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한 의료진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의료진은 부족해지고 있다. 음압병실 부족으로 코로나19 확진자를 수용할 수도 없는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2월 27일 이미 전국 음압병실 수를 초과했다. 2월 27일 오후 5시 기준 코로나19 확진자는 1766명에 달한다. 반면 전국 음압병실은 1027개에 불과하다. 확진자 1477명이 나온 대구·경북 지역의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대구의 확진자는 1132명, 경북의 확진자는 345명이지만 음압병실은 각각 54개, 34개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구·경북 지역에선 자가격리자가 양성 판정을 받아도 격리 병실에 입원하지 못하고 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2월 26일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이날 추가 확진자가 178명 발생해 전체 확진자 677명이 됐지만 이 가운데 368명만 격리 입원 조치됐다고 밝혔다. 나머지 309명은 최대한 빠르게 격리 입원시키겠다고 설명했다. 결국 2월 27일 13번째 코로나19 사망자는 자가격리하며 입원을 기다리다가 사망했다.
무조건적인 자가격리 조치도 답은 아니다. 자가격리자가 자가격리 수칙을 어기고 밖을 활보한다고 해도 이를 통제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를 감시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를 인식한 듯 권 시장은 자가격리 수칙을 어기는 인원을 엄중히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격리에 협조하지 않았을 땐 형사고발돼 300만 원 이하 범칙금이 부과될 수 있다.
대구 두류공원 야구장에 전국에서 차출된 119 구급대 앰뷸런스들이 코로나19 확진자 이송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시간이 흐를수록 의료진 가용 인력은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확진자가 발생하면 해당 보건소나 진료실이 폐쇄되거나 확진자와 접촉한 의료진이 연쇄적으로 자가격리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 예로 대구의료원에선 2월 22일 기준 의사, 간호사 등을 포함해 의료진 88명이 자가격리 대상자였다. 2월 26일 기준 자가격리 해제를 계산해도 자가격리 의료진은 100명이 넘는다고 알려졌다.
대구 서구보건소 감염예방팀장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뒤 뒤늦게 신천지 교인이라고 밝혀 논란이 됐던 2월 24일 보건소 직원 50여 명은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대구의료원 일선에서 방역에 힘 쏟고 있는 한 의사는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점점 의료진이 부족해진다. 의료진들은 하루 3시간 정도만 자면서 일한다. 이미 감당할 수 있는 선은 지난 것 같다”며 “모두들 체력적으로 많이 지쳐있다. 코로나19가 아닌 과로로 먼저 나가떨어질 것 같다”고 전했다.
2월 27일엔 코로나19 관련 신천지 교인 전수조사를 하던 전주시 공무원이 업무를 마치고 귀가한 뒤 사망했다. 평소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면서 고통을 호소했다고 알려졌다.
무엇보다 의료진의 코로나19 감염은 특히 걱정거리다. 병원을 찾았던 환자에게 2차, 3차 더 큰 확산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질본은 의료진 감염이 있는 병원과 협의 하에 코호트 격리 조치를 하고 있다. 2월 22일 신생아실 간호사가 확진 판정을 받은 한마음창원병원은 질본과 협의해 2월 26일부터 코호트 격리에 들어갔다. 외래진료 환자로 확산을 막기 위해서다.
신생아실 간호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2월 26일 코호트 격리에 들어간 한마음창원병원. 사진=연합뉴스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전국의 뜻있는 의료진이 방역 일선에 동참하고 나섰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을 향한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2월 24일 대구·경북 지역 의료 지원을 호소한 지 이틀 만에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의료진 205명이 지원을 신청했다. 대한의사협회도 2월 26일 의료진을 모집해 대구·경북 지역에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자가격리에 들어간 경북대학교병원 인턴이 2주가 지나지 않았지만 증상이 없다며 조기 복귀를 요청하는 편지를 병원장에게 쓴 일이 전해지기도 했다. 또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장 직권으로 동원할 수 있는 시립병원의 음압병실을 대구·경북 지역 코로나19 확진자에게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상황이 악화하면서 방역에 실패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기도 한다. 지금까지 해온 추적·봉쇄식 방역은 이미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대한감염학회 등 국내 11개 감염·역학 관련 학회가 함께한 ‘범학계 코로나19 대책위원회’는 22일 기자회견에서 봉쇄식 전략에서 피해 최소화 전략으로 방역 체계를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구·경북 지역과 타지역 방역 방법을 다르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방역 전문가인 박찬병 서울시립서북병원장 “대구·경북 지역은 추적·봉쇄식 방역이 어려울 정도로 방역이 뚫렸다고 봐야 한다. 타지역으로 확진자를 이동시키기보단 증상의 경중을 따져 증상이 심하지 않은 인원은 자가격리하고 심한 인원을 격리 입원시키는 식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병상 부족 문제는 곧 전국적으로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마음창원병원 의료진이 방문자에게 손소독제를 건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어 박 원장은 “현재 음압병실 여유가 있는 지역은 증상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지금처럼 추적·봉쇄식 방역으로 관리하면 된다고 본다. 초기 방역을 굉장히 잘해왔다. 신천지 교인의 대거 감염까지 예상해서 통제하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박 원장은 “중국인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중국과 교역이 활발한 국가에선 오히려 밀입국 등을 통해 음지에서 계속 들어오게 된다. 차라리 양지에서 잡아내는 게 옳은 선택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정보를 상당히 투명하게 하고 있다. 조심은 해야겠지만 과도한 공포를 가질 필요는 없다”고 전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