과 1회용 마스크를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마운틴무브먼트 제공
배우가 먼저 현장 지원에 나선 사례도 있다. MBC 새 수목드라마 ‘꼰대인턴’을 촬영 중인 배우 박해진은 일회용 가글 500개와 마스크 1000장을 기부해 눈길을 끌었다. 앞서 박해진은 보건복지부와 소방청을 통해 ‘국민 예방 코로나19 안전수칙’ 영상의 제작비 지원과 출연 재능 기부 등을 함께 진행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일부 드라마 촬영 현장에는 발열 체크기를 구비하는 등 코로나19 감염 피해 확산 방지를 위해 지원하고 있다. 다만 이를 두고 “실효성이 있는 대책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는 이야기도 새어나온다.
이에 대해 한 드라마 스태프는 “현장에 들어오는 사람마다 열을 재고, 기침이나 발열 기운이 있는 사람은 업무에서 제외하는 게 현재 방침”이라면서도 “하지만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는 사람의 경우엔 바로 배제하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마스크를 끼고 일을 하면 다행인데 스태프들은 끼더라도 배우들은 촬영 중에 마스크를 낀 채 찍을 순 없지 않나. 대책이라고 해도 주먹구구식이란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짚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