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SBS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
예의 바르고 따뜻해 사람 좋기로 소문난 은정 씨에게는 이제 막 여섯 살이 된 사랑스러운 아들 민준 군이 있었다. 이웃들은 항상 붙어 다녔던 모자의 다정한 모습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은정 씨 동네는 오래된 주택들이 가득한 재개발지역으로 살고 있던 그녀의 빌라도 곧 철거될 예정이었다. 그렇게 이웃 주민들이 하나 둘 씩 떠나가고 은정 씨도 새로 이사 갈 곳을 알아보던 참이었다.
2019년 8월 22일, 어머니와 함께 집을 보러 가기로 한 은정 씨가 온종일 연락이 되지 않았다. 친정 식구들은 전날 밤 보냈던 문자에도 답이 없던 은정 씨가 걱정되어 오후 9시께 은정 씨 빌라를 찾아갔다.
하지만 불은 모두 꺼져있었고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후 11시께 우여곡절 끝에 문을 열고 들어간 가족들. 후덥지근한 공기로 가득 차 있던 집안에서 묘한 서늘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은정 씨와 여섯 살배기 아들 민준 군은 낯선 방문자가 다녀간 밀실에서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참혹한 모자의 상태에 누구도 말을 잇지 못했다. 발견된 은정 씨는 아이 쪽을 바라보며 모로 누워있었고 거꾸로 누운 어린 아들의 얼굴 위에는 베개가 덮여있었다.
부검 결과 두 사람의 사인은 모두 목 부위의 다발성 자창. 은정 씨는 무려 11차례, 민준이는 3차례에 걸쳐 목 부위를 집중적으로 피습 당한 상태였다.
몸에 별다른 방어손상이 발견되지 않았고 둘 다 잠옷을 입은 채 발견된 점으로 보아 누군가 잠든 모자의 목 부위만을 고의로 노려 단시간에 살해한 것으로 추정됐다.
역대 최다 인원으로 투입된 경찰들. 한 달에 걸쳐 시행된 17번의 현장 감식에도 외부침입의 흔적과 지문 및 족적 등 범인을 찾을만한 단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게다가 침대 위 상당한 양의 피에도 불구하고 세면대 배수구와 빨래바구니 안의 수건에서만 모자의 적은 혈흔이 발견되었을 뿐이었다. 침대 바닥이나 거실 등 집안 그 어디에서도 제삼자의 핏자국을 찾아볼 수 없었다.
모자를 살해하고 피가 묻은 손을 씻은 뒤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고 현장에서 유유히 빠져나간 범인. 은정 씨뿐 아니라 겨우 여섯 살 된 민준 군마저 잔혹하게 살해한 사람은 누구일까.
범죄심리학자 오윤성 교수는 “이건 외부 침입 없는 밀실사건이에요. 그렇다면 비밀번호를 알고 들어오거나 안에 있는 사람이 열어주거나 둘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런데 2019년 10월 초, 경찰이 50여 일 만에 용의자를 체포했다. 용의자는 놀랍게도 은정 씨의 남편인 조 아무개 씨.
그는 당시 집이 아닌 작업장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시신이 발견되기 하루 전날 밤 빌라에 찾아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오후 9시께 집에 방문해 저녁을 먹고 잠들었다가 8월 22일 새벽 1시 반께 아내에게 인사하고 집을 나섰다는 조 씨. 사건 발생이 가능한 시간대에 빌라를 방문했고 제삼자의 외부침입 흔적이 전혀 없다는 점 때문에 구속됐다.
하지만 그가 작업장으로 돌아온 모습이 찍힌 CCTV에는 별다른 특이점이 없었고 옷과 차량에서도 피해자들의 혈흔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범행도구도 발견되지 않았다.
남편 조 씨가 범인이라고 단정할 직접적인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어떻게 처자식을 살해할 수 있냐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조 씨. 은정 씨와 민준 군은 정말 그토록 사랑했던 남편, 아빠에게 살해당한 것일까.
은정 씨 가족들은 유일한 용의자인 조 씨를 의심하며 엄중한 처벌이 내려지길 기다리고 있다.
반면 범행동기도 이를 입증할 직접 증거도 없다며 결백함을 주장하고 있는 조 씨의 가족은 방송 직전, 방송금지가처분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방송을 허락했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