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항공업계 관계자가 꼬집은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남다른’ 위상이다. 최근 항공사와 면세점 등이 공항 사용료와 임대료 등을 두고 정부와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일제히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이용객 발길이 끊기고 쉬는 비행기가 늘어나면서 가장 부담이 큰 자릿세를 줄여달라는 것이 골자다. 인천공항공사는 공항 사용료와 임대료 등으로 매년 조 단위 흑자를 내고 있었던 만큼,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에서라도 결단을 내려달라고 업계는 주장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에 직격탄을 맞은 항공, 면세업계가 정부와 인천공항공사에 한 목소리로 임대료와 공항 사용료 부담을 줄여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진은 코로나19 여파로 한산한 인천공항 모습. 사진=임준선 기자
#곤두박질치는 항공산업
지난해 국내 항공업계는 삼중고에 시달렸다.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 불매운동, 홍콩 시위가 번지면서 악화일로를 걸었다. 아시아나항공은 적자가 2018년(351억 원)과 비교해 10배 이상(3684억 원)으로 늘어났고 저비용항공사(LCC)들도 일제히 적자 전환했다. 가장 덩치가 큰 대한항공만 유일하게 흑자를 냈는데, 영업이익은 2018년(6673억 원)과 비교해 절반 수준(2908억 원)에 그쳤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경영환경이 더 악화될 전망이다. 항공정보포털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2월 29일까지 국내 항공사 누적 여객은 1649만 268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0%(413만 명) 줄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올해 2~3월 운항과 수송객은 2019년과 비교해 절반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항공업계엔 최근 비상경영체제 돌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한국발 여행객 입국 제한·금지 국가가 늘면서 노선 감축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희망퇴직과 무급휴직 등 구조조정이 가장 먼저 단행됐고 일부 항공사는 임직원들이 임금을 반납, 근무 일수 축소 등을 실시하고 있다.
면세업계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나온 지난 1월 20일 이후 면세업계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60.2% 줄었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여파가 최대 6개월까지 지속될 경우 경영 지속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면세업계의 위기는 인천공항공사가 지난 2월 27일 마감한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T1) 사업권 입찰에서도 나타났다. 대기업 사업권 5곳 가운데 2곳이 참여 업체 수 미달로 유찰됐다. 제1여객터미널 사업권 유찰은 이번이 처음이다(관련기사 ‘경쟁? 생존 먼저’ 초유의 인천공항 면세사업권 유찰 사태 뜯어보니).
항공 업황이 악화되자 지상조업사들도 유탄을 맞았다. 지상조업은 여객기가 이착륙하는데 필요한 작업으로 수하물 운송과 탑재, 급유, 항공기 점검, 기내식, 기내청소 등을 맡는다. 지상조업사들은 올해만 수백억 원의 영업손실을 예상하고 있고, 임금 지급을 위한 유동성 확보도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 ‘나홀로’ 흑자 인천공항공사
항공 관련 사업자들의 시선은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쏠린다. ‘파트너’와 다름없는 인천공항공사는 항공업계 전반에 불어닥친 위기와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를 보면, 인천공항공사는 지난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15년 연속 흑자를 내고 있다. 2015년 처음 영업이익이 1조 원을 넘었고 2018년에는 매출 2조 7000억 원, 영업이익 1조 2987억 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47%로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이익으로 남겼다. 2019년에도 전년과 비슷하거나 더 높은 실적을 올린 것으로 추산된다.
항공업계 실적이 고꾸라지는 상황에서도 인천공항공사가 정반대 실적을 낼 수 있는 이유는 수익구조 때문이다. 인천공항공사 수익구조는 항공수익과 비항공수익으로 나뉘는데, 항공수익은 항공기 착륙료와 주기료, 조명료, 여객공항 이용료 등 항공기와 여객수익이고, 비항공수익은 면세점 등 상업시설 임대료와 주차장 사용료, 토지·건물 임대료 등이다.
이 가운데 ‘알짜’는 상업시설 임대료, 특히 면세점 임대료다. 지난해 10월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를 보면, 인천공항공사는 2018년 총 7개 면세점으로부터 받은 임대료만 1조 761억 원에 달했다. 전체 상업시설 임대수익은 1조 6245억 원으로, 면세점 임대료가 66%를 차지했다.
면세점 사업자들은 낙찰가격인 ‘최소보장금’을 임대료로 납부한다. 낙찰가는 연평균 관광객 수를 기준으로 연간 매출액을 정해 써낸다. 문제는 최근처럼 공항 이용객이 급감해 매출이 곤두박질쳐도 무조건 이 돈을 내야 한다는 점이다. 앞서의 면세업계 관계자는 “올해 2월과 3월엔 매출보다 임대료를 더 많이 내야 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최근 수년 동안 항공산업 전망 예측이 어려워지면서 업계가 공동으로 임대료 산정방식을 바꾸자고 여러 차례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천공항공사의 ‘항공수익’ 역시 다르지 않다. 항공기 운항이 줄어도 심각한 타격을 입지 않는다. 공사의 항공수익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착륙료다. 항공사들이 노선을 감축하면 착륙료는 줄어들지만 대신 공항에 머물면서 쉬는 항공기가 늘고 머무는 시간도 길어져 주기료는 더 늘어난다.
인천공항공사는 최근 제2화물터미널 인근의 유도로를 장기 주기장으로 쓰기 시작했다. 유도로는 항공기가 터미널과 활주로를 오가는 길이다. 이 길이 장기 주기장으로 전환된 건 인천공항 개항 이후 처음이다. 인천공항공사 집계에 따르면, 지난 1월 14일에는 항공기 134대가 세워져 있었지만 3월 2일에는 173대로 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에 따른 불안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인천 중구 인천국제공항에서 여행객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입국장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뒤늦게 후속 대책 마련 나선 정부
업계는 고통분담 차원에서라도 ‘자릿세’를 줄여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항공 관련 업계 전반이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자구책만으로는 위기 극복에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와 인천공항공사가 결단을 내려달라는 것이다. 지난 2월 면세업계는 공항공사 등에 임대료 산정방식을 바꿔달라고 제안했고 지상조업사들은 3월 2일 호소문을 작성해 보냈다.
인천공항공사는 난감한 표정이다. 요구를 받아들이면 항공사와 면세점 ‘자릿세’ 의존도가 큰 만큼 전체 매출과 수익성이 낮아지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정부와의 관계도 문제다. 인천공항공사 지분 100%를 가진 정부는 올해 인천공항공사에 약 4000억 원의 배당금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2007년부터 2018년까지 12년간 배당금으로 2조 1817억 원을 챙겨갔다.
앞서 정부는 인천공항 건설사업 1, 2단계에선 국고를 통해 자금을 지원했지만 2009년 시작된 3단계 공사(4조 9303억 원)와 지난해 시작한 4단계 공사(4조 2000억 원)에는 투자하지 않았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업계 어려움은 잘 알고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대안을 마련해주지 않는 이상 임대료 인하 등을 공사가 자체적으로 결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항공업계의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앞서 지난 2월 중순 유동성 위기를 겪는 LCC에 대해 최대 3000억 원까지 산업은행을 통한 대출 지원과 중소 면세업체들을 대상으로 임대료 인하 방안 등을 내놨지만 모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LCC 대출 지원은 긍정적이지만 대출에 따라 이자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고, 중소 면세업체 임대료 지원은 혜택을 받는 면세점이 2곳에 그쳐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3월 3일 항공사 CEO(최고경영자)들과 다시 간담회를 가졌다. 이번 간담회는 국토부가 먼저 사장단에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항공사 측은 간담회에서 주기료와 착륙료를 포함한 공항 사용료 인하, 운영자금 조달을 위한 무담보 대출 등 금융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