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은 밝았다. 기후도 우리를 돕고 있었다. 호흡기 질환인 코로나19는 겨울을 좋아한다. 덥고 습한 여름이 되면 사람이나 동물 등 숙주의 호흡기 면역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즉, 날이 따뜻해지면 코로나19는 힘을 못 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2월 10일 “코로나19는 4월쯤 사라질 것”이라며 “일반적으로 말해서 열기가 이런 종류의 바이러스를 죽인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전문가들 역시 빠르면 4~5월이면 안정기에 접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관련기사 “이르면 4~5월” 신종 코로나 공포, 언제쯤 해방될까).
따뜻한 기후가 되면 코로나19는 사멸할까. 일본 크루즈 여행객들이 하선해 체온측정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월 20일 신천지 교인으로 잘 알려진 31번 확진자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코로나19는 급속도로 확산했다. 3월 5일 0시 기준 우리나라 코로나19 확진자는 5766명에 달한다. 사망자는 35명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다. 이탈리아, 이란, 동남아시아, 일본 등 확진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아직 전염병 경보 최고 위험 등급인 판데믹(Pandemic·대유행)을 선언하지 않았지만 독일은 벌써 코로나19의 판데믹이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북반구의 날은 따뜻해지는데 왜 확진자는 늘고 있는 걸까. 코로나19는 날씨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일까.
방역전문가인 박찬병 서울서북시립병원장은 코로나19와 날씨의 상관관계를 두고 “코로나19가 더운 날씨에 영향을 받는다고 하기도 어렵고 아니라고 하기도 어렵다”면서도 “호흡기 질환이기 때문에 따뜻한 날씨가 확산을 방지하는 데에 분명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뜻한 날씨는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도움이 되지만 중요한 변수는 여전히 사람들 간 접촉이다. 호흡기 바이러스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전자 현미경 사진. 사진=연합뉴스
지금까지 공개된 각 국가의 코로나19 관련 자료(확진자 3월 5일 기준, 날씨 2월 기준)에 따라 날씨와 코로나19 확진자를 비교했을 때 둘 사이에서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찾기는 어렵다. 코로나19가 날씨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면 기후가 따뜻하고 습한 나라에선 확산이 더뎌야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다.
중국의 경우 코로나19 발원지로 알려진 우한이 위치한 후베이성 확진자가 6만 7466명으로 가장 많다. 2월 기준 우한의 평균 날씨는 최고 11℃, 최저 3℃다. 후베이성 다음으로 중국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나온 곳은 광둥성이다. 확진자 1351명이 나왔다. 광둥성 대표 도시인 광저우시 2월 평균 날씨는 최고 21℃, 최저 13℃다. 참고로 광저우시는 덥고 습하기로 유명한 도시다. 그 다음은 확진자 1018명이 나온 후난성이다. 후난성 주도인 창사시 2월 평균 날씨는 최고 11℃, 최저 5℃다. 광저우시가 창사시보다 10℃가량 기온이 높지만 더 많은 확진자가 나온 셈이다.
중국과 우리나라 다음으로 유럽의 이탈리아, 중동의 이란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3월 5일 기준으로 이탈리아는 3087명, 사망자 107명이다. 이란은 2922명, 사망자 92명이다. 이탈리아 수도인 로마의 2월 평균 날씨는 최고 14℃, 최저 3℃다. 이란의 수도인 테헤란은 최고 11℃, 최저 2℃다.
이탈리아와 이란은 우리나라(2월 서울 기준 최고 5℃, 최저 영하 5℃)와 비교해 날씨가 따뜻한 국가지만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세다. 사망자를 놓고 봤을 때 우리나라보다 밝혀지지 않은 감염자가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게 각국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참고로 현재 이란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가장 많다고 알려진 곳은 카스피해 연안 서북부 지역이다. 날씨의 관련성보다는 테헤란에서 전염돼 따뜻한 카스피해 연안으로 피난 온 확진자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첫 확진자 또한 테헤란에서 나왔다고 전해진다.
각 국가별, 도시별 2월 평균 기온과 확진자를 정리한 표. 코로나19가 가장 많이 확산된 2020년 2월을 기준으로 했다.
기후가 덥고 습하기로 유명한 동남아시아는 어떨까. 동남아시아의 경우 알려진 바로는 확진자가 매우 적다. 동남아시아 가운데 코로나19 확진자가 비교적 많은 태국은 3월 5일 기준으로 확진자 47명, 사망자 1명이다. 태국 수도인 방콕의 2월 평균 날씨는 최고 33℃, 최저 22℃다.
동남아시아에 이어 일본을 놓고 봐도 날씨와 확진자는 상관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에서 확진자가 가장 많은 곳은 눈꽃으로 유명한 홋카이도 지방이다. 일본 전체 확진자는 276명이다. 이 가운데 홋카이도 지방 확진자는 81명이다. 전체 29.3%에 달한다. 크루즈 선박을 제외한 통계다. 홋카이도의 중심 도시인 삿포로 2월 평균 날씨는 최고 0℃, 최저 영하 7℃다.
하지만 동남아시아의 확진자가 적은 이유가 습하고 더운 날씨에 있다거나 일본 홋카이도 지방의 춥고 건조한 날씨 때문에 확진자가 많이 발생한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진단 능력의 차이와 방역 의지의 차이로 인해 현재 국가별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코로나19 감염자 수와 국가가 찾아낸 감염자 수 사이에 간극이 클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란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자 테헤란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외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찬병 서울서북시립병원장은 “진단 능력의 차이다. 캄보디아에 확진자가 1명이 나왔다는 말을 믿기란 쉽지 않다. 이탈리아와 이란만 놓고 봐도, 확진자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적지만 사망자는 우리나라 몇 배는 된다. 이는 병세가 악화해서 손쓰기 어려운 환자만 카운팅된다는 이야기”라며 “날씨보다 인구 밀집도가 가장 중요한 변수로 보인다. 일본의 경우 홋카이도가 확진자가 많은 이유는 날씨보다는 아직 농촌이 많고 전통적인 문화가 남아 있어 사람들 사이에 접촉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특이한 신천지 예배 형태가 확산을 키운 것처럼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박 원장은 “신천지 이후 급속도로 확산하기 전처럼 안정기에 접어들려면 4월 중순 정도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음주(3월 둘째 주)가 피크가 될 것 같다”며 “완전 종식은 아마 다른 나라가 끝나야 가능할 거다. 우리나라는 미리 겪은 것이고 다른 나라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라고 덧붙였다.
신형식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병센터장은 코로나19 종식 시기에 대해선 “정확하게 말하긴 어렵다”면서 코로나19와 기온의 상관관계에 관해 “그것도 잘 알 수 없다. 다만 메르스를 보면 38℃ 습도 20%에서 생존력이 떨어졌다”고 답했다.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선 섣불리 예측하기보다는 최선을 다해 예방하는 게 답일 것”이라고 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