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텅텅 비어버린 장례식장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없다. 사진=연합뉴스
#은평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생긴 일
조문객 없는 장례를 치르게 된 건 코로나19 때문이다. 2월 21일 은평성모병원에서는 환자 이송 업무를 담당하던 직원이 처음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이후 이 병원에서 모두 14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은평성모병원과 관련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속하게 늘어나자 병원은 이튿날인 22일부터 응급실과 외래진료를 잠정폐쇄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루 입원 환자만 600명이 넘고 병원 전체 인력이 2000여 명에 달하는 은평성모병원에서 확진자가 속출하자 서울시까지 나서 시민들에게 관련 안내문을 띄웠다. 서울에서는 최대의 집단발병 사례였기 때문이다. 2월 29일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와 간병인, 협력업체 직원을 포함해 총 2725명이 검체 검사를 받아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병원은 4일 현재 폐쇄 중이다.
은평성모병원에서 확진자가 나온 뒤에도 장례식장은 계속 운영중이지만 이곳에 빈소를 차린 가족들은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 쓸쓸한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을 수밖에 없다. 막상 은평성모병원 장례식장은 본 병원 건물과는 다른 건물인 데다 역학조사 결과 확진자의 동선에 포함되지 않는다. 출입하는 문도 별도로 있지만 조문객의 발길은 뚝 끊겼다.
은평성모병원 장례식장 10개의 빈소 모두 상황은 비슷했다. 확진자의 동선과 관련 없는 장례식장일지라도 사람이 많이 모인다는 이유로 장례식장 조문을 꺼리는 분위기인데 은평성모병원 장례식장이라 더욱 조문객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은평성모병원 장례식장 상주 B 씨는 “장례식장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이느냐로 고인이 살아생전 얼마나 잘 살았는지를 알 수 있다는 말을 들어왔기에 더 허무하다”며 황망한 마음을 전했다. B 씨가 연락을 취한 건 몇백 명에 달했지만 직접 장례식장을 찾은 사람은 수십 명에 그쳤고 가까운 이들조차 전화로 조문을 대신했다고 한다.
상조회사 장례지도사 C 씨는 “장례지도사로 일하는 수십 년 동안 장례식장 전체가 이렇게 텅텅 비는 일은 처음 본다”며 “방문한 사람도 마스크 낀 채로 절만 하고 얼른 자리 털고 일어선다. 밥 먹고 술 마시고, 울고불고 하며 고인을 회상하는 질펀한 자리는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스몰웨딩·노웨딩, 답례품 대신 마스크
“청첩장 전달하고 결혼식에 초대할 사람들 챙기느라 애 태운 거 생각하면 속상해서 잠이 안 와요. 솔직히 일생에 한 번인데 사람이 많이 와야 성대한 결혼식이라고 생각해서 친구대행 아르바이트까지 예약해 두었는데 손해가 막심해요.”
3월 중순 결혼을 앞두고 있는 신부 D 씨는 하객이 오지 않아 결혼식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봄가을엔 쏠쏠한 주말수입이 가능해 성행하던 결혼식 축가 알바나 친구대행 알바도 어쩌면 곧 사라질 위기다. 전국 곳곳에서 행사 취소 위약금 관련 분쟁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코로나19 관련 위약금 상담은 한 달여 만에 3854건을 넘었고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관련 청원이 올라와 있다.
전국 곳곳에서 행사 취소 위약금 관련 분쟁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코로나19 관련 위약금 상담은 한 달여 만에 3854건을 넘었고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관련 청원이 올라와 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다른 예비 신부 E 씨는 “4월 예식이라 예식장, 항공권, 해외호텔이 모두 예약 완료된 상황이다. 예식을 연기하는 건 어떻게든 해볼 수 있겠지만 항공권과 해외 호텔이 모두 날아가게 생겼다”며 “울며 겨자 먹기로 그냥 식을 진행하기로는 했지만 손님들이 와도 밥도 안 먹고, 아니 못 먹고 가니 축의금을 받기도 애매하다”고 토로했다. 들어오는 하객들에게는 마스크를 나눠주는 것도 필수다.
3~5월은 결혼과 허니문 피크 시즌이라 더 혼란한 상황이다. 초반에는 면역력 약한 노령인구 중심으로 쉽게 감염되는 줄 알았던 코로나19가 연령대를 불문하고 확산 중이다. 특히 20대 감염자가 가장 많다고 보고되면서 젊은층의 불안감도 커져가고 있다. 문제의 31번 확진자처럼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확진 판정을 받은 30대 초반의 김포 확진자 부부의 사례가 알려지자 더욱 결혼식 참석을 꺼리는 분위기다.
결혼식은 예식장이나 신혼여행 항공권 및 호텔을 비롯해 답례품과 웨딩드레스 대여 등 여러 개의 계약이 동시에 맞물려 있어 연기되거나 무산될 경우 개인의 경제적 손실이 매우 커진다. 돌잔치의 경우는 더하다. 돌잡이 외에는 특별한 식순 없이 주로 식사 위주로 행사가 진행되다보니 아예 행사 참석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E 씨는 “하객들 중 친한 지인들은 미안하다며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는 분들도 꽤 있다. 바로 현금이체가 되는 OOO페이로 축의금을 미리 전달하기도 한다”며 “하지만 온라인으로 돈 보내고 전화로 축하하는 이들은 그래도 친한 사람들이다. 초대한 사람들 중에는 애매한 관계도 많아서 결혼식장에 신랑신부와 가족들만 있게 될까 걱정된다”고 했다.
하객들 중에는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거나 전화번호만 알면 바로 현금이체가 되는 카카오페이로 축의금을 전달하는 것으로 참석을 대신한다. 식장에서는 하객들에게 마스크 나눠주기도 필수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미혼이나 만혼이나 비혼도 많아지는 요즘, 이 기회에 아예 경조사 축의금 문화가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아직 미혼이라 밝힌 40대 F 씨는 “어중이떠중이 아는 사람 모두 초대해 서로 부담 주는 결혼식 말고 친지와 친한 지인들만 초대해 조촐하게 하는 스몰웨딩이 정착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결혼식도 원격으로 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며 “현장에는 꼭 가야 할 사람만 가고 유튜브로 생중계하는 방식의 웨딩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놨다.
코로나19로 정부나 각종 매체에서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당부하고 나서는 상황에서 비대면 소비 경향인 언택트(Untact) 트렌드까지 더해져 모이기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관혼상제 문화까지 흔들고 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