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지난 1일 발간한 ‘해외경제 포커스’에 따르면 지난 2월 1~25일 평균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는 지난 1월 평균 유가(63.8달러·약 7만 5600원) 대비 13.6% 하락한 55.1달러(약 6만 5293원)다. 한국은행은 “최근 국제유가 하락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세계 석유 수요 둔화 우려가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며 “주요 기관들은 관광 위축, 경기 둔화 등의 영향이 1분기에 집중될 것으로 보고 올해 글로벌 석유 수요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고 전했다.
가뜩이나 최근 정제마진이 하락하면서 정유업계 상황이 좋지 않은 편이다. 정제마진은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의 가격 등 원료비를 제외한 값을 뜻한다. 정제마진이 낮을수록 정유사의 수익도 낮아지며 배럴당 4~5달러(약 4740~5925원)가 손익분기점 수준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싱가포르 정제마진을 기준으로 삼는다. 에쓰오일(S-oil)에 따르면 2019년 4분기 싱가포르 정제마진은 0.2달러(약 237원) 수준이었다.
최근 몇 년간 흑자를 기록하던 에쓰오일 정유부문은 낮은 정제마진 탓에 2019년 253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서울 마포구 에쓰오일 본사. 사진=이종현 기자
최근 몇 년간 흑자를 기록하던 에쓰오일 정유부문은 2019년 253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에쓰오일은 “중국이 정유업에 본격 진출해 공급이 증가했고, IMO 2020 시행에 앞서 고유황연료유(HSFO) 가격 급락으로 정제마진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IMO 2020이란 국제해사기구(IMO)가 2020년부터 선박연료유의 황 함유량 상한선을 3.5%에서 0.5%로 강화하는 규제다.
에쓰오일은 그룹 매출에서 정유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다. 에쓰오일에 따르면 2019년 매출 24조 3942억 원 중 77.92%에 해당하는 19조 86억 원이 정유부문에서 발생했다. 계열사는 에쓰오일, 에쓰오일토탈윤활유, 동북화학, 3개에 불과하다. 다른 정유업체보다 업계 불황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에쓰오일이 최근 몇 년간 석유화학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사업 다각화에 나선 것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정유사업은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큰 시장이기에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사업 다각화가 필요하다”며 “향후 성장 확대가 예상되고 수익성도 좋을 것으로 예측되는 석유화학 사업의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에쓰오일은 2011년 1조 3000억 원이 들어간 온산공장 확장 프로젝트를 완료하고 상업 가동을 시작했다. 온산공장은 석유화학제품인 파라자일렌(PX), 벤젠 등을 생산하며 PX 생산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2016년에는 4조 8000억 원을 투자해 울산 울주군 온산읍에 새로운 복합 석유화학 시설 착공에 들어갔고, 2019년 완공했다.
투자에 힘입어 에쓰오일은 2019년 석유화학부문에서 3조 8695억 원의 매출과 255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하지만 2019년 매출은 2018년(3조 7015억 원)에 비해 4.5%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3509억 원에서 2550억 원으로 27.3% 하락했다. 석유화학 업계에서는 최근 미국과 중국이 석유화학 제품 생산을 확대하면서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하락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 국내 대표 석유화학 업체인 금호석유화학과 롯데케미칼은 2018년에 비해 2019년 매출이 하락했다. 같은 기간 LG화학의 매출은 28조 1830억 원에서 28조 6250억 원으로 상승했지만 이는 전지부문의 실적 상승 덕이고 석유화학부문의 매출은 하락한 것으로 전해진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LG화학 석유화학부문 매출은 2018년 1~3분기 12조 8864억 원에서 2019년 1~3분기 11조 6548억 원으로 줄었다.
에쓰오일은 영업이익률이 줄고 있는 와중에도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재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갔을 것으로 보인다. 이인영 NICE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지난 2월 리포트를 통해 “(에쓰오일은) 2015~2018년 총 4조 8000억 원의 투자를 진행했고, 배당금 소요도 2017~2018년 연평균 7000억 원에 달하면서 부족자금이 발생했다”며 “2019년 배당소요는 크게 감소했으나 둔화된 이익창출력 지속, 6500억 원의 자본 지출(정기 대보수 및 설비개량 등) 등에 따라 부족자금이 일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분석했다.
에쓰오일은 영업이익률이 줄고 있는 와중에도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재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에쓰오일의 마스코트 구도일. 사진=이종현 기자
에쓰오일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실적과 무관하게 2019년부터 효율적인 인력 운영 차원에서 희망퇴직제도를 검토했고, 최근 직원들에게 설명한 것”이라며 “아직 희망퇴직제도를 도입하거나 시행하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정유업과 석유화학업이 불황인 상황과 맞물려 여러 뒷말이 나오고 있다.
에쓰오일은 2019년 6월 스팀크래커(나프타 분해시설) 및 올레핀하류시설 관련 ‘SC&D 프로젝트’에 무려 7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프로젝트의 주요 내용은 스팀크래커 등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제품 생산 시설을 만드는 것이다. 이인영 연구원은 “에쓰오일의 우수한 사업경쟁력 등을 감안하면 향후 잉여현금 창출을 통해 채무를 감축하며 재무안정성 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라면서도 “신규 투자 프로젝트 진행 시 관련 재무부담 증가가 예상된다”고 전했다.
에쓰오일도 재무구조에 적지 않은 신경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 에쓰오일 측은 지난 1월 31일 컨퍼런스콜에서 “시장에서 (차입금과 관련한) 약간의 우려가 있는 걸로 알고 있어 차입금 규모를 줄여나갈 계획”이라며 “SC&D 프로젝트는 2021년 시작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다양한 금융 옵션을 검토해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업계에서는 언젠가는 석유화학 시장이 회복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그 시기는 예측하기 어렵다. 업계 불황이 지속되면 에쓰오일의 재무 상황뿐 아니라 투자 계획에도 영향이 갈 수 있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은 세계 경제 흐름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업이기에 석유화학 업체들이 시장을 주도해 성장시키기는 어렵다”며 “코로나19 극복, 세계 경제 성장 확대 등과 맞물려 업황이 호전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