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사람은 보수정당에서 세종대왕님이 나와도 안 찍는다.”
세종대왕에 대해 존경심을 가진 이들이 많다 보니 사람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그가 진영논리에 지나치게 사로잡혔다고 하는 이도 있었고, 어떤 이들은 ‘진보에서 이완용이 나와도 찍을 거냐?’며 되묻기도 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세종대왕이 진짜 총선에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서민 단국대 교수
“한글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이제 나라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입당과 동시에 세종은 여론조사기관 환타지미터에서 발표한 차기 대선주자 1위가 됐다. 하지만 이건 시련의 시작이었다. 다음 대통령 후보를 이미 정해놨던 한민진당 지지자, 일명 한민빠들이 세종을 경계하게 됐으니 말이다.
실제로 세종이 두 달 뒤 열린 보궐선거에 나갔을 때, 한민빠들은 세종이 비만인 점을 공격했다. 비만은 그가 잘 먹고 잘살았다는 증거이며, 이런 사람이 정치인이 되면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없다는 게 그들의 논리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민빠들은 경쟁 후보를 지지하자는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선거 결과 세종은 압도적인 표 차로 당선됐지만, 한민빠들 공격은 계속 이어졌다. 패스트트랙을 놓고 여야가 대치할 때 의회에서 폭력은 안 된다고 생각한 세종은 싸움에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뒤에서 엉거주춤 서 있는 사진이 한민빠들에 의해 여기저기 퍼 날라지면서 그는 졸지에 비겁한 정치인이 됐다. 프로야구 경기에서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질 때 참여하지 않는 선수에겐 ‘너도 세종이냐?’는 비아냥거림이 따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종은 묵묵히 자기 일을 했다. 민생과 경제에 도움을 주기 위해 의원들의 모임을 만든 게 대표적인 예로, 그들이 집보다 현장을 전전한다고 해서 사람들은 그들을 ‘집현전’이라 불렀다. 집현전은 민생법안 수십 개를 발의하고 최저임금 상승폭을 줄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한민빠들은 세종이 ‘벌써부터 계파정치를 한다’고 비난했다.
2019년 8월, 대통령은 민정수석 출신 정치인을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했다. 검증과정에서 입시비리와 사모펀드 투자를 비롯한 온갖 의혹이 제기됐다. 한민진당은 적극적으로 그를 옹호했다. 한 의원은 “맘카페로부터 사랑을 받는 게 그의 죄”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세종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왜 저런 사람을 법을 다루는 장관직에 임명하는 건가요? 그를 임명한다면 공정성이라는 가치가 훼손됩니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한민빠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세종에겐 배신자 프레임이 씌워졌지만, 그는 이런 비난에 흔들리지 않았다. 청와대 참모들이 작당해 대통령의 친구를 시장으로 만들어준 소위 선거개입 사건이 공론화됐을 때, 세종은 철저한 조사와 처벌을 주장했다. 이제 당내에서도 그의 편은 없어졌고, 집현전 의원들마저 그에게 등을 돌렸다.
“미안해. 다음 선거가 코앞인데 나도 내 살길 살아야지.”
2020년 2월, 한민진당은 세종의 지역구를 경선에 붙인다고 발표했다. 각종 방송과 집회에서 논란의 전직 법무부 장관을 옹호했던 한 변호사가 그와 겨루게 됐다. 권리당원 투표 50%와 일반인 투표 50%를 더해서 후보자를 정하는 이 선거에서 세종은 참패했다. 권리당원 대부분을 한민빠들이 차지하고 있는 데다, 그들이 가족과 친지 등을 동원해 일반인 투표를 조종했기 때문이었다. 경선에서 탈락한 뒤 세종은 정치판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국민 대부분은 아쉬워했지만, 한민빠들은 자신들이 이겼다며 축제를 벌였다.
가상이긴 하지만, 진영논리가 지배하는 지금의 거대 정당에 세종 같은 사람이 들어와 봤자일 듯하긴 하다.
“유시민 씨, 그래서 당신 주위에는 세종대왕 같은 유능한 사람이 없는 거예요.”
서민 단국대 교수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