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 등 지자체장들이 나서 신천지에 대한 강제수사를 권하고 살인죄로 고발까지 했지만, 일단 검찰은 배당만 한 뒤 방역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정치 검찰’임을 입증했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법조계는 “자칫 하면 코로나 확산 책임론의 마녀사냥을 검찰이 주도하는 게 될 수 있다”며 검찰의 대응이 올바르다고 보고 있다. 이만희 신천지예수교 총회장이 3월 2일 기자회견을 통해 ‘적극적인 협조’를 약속한 점도, 강제수사의 명분을 약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수사는 코로나가 어느 정도 진정세를 보이면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전국신천지피해자연대가 제출한 274페이지 상당의 고발장에는 신천지 재산 관련 의혹도 제기돼 있어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이 가평 별장 ‘평화의 궁전’에서 ‘코로나19’ 사태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흩어진 이만희 사건…살인죄 적용 가능할까
현재 이만희 총회장이 고발된 건은 2건. 전국신천지피해자연대가 이만희 총회장을 감염병예방법 위반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혐의로 고발한 사건은 수원지검 형사6부(박승대 부장검사)에 배당됐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신천지 관계자 등을 살인죄로 고발한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코로나19 대응TF 사건대응팀장을 맡고 있는 이창수 형사2부장검사에게 배당됐다.
박 시장이 이 총회장을 고발조치한 것은 3월 1일. 이 총회장과 12개 지파(지역조직)장을 살인과 상해죄, 감염병예방관리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는데, “신천지 지도부가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노력하고 있는 보건당국에 협조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위법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 고발 요지였다.
같은 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박 시장은 “윤석열 검찰총장께 요청한다. 바이러스 진원지의 책임자 이 총회장을 체포하는 것이 지금 검찰이 해야 할 역할”이라며 강제 수사를 당부하기도 했다. 이 밖에 여권 계열인 김경수 경남도지사, 최문순 강원도지사 등 여러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코로나19 확산을 두고 잇따라 ‘신천지 책임론’을 제기하며 강도 높은 수사를 촉구했다.
하지만 법조계는 ‘살인죄 고발’은 “말도 안 되는 논리”라는 게 중론이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판사는 “살인죄는 고의성이 있어야 하는데, 신천지 신도를 숨기는 게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는 고의성과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다수의 법조인들 역시 “말도 안 되는 논리”라고 일축할 정도다.
그럼에도 정부와 여당은 코로나19 방역 책임이 신천지에 어느 정도 있다고 보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2월 28일 일선 검찰청에 “당국의 역학조사를 방해하거나 거부하는 등 불법행위가 있으면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로 강력하게 대처하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정중동하는 대검찰청
서울시와 법무부의 이 같은 입장에 대해 방역당국은 반대 의견을 내놨다. 신천지 강제수사가 이뤄질 경우 오히려 방역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은 3월 2일 코로나19 정례브리핑에서 “정부의 강압적인 조치로 신천지 신자가 음성적으로 숨는 움직임이 확산할 경우 방역에 긍정적이지 않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며 반대의 뜻을 내비쳤다.
검찰 역시 신중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사건을 배당하긴 했지만, 신천지에 대한 즉각적인 강제수사가 방역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방역당국의 입장을 일선 검찰청과 공유하며 “방역 행정에 도움이 되는 수사를 우선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현 정부의 ‘방역 실패 비판’을 피해갈 수 있는 정치적인 수사가 될 것을 우려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방역 당국의 입장은 검찰에게 수사를 천천히 해도 될 명분이 됐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보면서 세월호 때 박근혜 정부가 검찰을 움직여 유병언 일가를 ‘마녀사냥’ 대상으로 삼았던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며 “지금 신천지를 압수수색하고 체포, 구속하게 되면 결국 검찰의 공권력이 정치권의 피해자 프레임 만들기에 앞장서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라는 점도 알기 때문에 더더욱 신중하게 행동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윤석열 검찰총장은 “강제수사를 해야 한다면, 대검과 먼저 협의하라”는 지시를 내리며 일선 지검, 지청 단위에서 수사에 나서는 것을 제한했다.
전국신천지피해자연대가 제출한 274페이지 상당의 고발장에는 경기도 가평 일대 별장들에 대한 횡령 의혹 등이 포함돼 있는데 이를 본 검사 출신 변호사는 “수사 밑그림을 그리기 충분한 내용”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사진=전국신천지피해자연대 제출 고발장
이런 상황에서 이만희 총회장의 기자회견도 검찰이 신중하게 움직일 수 있는 명분이 됐다. 이만희 총회장은 3월 2일 기자회견에서 “정부에 사죄한다”며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은 정례 브리핑에서 “신천지가 제공한 정보에 큰 오차는 없다”고 밝혀, 더더욱 수사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에 배당된 사건 중 겹치는 부분은 수원지검으로의 이첩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럼에도 수사는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코로나 환자 확진세가 어느 정도 진정되면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과 신천지 내 방역 거부 및 조직적 방해 움직임에 대해 수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현재 이만희 총회장에게 적용된 혐의 중 횡령과 배임은 고발장 내 내용이 상세하다. 274페이지 분량의 고발장에는 경기도 가평 일대 별장들에 대한 횡령 의혹 등이 포함돼 있는데 이를 본 검사 출신 변호사는 “수사 밑그림을 그리기 충분한 내용”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앞선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는 “곧바로 이뤄지는 강제수사가 아니라, 코로나가 진정되면 수사하기 위한 자료들을 지금 모아놓고 있을 것”이라며 “어느 정도 정치권의 개입이 제한됐을 때 수사를 해야, 가장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수사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지금 검찰의 대응이 올바른 것 같다”고 검찰 판단을 지지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