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균은 2019년 부진을 겪은 이후 맞은 세 번째 FA 계약에서 1년이라는 계약기간으로 도전을 택했다. 사진=연합뉴스
이들은 모두 지난해 한화가 3위에서 9위로 다시 추락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김태균은 성적이 좋지 않았고, 이용규는 개인적인 일로 물의를 빚어 아예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이제 둘은 지난해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새롭게 출발하기로 했다. 둘의 도약은 곧 한화의 비상이라는 걸 잘 알아서다. 눈빛부터 묵직한 김태균과 이용규를 일요신문이 애리조나 현지에서 만났다.
#1년 계약한 김태균, “내 마지막은 후회 없이 스스로 결정하고 싶다”
꽤 오랜 시간, 김태균은 팬들의 박수만큼이나 손가락질에도 익숙해져야 했다. 팀 성적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팀 간판스타가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자 비난의 화살이 한 곳으로 집중됐다.
묵묵히 견뎠지만 결과는 아팠다. 지난 시즌을 마친 뒤 세 번째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은 그는 총액 10억 원에 1년짜리 계약을 했다. 구단은 2년까지 보장해주려 했지만, 김태균이 직접 “깔끔하게 1년만 계약하고 내년에 다시 평가받겠다”고 했다. 자신의 가치와 자존심은 스스로 지켜내고 말겠다는 명예회복의 의지다.
절치부심. 올해 김태균은 오직 그 한 단어만 떠올린다. 야구 인생 대부분을 팀의 간판이자 스타로 살았던 선수. 소속팀을 넘어 국가대표팀에서도 중심을 지켰던 강타자. 김태균은 처음으로 실감한 현실의 벽 앞에서 다시 시계바늘을 뒤로 돌리기로 했다. “끝이라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쏟아붓고, 내 마지막은 후회 없이 내가 결정하고 싶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다음은 김태균과의 일문일답.
―스프링캠프 분위기는 어떤가.
“감독님께서 선수들 분위기를 편하게 이끌어 주시고, 힘들 때는 알아서 조절도 잘 해주신다. 또 (이)용규가 주장을 맡으면서 캠프에 오기 전부터 각오를 단단히 하고 준비를 많이 해온 것 같다. 젊은 선수들도 밝게 훈련을 잘하고 있어서 팀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좋다.”
―이번 캠프에서 스스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공을 배트 중심에 정확히 맞히려 하고 있다. 연습할 때는 잘 되는데, 실전에서는 아직 잘 안 된다. 일단 지금은 연습량을 늘려서 컨디션을 일부러 다운시켜 놓으려고 하고 있다. 개막에 맞춰서 끌어 올려야 하니까. 그래서 지금 몸이 굉장히 무겁고 지치고 힘들다(웃음).”
―살이 많이 빠진 것 같다.
“체중을 재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다들 많이 빠진 것 같다고 하더라. 특별히 감량하려고 한 건 아니지만 웨이트 트레이닝 시간이 늘어서 그런 것 같다. 이전에는 캠프 때 기술 훈련이 많아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올해는 웨이트 트레이닝에 조금 더 집중하다 보니 살도 조금씩 빠지는 것 같다.”
―세 번째 FA가 돼 1년 계약을 했다. 스스로 도전이라고 했는데.
“새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지금 내 나이의 선수에게 기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1년 계약은 분명 모험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새로운 계기가 필요해서 그런 선택을 했다. 처음 팀에 들어왔던 신인 때, 내 자리를 잡으려고 치열하게 운동했던 그 시기처럼 이번 시즌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도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 FA 협상을 통해 지난 두 차례 계약 때와 달라진 현실을 실감했나.
“나 자신이 많이 부족했다는 점을 당연히 느꼈다. 그 전에 계약할 때와 시장 분위기부터 모든 게 달랐다. 그 전에는 (다른 팀에서) 서로 오라고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는 현실 아니겠나. 그런 부분을 받아들여야 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새로운 계기가 필요했다.”
―1년 계약 결정도 그렇게 동기를 부여하겠다는 의미였나.
“그렇다. 어차피 이번 시즌이 나의 끝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1년 계약을 했고, 내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올해 잘해서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 있기도 했고, 나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는 성적을 내고도 장기 계약을 보장받았다고 그냥 남아 있는 것은 싫었다. 1년 계약을 해놓으면, 내가 한계라는 것을 느낄 때 쉽게 내려놓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물론 그런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 다시 마음을 잘 잡는 게 먼저다.”
―현역 생활의 마지막은 스스로 결정하고 싶었다는 뜻으로 들린다.
“은퇴한 뒤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2~3년 계약을 해놓고 마지막에 흐지부지 끝내면, 그 후에 많이 후회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결정을 하기까지 많은 생각을 했다. 결국은 ‘마지막이다’라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쏟아붓고, 그때 어떤 결정을 하던 후회 없는 선택을 하고 싶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누가 알겠나. 갑자기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는 마음이 생길지. (웃음) 어쨌든 마지막은 내가 선택할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한화를 이끄는 베테랑 김태균과 이용규는 2018년 이후 팀의 포스트시즌 재입성을 꿈꾼다. 사진=연합뉴스
“누구나 하는 말이겠지만, 내가 처음 입단해 프로 선수의 꿈을 이룬 팀이고 ‘선수 김태균’을 만든 팀이니 당연히 각별하지 않겠나. 내가 자란 지역 연고(천안 북일고 출신) 구단이니 운동하면서 계속 입단을 꿈꿨고, 그 유니폼을 입게 돼 흥분되고 설레는 마음도 컸다. 장종훈, 송진우, 정민철 같은 대선수들과 한 팀에서 뛰게 됐을 때는 기분도 남달랐고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 또 지금 감독님, 코치님, 단장님처럼 어려운 시기를 함께 겪고 선후배 관계로 서로 잘 버텨왔던 분들이 한 팀에 함께 계시니 선수들에게도 힘이 되고 목표 의식도 생기는 것 같다. 나도 그렇고, 젊은 선수들도 ‘앞으로 더 잘해서 저런 모습이 돼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아무래도 ‘원팀’이라는 의식이 생긴다.”
―한화의 좋은 시절, 어려운 시절을 다 겪은 선수로서 최근 어떤 생각을 많이 하나.
“나는 한국시리즈 준우승(2006년) 멤버다. 그땐 어린 시절이라 선배들 모두 개인 기량이 출중했고 후배들을 잘 이끌어줬다. 다른 걱정을 크게 안 하고 내 할 일만 알아서 해도 되는 분위기였다. 좋은 선수들이 위에서 중심을 잡아 주고 믿음을 줘서 팀이 잘 된 거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최근 수년간 팀이 좋지 않았던 건 결과적으로 나를 비롯한 고참들이 중심을 잘 못 잡아서 그런 게 아니겠나. 그런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책임을 많이 느끼고 있다.”
―하지만 한화 베테랑 선수들도 후배들을 잘 이끌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들었다.
“다들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고참 선수들이 늘 책임감을 갖고 후배들을 이끌고 있다. 물론 그런 선수들이 그동안 없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모든 것은 결과로 평가할 수밖에 없으니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다. 2018년에 좋은 분위기를 만들었는데, 지난해 다시 성적이 떨어져서 그게 가장 아쉽다. 올해 다시 포스트시즌에 올라가려면 내 역할도 중요하니, 나 역시 더 잘해서 분위기를 잘 만들어보고 싶다.”
―어느 정도 성적을 내야 스스로 올해는 ‘성공’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20년 가까이 야구를 하면서 한 번도 내 목표를 수치로 정해보지는 않았다. 다만 시간이 흐른 만큼 팬분들이나 구단, 감독님, 코치님들이 과거에 기대했던 김태균과 현재의 김태균은 많이 달라져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예전만큼은 어렵겠지만, 적어도 땅에 떨어진 신뢰와 믿음만큼은 다시 회복하고 싶다. 예전처럼 타석에 김태균이 나오면 ‘뭔가 하나 해낼 것 같다’는 기대를 하실 수 있게 해보고 싶다. ‘역시 김태균’이라는 얘기를 듣고 싶다.”
이용규는 트레이드 요구 파동으로 2019시즌 전체를 쉬었다. 사진=연합뉴스
#‘돌아온 탕아’ 주장 이용규 “올해는 ‘잘했다’는 한마디만 들어도 성공”
이용규에게 지난 1년은 여기저기 구겨진 자국만 남은 ‘백지’나 다름없었다. 개막을 코앞에 둔 시점에 터져나온 공개 트레이드 요청, 구단의 단호한 거절 그리고 ‘무기한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 다른 누구도 아닌 ‘이용규’였기에 한화는 더 강한 철퇴를 내렸고, 그만큼 전력에 큰 손실을 입었다. 이용규도, 한화도 웃지 못한 채 한 시즌이 흘러갔다.
폭풍 같던 1년이 지나고 이용규는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지난해 한화의 천덕꾸러기로 여겨졌던 그가 올해는 선수단의 새 리더로 금의환향했다. 한화 선수들은 돌아온 이용규에게 직접 주장 완장을 채워 주면서 말보다 더 확실한 환영 인사를 건넸다.
이제 이용규는 지난해 이맘때와 아주 다른 선수가 됐다. 어떻게 한화와 함께 더 높이 날아오를지 고민하고, 주장으로서 해야 할 역할과 선수로서 해내야 할 역할 중 그 어느 것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운동하는 시간만큼은 단 한 번도 후배들에게 대충대충 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며 “올해는 시즌이 끝난 뒤 그저 ‘잘했다’는 한마디를 들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다. 다음은 이용규와의 일문일답.
―선수들이 직접 뽑은 주장으로 선출됐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젊은 선수들이 봤을 때, 저 선배 성격이라면 선수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구단에 잘 전달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게 아닌가 싶다. 주장이라는 자리가 딱히 다른 능력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니지 않나. 다만 어릴 때부터 베테랑이 된 지금까지, 늘 운동장에서 운동하는 시간만큼은 절대 대충하는 일이 없고 늘 잘하려고 최선을 다해왔다고 자부한다. 그런 부분을 젊은 친구들이 좋게 봐준 것 같다.”
―주장이 될 거라고 예상은 했나.
“생각도 못했다. 후보에 올랐다는 얘기를 듣고도, 누가 뽑히든 나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선수들이 후보로 올려줬는데 내 맘대로 기권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가만히 있었을 뿐, 주장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그런데 갑자기 새 주장으로 이름이 불려서 깜짝 놀랐다.”
―선거 과정은 어땠나.
“투표 전 주장 후보들이 각오 비슷한 얘기를 한 번씩 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때 나는 그냥 솔직하게 이런 얘기를 했다. ‘주장 선거는 자기와 친하고 잘해주는 선배를 뽑는 인기투표가 아니다. 팀을 어느 정도 잘 이끌어가야 하고, 구단도 그런 선수에게 주장을 맡기기 위해 투표를 하기로 한 것이니, 신중하게 잘 생각해서 한 표를 던지라’고. 장난삼아 표를 행사하지 말라는 의미로 얘기한 것인데, 정작 내가 될 거라고는 1%도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 한 시즌 공백이 있으니 야구로 뭔가 보여주고 싶은 한 해일 텐데, 중책까지 맡았다.
“주장 자리에 대한 부담은 별로 없지만, 지난 1년의 공백을 생각하면 올 시즌에 대한 걱정이 분명히 있다. 잘하면 다행이겠지만, 성적이 안 나오면 그전에 받았던 질타보다 두 배 더 많은 비난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당연히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1년 못 뛰어서 경기 감각이 떨어졌다는 건 그냥 핑계다. 못해도, 잘해도 그게 내 실력이다. 그저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 내 몫이다.”
―지난해 말 유망주들 위주로 진행되는 교육리그에 참가한 것도 이용규의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데뷔 후 교육리그에 처음으로 가봤다. 후배들에게 뭔가를 보여주려고 했다기보다 그저 내 것만 열심히 하려고 했다. 솔직히 가기 전에 많은 부분을 고민했다. 내가 가도 될지, 가서 어떻게 해야 할지. 하지만 결국 다짐한 건 하나였다. 그냥 내가 하던 대로, 항상 그라운드에서 열심히 하던 모습 그대로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모습을 후배들이 좋게 봐준 것 같다.”
―선수단으로 복귀하면서 이런저런 염려가 많았을 텐데, 주장으로 뽑히면서 어느 정도 안심이 됐을 듯하다.
“사실 1년 떠나 있는 동안에도 선수들과 워낙 잘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복귀 후 동료들과 관계에 대해선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수들이 내가 괜찮을지 눈치를 보고 염려하는 게 보여서 더 미안했다. 주장을 시켜준 것은 지난해 못한 만큼 올해 그라운드 안팎에서 두 배 더 뛰어달라는 메시지일 수 있다. 고맙게 생각한다.”
―주장이 된 뒤 ‘엄지척’ 세리머니를 만들었는데.
“지난해 나는 (TV로 야구를 보는) 시청자 입장이지 않았나. 야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중계를 보는데, 팀 전체가 한 세리머니를 함께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그런 분위기 속에 선수들이 조금이나마 밝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 팀이 지난 시즌 초반부터 하위권에 머물다 보니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침체돼 있었는데, 경기 중에 그런 세리머니를 하면 모두 하나가 되고 더 집중해서 경기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팬들은 우리에게 열심히 응원을 해주시는데, 우리는 보답할 게 별로 없었다는 생각을 했다. 선수와 팬이 함께할 수 있는 세리머니가 생기면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재미와 분위기가 생길 것이라고 믿었다.”
―동작을 ‘엄지척’으로 정한 이유는?
“그 동작에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멋있다’도 되고, ‘잘했다’도 되니까. 너무 장난스럽게 하고 싶지는 않았고, 심플하면서도 세련되게 하고 싶은 마음에 여러 후보를 놓고 고민하다 그것으로 결정했다.”
―남다른 마음으로 시작하는 시즌이다. 올해 팀의 목표와 개인의 목표는 무엇일까.
“일단 팀 전체적으로는 끈질기고 재미있는 야구를 하는 것이다. 나부터 변하려고 한다. 선수들에게 올해는 땅볼 하나를 치더라도 무조건 전력 질주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열심히 하다 보면 선수들끼리 서로 믿음이 생기면서 밝게 야구할 수 있을 것이고, 팬들도 더 야구장에 모이고 싶다는 마음이 들 것이다. 한화 야구가 많이 달라졌다는 얘기, 팀이 활기차고 밝아졌다는 얘기를 듣고 싶다. 나 개인적으로는 정말 큰 욕심이 없다. 그저 시즌이 끝나고 ‘이용규라는 선수가 2020년에는 참 잘했다’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면, 그게 가장 큰 성공일 것 같다.”
메사(미국 애리조나주)=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