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하루 수십 명이 탑승하는 대중교통인 택시의 방역체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서울 시내 한 도로에서 택시가 운행하는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최준필 기자
지난 25일 서울시청역 인근에서 택시를 타보니 기사가 마스크를 옆에 둔 채 착용하지 않은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같은 날 서울 회기역 인근에서도 마스크 없이 운행하는 기사들의 모습이 어렵지 않게 포착됐다. 2년째 법인택시를 몰고 있는 A 씨(64)는 “하루 종일 택시 안에 있는데 마스크를 끼면 답답해진다. 안경을 낀 채 마스크를 쓰면 습기가 차 앞도 안 보인다”고 했다. 그는 “마스크를 쓴 채 손님을 받으면 불친절하다며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고도 했다.
일부 기사들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승객이 줄고 마스크 가격이 뛰어 부담스럽다고도 했다. 소속 법인택시회사나 개인택시조합 등에서 기사들에게 마스크와 소독제를 공급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정부 차원의 방역용품 지원이 없다 보니 대부분 기사 스스로 구비해야 하는 탓이다.
정부가 조합 등을 통해 마스크 착용과 차량 소독 등 방역을 권고하는 문자를 보내고 있지만, 감염병 확산에 의한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방역 의무를 강제하고 관리·감독하는 지침과 체계는 없는 상황이다.
2년째 서울 영등포에서 법인택시 기사로 일하는 B 씨(34)는 “메르스 때는 공급을 해줬는데 이번엔 제공되는 마스크가 없다. 회사에서는 하루 한 번 차량 내 소독제를 뿌리는 방식으로 소독해주는데, 회사마다 다른 것 같다”며 “마스크를 매일 구매해서 쓰는데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뒤 수입의 3분의 1이 줄어든 상황이라 부담”이라고 했다.
경기도 구리시에서 개인택시를 몰고 있는 C 씨(60)는 “시와 조합에서 마스크 착용하라고 매일 문자가 오고 제 안전도 중요하니 별도 구매해 쓰고 있는데, 가격도 많이 오르고 파는 곳이 드물어 쓰던 것을 또 쓴다”고 했다.
문제는 택시기사들은 불특정다수를 상대하는 데다 택시 공간이 좁고 밀폐돼 있어 감염 노출이 쉽다는 점이다. 이동 동선도 길고 넓어 코로나19가 지역사회에서 빠르게 확산하는 지금, 택시가 지역 간 감염병을 옮기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밀집된 공간 안에서 환자가 기침을 하면 그것도 문제지만 환경 소독이 잘 안되면 청소하는 과정에서도 오염될 수 있다”며 “말을 주고받을 경우에도 비말이 날아올 수 있으므로 감염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코로나19는 환자가 기침·재채기를 하거나 대화 도중 비말과 바이러스가 방출돼 공기와 함께 호흡기로 흡입되면서 퍼지는 등 비말감염 형태로 전파된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 경기도 안양과 충북 청주에서 택시기사 2명이 감염됐는데 잠복 기간 승객 수십 명을 태우면서 전파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 21일 확진 판정된 청주 개인택시 기사 D 씨(36)는 19~20일 택시를 50차례 운행하며 승객 62명을 태웠다.
지난 22일 확진 판정받은 안양 거주 택시기사 E 씨(64)도 자가 격리 및 확진 판정 전까지 30명가량의 승객과 접촉했다. E 씨는 서울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던 중 서울 종로구 30번 확진자를 태운 뒤 접촉자로 분류돼 18일부터 자가 격리 중이었다. E 씨가 태운 30번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은 16일 오후부터 자가 격리 전까지 안양시가 공개한 동선을 보면, E 씨는 16~17일 신용카드 사용 승객 28명을 태웠다.
해외에서는 택시기사와 그 가족이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례도 있다. 외신에 따르면 대만 중부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던 60대 남성이 최근 사망했고, 그의 50대 동생도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일본에서도 가나가와 현의 한 80대 여성이 지난 13일 코로나19로 사망했고 같은 날 사위인 일본 도쿄 택시기사도 확진 판정을 받았다.
또 다른 문제는 현금 결제 시 승객이나 차량 추적이 어렵다는 점이다. 청주시는 택시기사가 확진 판정을 받은 뒤 지난 22일부터 청주 택시기사가 50차례 태운 탑승객 확인에 나섰으나 나흘째인 지난 25일 오전까지도 현금결제 7건에 대해 신원파악을 못하다 25일 오후에서야 경찰과 공조해 모두 신원을 확인했다. 감염 우려가 높은 택시 승객들의 신원 파악이 빠르게 이뤄지지 못하면, 그동안 접촉자가 늘어나면서 확산 가능성은 높아진다.
시민과 최접점에 서 있는 택시기사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운행하는 경우가 발견돼 2~3차 감염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역 앞에서 시민들이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최준필 기자
그럼에도 정부는 정작 택시 방역을 의무화하는 법과 체계를 마련하지 않은 상태다. 국토교통부(국토부)는 기사들 가운데 발열, 호흡기 증상을 보이는 의심증상자가 있으면 승무를 정지시키고 차량 내 손소독제 비치 및 내부 소독을 하라고 법인회사와 조합을 통해 요청했다. 지난 1월 24일부터 조합 등에 공문을 보내 마스크를 착용하고 방역을 강화해달라는 독려 문자를 하루 2차례씩 기사들에게 발송하고 있으며, 지난 2월 7일부터는 지자체에 현장 점검을 요청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대중교통 방역 방식과 주체, 책임 소재 등을 규정하거나 마스크 착용과 손 세정 등을 의무화하고 관리·감독하는 지침이 없어 기사들의 선택에 맡기는 상황이다.
방역용품 지원 예산도 없다. 국토부는 일단 일반택시복지재단을 통해 마스크 20만 장을 구매, 25일 10만 장을 기사들에게 공급했으며 나머지는 3월 초 제공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국 법인택시기사는 10만 명, 개인택시 기사는 16만 명으로 총 26만 명에게 지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국토부 관계자는 “비상시 기사들의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는 법은 없지만 업계에 협조공문을 보냈고 지자체뿐 아니라 국토부 차원에서도 불시에 점검하려 한다”며 “의심증상자 승무 정지를 요청하는 등 최근엔 강도도 높이고 있다”고 했다. 이어 “질병관리본부에 택시기사들을 위한 마스크를 공급해달라고 건의서를 냈다”며 “택시 종사자들을 통해 전파되는 일이 없도록 지자체, 택시단체들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조합을 통해 방역 조치를 요구했고 지난 20일부터 법인택시 현장 점검에 나섰으나 권고에 그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서울에는 법인택시 2만 2000대와 개인택시 5만 대 등 총 7만 2000대가 운행 중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사업개선명령에 따라 지자체마다 전염병 발생시 운송사업자에 마스크 착용을 권고할 순 있지만 강제사항은 아니다”라고 했다. 여객법 23조 1항 9호에 따르면 국토부 장관이나 시·도지사는 필요시 운송사업자에게 안전운송 확보와 서비스 향상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관련 의무사항이 담긴 국가 지침이나 지자체 조례는 없다는 얘기다.
택시가 방역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은 과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 때도 제기됐다. 앞서 2018년 메르스 첫 확진 환자가 쿠웨이트 의료기관을 방문한 뒤 인천공항으로 입국해 병원으로 이동할 때 택시를 탄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해당 택시기사는 첫 감염자를 태운 이후 23차례 걸쳐 승객을 태운 사실이 신용카드 결제 내역 등을 통해 확인되면서 기사와 승객들이 14일간 격리됐다. 당시 택시 방역이 뚫렸다는 지적이 잇따랐으나 2년이 지난 지금도 별다른 대책은 마련되지 않은 셈이다. 택시기사 등 업계부터 강제성 있는 방역체계와 기사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택시업계 관계자는 “강제성이 없다 보니 여러 이유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기사가 많다”며 “노인들은 앱으로 택시를 호출하기보다 길에서 타고 현금결제를 많이 하기에 추적도 힘들다”고 우려했다. 이어 “의심환자가 탄 차량이 어떤 차량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수많은 기사와 이용객들이 무방비로 감염병에 노출되고 있다”며 “체계화된 방역 지침을 마련하고 이를 준수토록 강제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비상시국에서는 운전 중 통화하면 단속하듯 마스크 미착용 시 벌금을 매기거나 신고포상제 등을 만들어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며 “안전교육 등 홍보도 강화하고 기사들도 인식 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