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 전경. 사진=박은숙 기자
2016년 총선 때 여의도엔 조직적으로 댓글을 다는 업체들이 공공연하게 존재했다. 이들은 특정 후보로부터 돈을 받고 유리한 댓글을 작성했다. 당시 한 업체를 운영했던 인사는 “원래는 댓글 회사가 아니었다. 평소엔 정치권으로부터 부탁 받은 여론조사나 정책 업무를 했지만 선거 때가 오니 댓글 작성 요청이 전부였다”면서 “불법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많은 업체들이 하고 있었고, 또 총선이라는 대목이 매번 오는 것도 아니니 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불법으로 댓글을 달아 여론을 조작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면서 사회적 문제가 됐고, 2018년 이른바 ‘드루킹’ 사건이 터지면서 단속이 강화됐다. 제법 이름이 알려졌던 업체들은 종적을 감췄다. 앞서의 업체 인사는 “단속이 심해졌다고 사라진 건 아니다. 오히려 댓글 작성이 교묘해졌다. 3~4명 소규모로 움직인다”면서 “인터넷 포털과 SNS 등에 정치인들로부터 돈을 받고 그들이 원하는 형태의 댓글을 달거나 또는 상대 진영을 비방하는 글을 올린다”고 말했다.
최근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선 이런 ‘댓글 부대’가 다시 은밀히 활동하고 있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일요신문은 이를 취재하던 중 여권 주류인 친문 지지자 일부가 사무실을 빌려 댓글 작성을 통한 여론 조작 중이라는 제보를 받았다. 2월 19일 이들이 상주하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 마포 인근 한 건물을 찾아가봤다. 2층에 자리 잡고 있는 사무실 앞엔 아무런 표시가 없었고,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이곳에 출근하고 있다는 관계자 한 명에게 전화를 걸어 사무실 앞에 와 있다고 하니 문이 열렸다. 그는 “이곳은 지인들 몇 명이 여러 사업 논의를 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임시로 만든 사무실이다. 보통 4~5명이 고정으로 나온다”면서 “아직 특별한 일을 하는 게 없어서 인터넷을 주로 하는데, 댓들도 달고 그러긴 한다. 조직적으로 뭘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최근 총선을 앞두고 정치 쪽 댓글을 주로 다는 것은 맞다”고 덧붙였다.
눈길을 끄는 점은 이 사무실에 나온다는 인물 중 한 명이 과거 불법 댓글 작성 혐의로 사법처리를 받은 경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앞서의 관계자는 “몰랐다”면서 “자발적으로 모여서 이렇게 댓글도 달고 하는 게 뭐가 그리 큰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자신과 동료들이 달았던 댓글들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대부분 문재인 대통령을 칭찬하거나 1야당인 미래통합당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불법일 가능성이 높다. 주체, 방식 등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형법상 업무방해 또는 정보통신망법 등이 적용된다. 공무원이 연루됐다면 국가공무원법상 정치중립의무 위반이다. ‘드루킹’은 업무방해로 기소된 바 있다. 앞서의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엔 주로 ‘코로나19’ 관련 기사에 댓글을 달았다고 했다. ‘미래통합당이 신천지를 옹호한다’는 글을 집중 작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지는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코로나19 전까지만 해도 주로 총선 기사에 글을 썼다. 공격해야 할 정치인을 선정, 관련 기사나 그의 SNS 등에 댓글을 달기도 한다. 소위 말해 좌표를 찍는다고 한다. 또 야당이나 언론에서 나오는 가짜 뉴스를 바로 잡는 역할도 한다. 우리 쪽에서 댓글을 달면 친문 네티즌들이 같이 따라온다. 우리가 선봉장 역할을 하는 셈이다. 강조하지만 과거 댓글 부대처럼 누구로부터 사주를 받거나, 대가를 받지도 않는다. 우리가 좋아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 차원이다.”
법적 문제와는 별개로 순수한 의도라는 이들의 말과 달리 정치권과 연관돼 있을 의혹도 제기된다. 이 사무실에 나오고 있는 특정인이 친문 의원과 함께 일했던 경력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의원은 사무실에 직접 방문한 적도 있다고 한다. 사무실 관계자는 “친분 때문에 두 번 정도 들르긴 했지만 우리가 하는 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이 의원 측도 “하루에도 수십 개의 일정을 소화하는데, 그중 하나였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1야당인 미래통합당은 물론 민주당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우선 통합당 한 중진 의원은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상 선거 유세가 중요해졌다. 따라서 정치권과 결탁해 댓글을 다는 세력이 기승을 부릴 수 있다”면서 “그들이 근무하는 사무실 임대료 등 비용이 누구에게 나왔는지 등을 철저하게 파헤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무실 관계자는 “임대료는 사비를 걷어 낸다”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오해를 살 수 있다” “적절하지 못하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비문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강성 친문 지지자들로부터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 며칠을 계속해서 공격을 당하다보면 결국 백기를 들 수밖에 없다”면서 “혹시 여권과의 관련성이라도 나오면 악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정치권에선 이들뿐 아니라 친문 지지자들로 꾸려진 또 다른 복수의 팀이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도 했다.
한 친문 의원은 “선거를 앞두고 지지자들이 모여 그런 식으로 지원을 하는 것에 대해 우리가 뭐라고 할 순 없다. 친문뿐 아니라 아마 다른 정치인들도 여기서 자유롭진 못할 것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지지자들이 판단해 결정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솔직히 우리도 곤혹스럽긴 하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문 대통령을 옹호하거나 근거 없는 내용으로 야당을 공격하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