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05 프로젝트’에 쓰이는 욱일기 퇴치 이미지. 많은 축구팬들이 이를 들고 인증 행렬을 벌이고 있다. 사진=김성민 대표 제공
리버풀의 욱일기 논란이 서서히 잊혀가는 시점, 국내에선 ‘욱일기 퇴치 캠페인’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8805 프로젝트’로 불리는 이 캠페인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욱일기의 의미를 세계에 알리려는 이 프로젝트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주점 ‘봉황당’에서 시작됐다.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리버풀 펍으로 유명한 이곳 김성민 대표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캠페인의 이름은 봉황당에서 리버풀의 홈 구장 안필드까지 거리 8805km에서 따왔다.
현재는 온라인 위주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각각 응원팀의 유니폼을 입고 욱일기 반대 이미지와 함께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인증하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곧 오프라인에서도 캠페인이 이어질 예정이다. 2020년 3~8월 서울, 베를린, 뉴욕, 도쿄, 리버풀 등지에서 욱일기 반대 관련 퍼포먼스를 벌인다. 이 과정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된다.
김성민 대표는 “문화 콘텐츠로 자연스럽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이종현 기자
그는 욱일기 논란에 대해 “유럽 등 서구권에서 종종 발생하는 일”이라며 “리버풀이 그 일 이후 사과를 했지만 한국 IP에서만 볼 수 있도록 했던 이유도 글로벌 구단이다보니 일본의 눈치를 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고민 끝에 그가 내린 결정은 ‘자연스런 접근’이었다. 김 대표는 “2주간 고민을 해봤다. 그간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항의 서한’ 정도로 그쳤다.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라며 “국내에서조차 욱일기 건에 대해 항의하는 일에 공감대를 전부 얻지는 못한다. 10년 전 위안부 문제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당시만 해도 색안경을 끼고 보거나 정치적 이슈로 몰고 가는 이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래서 한국에서 더 확실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스레 스며들려면 문화적 캠페인이나 음악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관련 음원 제작도 계획 중이다.
3월 1일부터 온라인 캠페인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유니폼을 입고 손에는 욱일기 반대 이미지를 들고 참여했지만 이에 반대하고 그들을 공격하는 세력도 있었다.
김 대표는 “정말 신기한 것이 어떻게 내 개인 전화번호를 알고 연락이 오는지 모르겠다. ‘왜 이런 것을 하냐’며 따지는 분들이 있다”면서 “서경덕 교수님은 살해 위협도 받았다고 하시던데 나는 그 정도는 아니다. 이 정도는 견딜 수 있는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는 리버풀 팬들이 회의적인 의견을 표출할 때다. “가끔 ‘우승을 앞두고 있는 축제 분위기에서 굳이 지난 일을 다시 끄집어와야 하냐’는 말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리버풀은 힐스버러 참사를 겪은 팀이다. 축구장 관중석 시설이 무너지며 사망자 96명이 발생한 사건이다. 당시 경찰과 언론은 피해자들을 ‘훌리건’이라고 부르며 책임을 떠넘겼다. 이를 바로잡으려 30년 가까이 노력한 이들이 리버풀 팬들이다. 어떻게 보면 욱일기 문제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정통성을 안다면, 리버풀이라는 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욱일기와 관련해 지속적인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성민 대표는 욱일기를 사용하면 안 되는 이유를 알리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면서 힐스버러 참사를 언급하기도 했다. 사진=이종현 기자
김 대표는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영화 제작 팀과 협업하고 대한광복회 등 시민단체와 함께하고 있다. 그가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멋있어 보이려면 ‘리버풀을 위해서 그랬습니다. 비뚤어진 역사를 바로잡으려고 그랬습니다’라고 하면 좋을 것”이라면서 웃었다. 그가 프로젝트 앞선에서 직접 움직이는 데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다.
“지난해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있었다. 건강도 나빠졌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떳떳하게 무언가를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더라. 나의 행동으로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면 힘든 시기도 버텨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와중에 욱일기 이슈가 터졌고 뛰어들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개인적인 이유로 시작을 했지만 여러 이야기를 들으며 점점 더 빠져들었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개인적인 이유로 시작한 프로젝트. 김 대표만의 목표는 현지 리버풀 팬클럽 대표의 공식 사과다. 그는 “‘그래, 이제 알겠으니까 우리가 책임지고 경기장 안에 팬들이 욱일기를 들고오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문서화된 약속을 받고 싶다. 이것만으로도 큰 변화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