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가운데 연차 사용과 근무시간 단축 실시와 관련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월 28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앞에 붙은 임시 휴점 안내문. 사진=연합뉴스
지난 2월 27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직원들에게 3월 2일, 9일에 각 팀별로 2개 조로 나눠 일괄적으로 휴무를 시행하라고 공지했다. 이날 퇴근 전까지 팀별로 연차휴가 계획서를 제출하고 이를 시행하지 않을 경우, 사유를 적도록 했다. 직원이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신세계백화점은 2월 28일 전관을 대상으로 임시 휴점에 들어갔고 방역을 실시했다.
신세계백화점 한 직원은 “격리 대상자가 매니저에게 말하고 검사를 받았음에도 직원들에게 아무 말이 없었다”며 “강남점은 2월 28일 오전에 검사결과가 양성으로 나오자 10시 20분에 휴점을 결정하고 직원들에게 알렸다”고 털어놨다. 이어 “대구점, 경기점의 경우, 확진자가 나와서 다음날 임시휴업을 하면 연차나 일주일에 2개 주어지는 휴무 중 선택해서 사용하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롯데백화점은 직원들에게 3월에 연차 사용을 권장하면서 근무시간을 1시간 단축한다고 공지했다. 연차는 최소 5일을 소진하도록 공지했다.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에서 오전 9시 30분에서 오후 5시 30분으로 1시간 단축됐다. 단축된 시간만큼 임금도 삭감됐다.
롯데백화점 한 직원은 “연차 계획을 팀별로 취합해서 결재받아야 했고 이를 거부할 시 무급휴직을 선택해야만 했다”며 “근무시간 단축은 월급이 삭감되는 일인데 직원들에게 어떠한 동의나 협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세계·롯데백화점 측은 직원들에게 권장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2월 28일 확진자가 나오면서 오픈 전 출근한 직원들을 모두 퇴근하도록 하고 연차 소진이 아닌 출근 인정을 해줬다”며 “3월 2일, 9일 휴무는 코로나19가 3월 1, 2주 차가 고비라는 예상이 많아서 연차를 사용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지 일방적으로 하라고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원하지 않는 사람은 출근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롯데백화점 측은 “코로나19 상황으로 회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직원들에게 이해, 동의를 구하고 3주에 걸쳐 연차를 사용하면 좋겠다고 권장한 일이지 연차를 회사 마음대로 강제로 입력할 수는 없다”며 “특히 아이를 키우는 직원들은 개학이 늦춰지면서 연차를 요청했고 회사 내 가족돌봄휴가는 무급이기에 전체적으로 연차 사용을 권장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근무시간 단축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사람들 간 접촉을 줄여 감염을 예방하고자 시행했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로 직원들에게 연차 소진, 단축근무 등을 강요하는 곳이 신세계, 롯데만은 아니다. 직장갑질119는 일부 사업장에서 정부 지침을 어기고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을 노동자에게 전가한 사례를 지난 3월 1일 공개했다. 갑질 사례는 강제연차, 무급휴가, 임금삭감, 보호조치 위반 등 다양했다.
서울 소재 한 호텔 직원 A 씨는 “무급휴직 실시 공고라는 공문을 보내 전 직원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종료시까지 무급휴직(휴가) 신청서를 받고 있다”며 “회사는 자율이라고 말하지만, 객실관리팀을 시작으로 호텔식당 등 영업장 휴업을 통해 사실상 강제로 휴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B 씨는 “월급이 밀리기 시작하더니 코로나 핑계를 대면서 부서별로 돌아가면서 일주일씩 무급휴가를 가거나 부서별로 한 명이 그만두라고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계약직 사원인 C 씨는 “코로나로 회사 상황이 안 좋아서 직원 감축을 진행하면서 근무시간 감소로 인한 추가수당 제외, 기본급 일부를 회사에 기부라고 한다”며 “동의하지 않으면 권고사직으로 처리를 하겠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연차소진, 단축근무 강요…근로기준법 위반
회사가 일방적으로 연차휴가를 쓰도록 강제하는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이다. 또 그 시기를 사측이 일방적으로 직원에게 통보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60조에 따르면 사용자(회사)는 1년간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15일의 유급휴가를 줘야 한다. 휴가 시기는 근로자가 자유롭게 지정하도록 보장돼야 한다. 근무시간을 단축하는 일도 회사와 직원이 근로계약서를 바탕으로 맺어진 관계이기 때문에 동의를 받아야만 하는 부분이다.
노무법인 정명 안태은 노무사는 “연차는 근로자의 청구가 우선적이며 회사가 일방적으로 쓰게 하고 시기를 정해주는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며 “단축근무도 근로조건이 계약서에 쓰여 있는데 근로자 동의 없이 바꾸는 건 있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감염병 예방 및 확산방지를 위한 목적을 위해서 내린 결정도 마찬가지다. 고용노동부는 ‘코로나19 예방 및 확산방지를 위한 사업장 대응 지침’을 배포했다. 이에 따르면 사업주는 자체 판단으로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입원·격리되지 않은 근로자를 감염병 확산방지를 위해 출근시키지 않을 때, 또 그 밖의 이유로 휴업한다면 사업주는 휴업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직장갑질119 측은 “입원·격리 대상자가 아님에도 사업주가 직원을 출근시키지 않으면 평균임금 70%에 해당하는 휴업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며 “또 회사가 경영상 휴업하더라도 사용자의 책임 있는 사유(고의·과실)로 휴업한다면 민법 제538조 제1항에 따라 휴업기간 동안 임금전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용자의 고의·과실을 입증하기 어렵다면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평균임금의 70% 이상 휴업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보탰다.
정부가 코로나19 여파로 사용자와 노동자가 갈등을 겪는 사업장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코로나19 영향으로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고용유지가 어려운 회사는 고용노동부에 고용유지금을 신청할 수 있다”며 “정부는 적극적으로 각 분야 산업들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 조사해서 고용유지 문제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물가가 오르고 사람이 없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직접 영향을 받는 산업에 종사하는 직원들이다. 정부와 기업은 협력을 통해 노동자에게 경제적 손실로 이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