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 없이 일정을 강행하던 KBL과 V리그는 결국 리그 중단으로 백기를 들었다. 사진=KBL
#“하루에 손 10번씩 씻는다”
가장 마지막까지 일정을 치른 곳은 V리그다. V리그는 지난 1일 경기를 마지막으로 리그를 중단했다. 재개 시점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다수 팀들은 여전히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대부분 선수들은 숙소에 머물며 외출을 자제하고 숙소와 훈련장 등에는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지난 2월 29일 이후 경기가 열리지 않는 KBL의 시즌 중단 상황은 더욱 극적이었다. 이날 전주에서 벌어진 전주 KCC와 부산 KT의 경기를 앞두고 KCC 선수단이 묵은 숙소의 이용객 중 확진자가 발생하며 혼란을 야기했다. 그는 호텔의 조식 뷔페까지 이용한 것으로 알려져 농구계를 공포에 떨게 했다. KBL로선 리그 중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KBL 구성원 내에서는 확진자가 절대 나와선 안 된다는 의지였다. 경기 직후 KCC 선수단은 물론 KT 선수단까지 자가 격리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4주 중단’을 선언한 KBL은 10개 구단 대부분이 선수단에 일주일간 휴가를 줬다. 하지만 이전과 같은 휴가일 수는 없다. 구단에서도 선수들에게 외출을 삼가길 당부했고 선수들도 조심스러워 한다. 서울 SK 소속 전태풍은 “하루에 손 10번씩 씻는다”며 상황을 전했다. 지난 3일 한 수도권 구단 선수들이 자주 찾는 카페의 종업원도 “요 며칠간 선수들 방문이 많이 줄었다”고 귀띔했다.
V리그와 KBL은 코로나19 사태에 불안감을 느낀 일부 외국인 선수들의 연이은 이탈로도 홍역을 치렀다. 리그 일정이 중단되기도 전에 KBL의 KT와 고양 오리온은 외국인 선수가 팀을 떠나 이들 없이 경기를 해야 했다. 타 구단의 일부 외국인 선수들도 계약 상태는 유지되고 있지만 고향으로 향했다. 복귀를 약속했지만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구단들은 선수들 설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V리그도 외국인 선수들의 이탈이 이어졌다. 남자부 삼성화재의 산탄젤로는 이미 짐을 쌌고 여자부 IBK기업은행의 어나이는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추가 이탈은 나오지 않고 있지만 각 구단들은 외국인 선수들의 행보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KBL과 V리그 구단들 사이에서는 “외국인 선수가 떠나지 않는 팀이 결국 우승하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한탄도 나오고 있다.
V리그는 남녀부 각각 팀당 3~4경기, KBL은 11~12경기를 남겨둔 후반기에 다다른 시점이다. 일각에서는 “리그가 막판이라 얻을 것(잔여 연봉)이 많지 않기에 선수들이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공교롭게도 6강 경쟁을 벌이는 KT를 제외하면 외국인 선수가 이탈한 구단들은 플레이오프 진출이 사실상 어려워진 팀들이다. 구단으로부터 성적에 따른 보너스 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KT의 멀린스는 출국과 동시에 해외팀과 계약을 했고 IBK기업은행 어나이는 자신은 떠나지만 잔여연봉은 받겠다고 버티고 있어 팬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팬 소통 어떻게 할까 ‘고심’
시즌을 시작해 보지도 못하고 난관에 봉착한 K리그와 KBO 리그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앞서 시범경기를 취소하고 정규리그 개막이 오는 28일로 예정됐던 KBO 리그는 개막 일정을 일주일간 잠정 연기하기로 했다.
5일 축구회관에서 열린 이청용의 울산 현대 입단 기자회견에서도 출입 인원에 대한 체온 측정 등 엄격한 절차가 있었다. 일부 구단들은 방문 취재를 제한하고 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개막 일정에 여유가 있는 KBO 리그는 사정이 그나마 낫다. 지난 2월 29일 개막이 예정돼 있었던 K리그는 기약 없는 기다림이 계속되고 있다. 2019 시즌 K리그는 관중 집계 방식을 변경한 이래 역대 최다 관중으로 흥행 불씨를 지핀 바 있다. 그런 흐름을 코로나19 탓에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리그 전반에 만연한 상황이다.
각 구단들은 겨우내 준비한 경기를 펼치지 못한다는 아쉬움에 사로잡혀 있다. 한 구단 관계자는 “전지훈련 일정은 리그 개막전에 초점을 맞추고 선수들을 준비시키는 것”이라며 “여전히 훈련을 이어가고 있지만 경기를 치르지 못하니 다소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리그 개막에 맞춰 흥행 몰이를 위해 대전 하나시티즌 황선홍 감독과 경남 FC 설기현 감독은 인기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지만 결국 개막과 방영의 시기가 엇갈리게 됐다.
각 구단과 연맹은 경기가 없는 기간, 팬들을 위한 이벤트 기획에 고심하고 있다. 프로축구연맹은 온라인 축구게임 이벤트를 기획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한 구단 관계자는 “나도 지금 선수단과 접촉을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훈련과 선수들의 출퇴근은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선수들에게 외출시 주의 사항을 주지시키고 있다. 다른 구단 관계자는 “구단에서 알리기 전에 선수들 스스로 조심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온라인 축구게임을 통한 ‘랜선 개막전’ 이벤트를 기획하기도 했다. 배성재 아나운서와 윤태진 아나운서가 축구 게임으로 맞붙는 장면을 축구팬들이 지켜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연맹 관계자는 “리그 일정이 밀리며 기다리고 있을 팬들을 위해 급히 마련한 이벤트”라며 “축구 경기가 없어 아쉬워할 팬들에게 무언가 조금이라도 즐거움을 주려고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각 구단들의 출정식 등 오프라인 행사도 개막 전후로 모두 취소됐다. 그래서 온라인을 위주로 크고 작은 이벤트 만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전했다.
K리그 개막에 대해서는 여러 말이 오가고 있지만 연맹은 아직 정해진 게 없다고 답변한다. 연맹 관계자는 “아직 우리로서도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고 팬, 선수, 관계자 등 구성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시기를 조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