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에서는 4·15 총선 선대위원장 후보로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이 거론되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미래통합당은 선거대책위원회 체제를 애초 3월 초 꾸릴 계획이었으나 일정이 다소 지연되고 있다. 통합에 따른 후속 공천 지원자 정리와 선대위원장 후보군 선정, 접촉 등 여러 고려해야 할 사안이 많기 때문이다. 지도부는 선대위와 관련, 공동 선대위원장을 중앙에 두고 권역별 선대위원장을 두는 그림을 대략적으로 그려놓은 상태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여당 선대위 구성에 비하면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중도, 보수 정당의 적임자를 엄선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동 선대위원장은 당 대표인 황교안 대표를 축으로 2~3인의 공동 위원장 체제가 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후보군으로는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유승민 의원, 정의화 전 국회의장,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 등까지 오르내리고 있다.
이 중 김종인 전 위원장 하마평은 조금씩 무르익는 상태다. ‘김종인 카드’는 당 최고위원회에서 중도 쪽에 가까운 인사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이준석 최고위원의 경우 지난 2012년 새누리당(통합당 전신) 비상대책위원회에서 김종인 전 위원장과 함께 비대위원을 역임한 경험을 살려 추천에 힘을 실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박근혜 비대위 체제는 19대 총선에서 승리를 거뒀고, 이후 김종인 전 위원장은 대선에서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경제민주화추진단장을 맡아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황교안 대표는 3월 3일 기자들과 만나 “다양한 방법으로 선대위 구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중 김종인 전 위원장도 포함돼 있다”라고 말했다. 황 대표 측은 지난 2월 말경 김 전 위원장에게 “만나자”며 물밑 접촉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양측의 전언을 종합해보면 만남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일단 김 전 위원장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연락을 한 것은 황 대표 측근으로, 김 전 위원장은 “황 대표가 직접 연락하라고 하라”며 잘라 말했다. 통합당 한 고위 관계자는 “김 전 위원장이 한번 튕겼고, 이후 2월 28일쯤 황 대표가 직접 연락을 했다”라고 귀띔했다.
일종의 ‘기싸움’이 벌어졌던 것으로 해석된다. 김 전 위원장의 이 같은 행보는 요구조건이 까다롭다는 것을 암시하는 행보로 풀이된다. 단순히 ‘얼굴 마담’격의 선대위원장은 맡지 않고 선거를 진두지휘할 막강한 권한을 달라는 뜻으로 보인다.
김종인 전 위원장이 요구하는 것은 우선 단독 선대위원장 체제로 전해진다. 애초 황 대표 측은 황교안 유승민 김종인을 3대 축으로 하는 3인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 측은 “공동위원장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하는 모양새다.
다음 조건으로는 ‘수도권 선거’ 지휘봉이다. 통합당 내부에서는 “김 전 위원장이 공관위에 수도권 공천권을 달라”고 요구했다는 전언이 흘러나오고 있다. 당 핵심 관계자는 “공관위 내에 주요 인사들이 모두 PK(부산·경남) 인사이기에 PK 판세는 확실히 잘 알아도 수도권 선거는 모른다는 지적들이 많았다”며 “김 전 위원장이 이 부분을 파고든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김형오 공관위원장은 부산 영도구에서 5선을 지냈다. 공관위원인 김세연 의원은 부산 금정구에서 3선을, 박완수 사무총장(초선)은 경남 창원시의창구가 지역구다. 이처럼 경남 판세를 훤히 알고 있기에 5일 PK 공천은 원칙론을 통해 홍준표 전 대표와 김태호 전 경남지사를 컷오프(공천 배제)시키고 5선 이주영 의원, 4선 김재경 의원 등 영남권 중진들을 날리는 강력한 ‘칼바람’을 과시한 바 있다. 반면 앞서 진행된 수도권 공천은 PK만큼의 센세이션을 일으키진 못했다는 평가다.
김종인 전 위원장의 수도권 선거 지휘 구상은 과거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 시절 공천 전권을 갖고 친노, 운동권 인사 등을 컷오프한 이력을 되살린 것으로 해석된다. 당시 민주당은 수도권 122석 중 87석을 휩쓸었다.
미래통합당 선대위원장 후보인 유승민 의원은 대구에 머물며 심신을 가다듬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박은숙 기자
하지만 김 전 위원장 기대와는 달리 현재 통합당 공관위에선 강력한 공천권을 행사하는 중이다. 수도권 공천도 어느 정도 마무리 지은 상황이라, 김 전 위원장 영입을 위해선 다른 ‘전권’ 카드를 제시하고 협상을 해야 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당 안팎에서 제기되는 “대체 언제적 김종인인가”라는 지적도 감안해야 할 부분이다.
또 다른 선대위원장 유력 후보군은 유승민 의원이다. 개혁보수의 상징이자, 통합 국면에서 불출마를 선언하며 백의종군을 했던 유 의원이기에 ‘중도 확장’을 위해 총선에서 역할을 맡겨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황 대표 역시 새로운보수당과의 통합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유 의원 역할론에 상당 부분 공감하고 이 같은 뜻을 유 의원 측에 전달했다.
하지만 유 의원 본인은 잠행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구에 머물며 심신을 가다듬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천과 관련해 ‘김형오가 갈수록 이상해’ 문자를 주고받은 것이 공개된 것도 타격을 줬다. 새보수당 출신 한 의원은 “유 대표 등판이 반드시 필요한 것에는 공감한다. 다만 본인의 생각엔 아직 나서기엔 이르다고 보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통합당 한 중진 의원은 “유 의원이 여기에서 역할을 안 하고 자꾸 빼기만 하면 나중에 대선도 어려워진다”며 답답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유 의원 등판은 공천 상황과 맞물릴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새보수당 출신 인사들이 얼마나 공천에서 살아 돌아오느냐, 즉 스스로 규정한 ‘개혁 공천’이 관건이다. 다만 옛 한국당 출신 인사들은 영남권에 대대적인 컷오프가 이뤄진 것도 서러운데, 유 의원 선대위원장 선임은 더욱 불공정하다며 ‘볼멘소리’를 내는 양상이다. 당 주도권을 사실상 넘기는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이런 내홍을 정리하고 황 대표가 유 의원을 설득시킬 수 있을지가 관건인 셈이다.
이 밖에 선대위원장 후보군으로 9년 전 한나라당(통합당 전신)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정의화 전 국회의장도 오르내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계파색이 엷고 합리적 보수 이미지를 지녔다는 이유에서다. 공천 지원자가 거의 없는 ‘호남’을 향해서도 손짓을 보낼 수 있다. 정 전 의장은 보수 정당 인사로는 이례적으로 광주 명예시민에 추대된 바 있다.
텃밭이지만 격전지가 존재하는 PK 지역 압승을 위해 김형오 공관위원장을 선대위원장으로 모셔야 한다는 여론도 일각에선 형성돼 있다. 현재 PK 지역 40석 중 10석을 민주당에서 점유하고 있다. 이 지역 탈환을 위해 김 위원장이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공관위 핵심 관계자는 “김 위원장에게 직접 선대위원장 의사를 물어봤더니 본인은 절대 안한다고 했다”며 “공천 작업에 매진하기도 바쁘다. 공관위를 마치면 김 위원장뿐만 아니라 모두 다 자연인으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당내에서는 아예 새로운 인물을 선대위원장으로 세우자는 의견도 있다. 혁신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청년을 깜짝 발탁하자는 목소리다. 수도권 한 중진의원은 “어차피 총선은 공천에서 결판난다. 선대위원장 활동은 일종의 이벤트”라며 “오히려 깔끔하고 새로운 이미지의 청년이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권준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