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 제9회 국무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대구·경북 지역을 비롯한 지역 사회에선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 헌신이 이어지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를 비롯한 공무원들도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밤낮없이 근무 중이다. 이들은 열악한 환경, 피로 누적 등으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얼마 전엔 인명 피해 사례까지 나왔다.
2월 27일 전북 전주시청 소속 한 공무원이 전주시 완산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발견 당시 호흡과 맥박이 없었고, 병원에 도착했을 당시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그는 “코로나19 비상상황 관련 업무가 너무 많아 힘들다”는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한 것으로 전해진다. 3월 2일 오전 11시엔 경북 성주군청 소속 공무원이 화장실에서 쓰러져 경북대병원으로 후송됐다. 그는 뇌출혈 증세로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다. 이 공무원은 성주군청 재난상황실에서 코로나19 방역 관련 업무를 수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방역 현장의 공무원들과 의료진들은 그 어느 때보다 컨트롤타워 역할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지역 한 대형병원 의사는 “치료도 치료지만, 이런 전 국가적 비상사태 땐 무엇보다 국민들이 불안해하지 않고 당국의 대응을 잘 따를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컨트롤타워가 우왕좌왕하지 않고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고 전했다.
3월 4일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 의료진 식당에서 의료진이 짧은 틈을 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방역 컨트롤타워 수뇌부는 연이어 논란에 휩싸였다. 혼란을 가중시키는 발언으로 뭇매도 맞았다. 우선 문재인 대통령은 3월 3일 ‘마스크 대란’과 관련해 공식 사과했다. 문 대통령은 “마스크를 신속하고 충분하게 공급하지 못해 불편을 끼치고 있는 점에 대해 국민께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2월 25일과 26일 “마스크 문제는 우리 수요를 감당하기 충분한 생산 능력이 있다”고 발언한 지 약 1주일 만에 이뤄진 사과였다.
문 대통령은 2월 25일 대구를 방문, 권영진 대구시장에게 “학생들에게는 (마스크가) 하나씩 배포되게끔 해서, 별도로 마스크를 구하는 어려움을 겪지 않게 챙겨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2월 26일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정례보고를 받은 뒤 “(마스크) 물량 확보 문제는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한다”면서 “마스크 수출 제한 조치로 공급 물량은 충분히 확보돼 있다”고 했다. 두 발언 모두 마스크 공급량이 충분하다는 전제로 이뤄진 발언이었다.
그러나 마스크 대란은 계속됐고 문 대통령은 3월 1일 “(마스크 수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든 대책을 최우선으로 강구하라”는 긴급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이틀 뒤인 3월 3일 공식 사과를 했다. 이만희 미래통합당 원내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의 ‘우리 수요를 감당하기 충분한 마스크 생산 능력이 있다’는 발언은 며칠도 안 돼 가짜뉴스가 됐다”고 비판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 직을 겸하고 있는 정세균 국무총리도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정 총리는 2월 29일 ‘무감염 인증제’를 제안했다. 국민이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았다는 증명서를 정부가 직접 발행해 주자는 취지였다. 한국인 입국금지 조치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출장길이 막힌 기업인을 도우려는 안이었다. 외교부는 정 총리 제안과 관련해 “약 25개국과 관련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보건당국이 무감염 인증제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국립보건연구원장)은 “보건학·의학적으로 볼 때 감염이 없다는 것을 (정부가) 인증한다는 것 자체는 사실상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 했다. 권 부본부장은 “세계보건기구(WHO)는 26개국 이상에서 코로나19 지역감염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면서 “똑같은 지역 감염국끼리 무감염 인증을 요구한다는 것은 보건학적으로 상당히 의미가 낮다”고 덧붙였다. 정부와 보건당국 사이 의견에 엇박자가 난 셈이다. 의료계 일각에선 “실효성보다 보여주기에 초점을 맞춘 제안”이란 비판도 제기됐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사진=박은숙 기자
방역 컨트롤타워의 또 다른 축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2월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출석 당시의 발언으로 질타를 받았다. 이날 박 장관은 “(코로나19 확산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이었다”고 했다. 박 장관 발언을 두고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부적절한 발언”이란 반응을 보였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박 장관 발언과 관련해 “말씀 취지는 알겠지만, 국민감정에 있어서 부적절했다”고 했다.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은 박 장관 발언을 “근거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박 장관은 “의학적 관점에서 의협(대한의사협회)보다 대한감염학회가 더 권위 있는 전문가들이 모여 있다”고 해 논란을 야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사는 “대한감염학회는 대한의사협회 산하 186개 의학회 중 하나”라면서 “의협 산하 학회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했다. 이 의사는 “같은 지붕 아래 있는 두 조직을 놓고 ‘누가 더 권위 있다’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지적하면서 “아무래도 박 장관이 보건보다는 복지 쪽 전문가다보니,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와 대한의사협회 사이의 불통을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늘어나고 있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 초기 대한의사협회가 중국인 입국 금지가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권고했다”면서 “정부가 이 권고를 따르지 않으면서 코로나19 국내 유입 차단 골든타임을 놓친 격이 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각종 우파 정치 운동에 참여한 이력이 있어 정부가 의협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도 했다.
정부의 코로나19 관련 회의에 전문가가 보이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의료계 또 다른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이런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대책 회의에 꼭 필요한 사람이 있다. 바로 이론적 해법을 제시해줄 수 있는 전문가”라면서 “지금 정부의 코로나19 관련 방역 대책 회의엔 감염학 전문가가 눈에 띄지 않는다”라고 꼬집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2월 25일 대통령이 대구를 방문해 코로나19 특별대책회의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 참석한 의사는 민복기 대구시의사회 코로나19 대책본부장뿐이었다. 민 본부장은 피부과 전문의다. 현장에서 열띤 진료에 임하는 대구·경북지역 의사들의 민원을 정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민 본부장이 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감염학과 관련해 일원화된 이론을 조언할 의학 전문가는 지금까지 눈에 띄지 않는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