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아파트 값은 어떨까? 일요신문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가와 금리, 서울 집값의 흐름을 되짚어 봤다. 요약하면 서울 집값은 규제 완화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같은 메커니즘이 작동한다면 코로나19 경제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시중 자금의 부동산 집중 현상은 좀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은 집값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단지 야경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최준필 기자
#주가 폭락≠집값 급락
2008년 코스피는 40% 넘게 하락했다. 같은 기간 한국감정원 아파트 중위가격(실거래 기준)은 지방이 1.16% 하락했을 뿐 수도권은 9.93%, 서울은 35.7% 급등했다. 서울 아파트 값(중위가격 기준)은 이 해 5월 처음으로 5억 원을 넘겼다.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다음 달인 10월 3.53% 하락했지만, 11월 9.44% 오르며 단숨에 낙폭을 만회했다. 2009년 미국의 양적완화(QE)로 주식시장은 빠르게 반등한다. 한국은행도 2008년 9월 5.25%이던 기준금리를 2009년 2월 2%까지 내렸다. 그런데 서울 아파트 값은 맥을 추지 못했다. 2009년 9월 5억 5000만 원으로 정점을 찍더니 2010년 4월에는 5억 원 아래로 내려선다.
#연체에 발목 잡힌 집값
2010년 7월 한국은행이 다시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 2011년 6월 3.25%까지 끌어올린다. 5억 원 안팎에서 횡보하던 서울 아파트 값도 4억 원대로 주저앉는다. 코스피도 이 해 9월 한때 1700선으로 내려선다. 경제가 어려워지자 2012년 7월부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서울 아파트 값 5억 원과 코스피 2000은 좀처럼 뚫리지 않았다. 기준금리 인하에도 오히려 서울 아파트 값은 오히려 소폭 하락했다. 0.6~0.8% 사이를 움직이던 금융기관의 가계대출 연체율이 0.8~1.0% 범위로 높아졌다. 당시 국내 주력산업 부진으로 기업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경기가 급랭했다. 가계 형편이 어려워지니 아파트에 투자할 여력도 낮아진 것이다.
#초이노믹스, 규제 고삐를 풀다
반전은 박근혜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나온 2014년 7월이다.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는 내수활성화를 위해 기업소득 환류세제와 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등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제시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집값 급등을 막기 위해 도입했던 안전장치들을 모두 해제한 셈이다. 이에 더해 이해 10월에는 한국은행까지 기준금리를 2%로 다시 인하했고, 2015년 3월에는 역대 최저인 1.75%까지 떨어뜨린다. 나라에서 ‘빚 내서 집 사라’고 권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이 해 6월엔 1.5%, 2016년 6월에는 1.25%로 기준금리 최저치가 경신됐다. 서울 아파트 값은 2014년 10월 이후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해 2015년 10월 전고점(5억 5000만 원)을 넘어서고, 2016년 9월 6억 원을 돌파한다. 2017년 10월엔 7억 원 고지에 오른다.
#초저금리가 집값 상승 동력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부동산 규제를 다시 강화하지만 서울 집값은 계속 올랐고, 한국은행이 9월과 11월 기준금리를 두 차례나 올린 다음에야 상승세가 다소 진정된다. 이때 정부는 다주택자 규제와 임대사업자 등록 활성화에 나서는데, 이후 이른바 ‘똘똘한 한 채’ 바람의 배경이 된다. 이왕 한 채를 가진다면 집값이 가장 안정적이고 많이 오를 서울 집을 사겠다는 바람이다. 서울 집값이 다시 급등한다.
정부는 조정지역을 넓히고 분양가를 통제하고, 세금을 높이고, 대출을 제한하는 대책을 잇따라 내놓지만 시중에 넘쳐나는 유동성이 서울 주택시장에 집중되며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2018년 말 발표된 3기 신도시도 오히려 서울의 상대적 매력만 부각시킨다는 평가를 받는다. 광역철도망(GTA)을 감안할 경우 신도시들이 자칫 서울의 ‘베드타운’에 그칠 수 있다는 풀이다.
#서울 넘어 수도권으로 ‘풍선효과’
2019년 들어 뜨거웠던 반도체와 바이오 투자 열풍이 사그라지면서 시중 부동자금은 더욱 갈 곳을 잃었다. 서울 강북과 변두리 집값이 오르기 시작했고, 교육부의 학군 부활까지 겹치며 강남과 목동은 다시 상승 랠리를 시작했다. 특히 서울 집 수요 억제에 무게를 둔 정부의 규제는 상대적으로 서울 밖 집에 대한 매력을 높였다. 과천, 성남, 용인 등으로 집값 상승세가 번졌다. 그 가운데 서울 중위 아파트 값은 더 올라 2019년 4월 8억 원, 5월 9억 원을 넘어 6월 9억 6000만 원까지 치솟는다.
반도체가 떠받치던 경제가 휘청거리자 한국은행은 2019년 7월과 10월 기준금리를 인하, 다시 역대 최저인 1.25%가 됐다. 집값은 또 올랐고, 전세 대출까지 옥죄는 12·16 대책이 나온다. 그럼에도 올해 들어 서울 아파트 값은 다시 반등을 시작했다. KB부동산 리브온 기준 올 2월 가격은 9억 4798만 원이다. 특히 수도권의 집값 급등세가 심상치 않자 2·20 대책에 발표된다.
#코로나19로 기준금리 더 떨어지면?
2월 중순 이후 코로나19 전염이 확산되면서 부동산에 대한 관심도 일단 주춤해졌다. 경제활동이 위축되며 부동산 거래도 사실상 실종됐다. 이런 가운데 지난 3일 미국이 기준금리를 전격적으로 인하하면서 각국 중앙은행의 동반 인하가 예상된다. 지난 2월 말 인하를 하지 않았던 한국은행도 4월에는 미국을 따를 것이 전망된다. 코로나19의 충격이 크면 연내 2차례 인하도 가능하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1.25%인 기준금리가 0.75%로 떨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0.3% 안팎이다. 역대 최저이고,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낮은 수준이다. 주택을 담보로 하거나, 고신용자에게만 돈을 빌려준 결과이지만, 이자 부담이 낮아 연체 가능성이 떨어진 측면도 작용했다. 기준금리가 더 내려간다면 집값도 최소한 하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 실물경제 충격 강도가 변수
변수는 코로나19의 충격이 장기화돼 기업실적과 가계 소득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다. 주목할 변수는 기업 부문이다. 장기간 초저금리가 지속되면서 한계기업들도 빚을 내 버티는 ‘좀비’ 현상이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수요와 공급에 차질이 커져 한계기업들이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한다면 연쇄 도산 가능성이 있다. 이는 가계소득 감소와 연체율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에 따른 매물 출회로 집값 하락이 유발될 가능성은 존재한다.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으로 갭 투자를 한 이들이 자금 부담에 직면할 수도 있다.
2012년부터 2014년 상반기까지 뚜렷하게 나타났던 연체율 상승 현상이 재현되는 경우다. 최근 은행들도 이 같은 상황에 대비를 시작했다. 다만 지금과 같이 기준금리가 1% 이하인 초저금리 상황이라면 당시보다 연체율이 더 오를 확률은 낮다. 집값 하락세가 나타난다면 수요가 탄탄한 서울 핵심지역보다는 집주인의 재무상태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수도권, 또는 서울 외곽이 유력하다. 예컨대 서울 강남과 같은 인기지역은 매물이 나와도 매수하려는 자산가들이 많지만, 서울 외곽이나 지방은 상대적으로 주거 매력이 낮아 매수세가 약하기 때문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