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T를 비롯한 케이뱅크 주요 주주들은 경영 정상화를 위해 대안 마련 논의에 착수했다. 주주들은 물론 업계에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한 주주사 관계자는 “불과 하루 사이에 상황이 급변해 당황스럽다.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 새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케이뱅크에는 KT와 우리은행(13.79%), NH투자증권(10%), IMM프라이빗에쿼티(9.99%), 한화생명(7.32%) 등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자본금 확충이 어려워 무기한 개점휴업에 빠진 케이뱅크가 기대를 걸었던 인터넷은행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면서 진퇴양난에 빠졌다. 사진=연합뉴스
#국회에서 발목 잡힌 정상화 대안
2017년 4월 출범한 국내 1호 인터넷은행 케이뱅크는 ‘개점휴업’ 상태다. 은행에 돈이 없어 예금과 적금 담보 대출을 제외한 모든 신규 대출을 중단했다. 은행이 통상 예대마진(대출이자에서 예금이자를 뺀 나머지 부분)으로 이익을 낸다는 점을 고려하면 치명적인 상황인 셈이다. 국내 모든 은행을 통틀어 대출 영업을 못하는 곳은 케이뱅크가 유일하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여신을 하려면 적어도 자본금이 1조 원은 돼야 하는데 케이뱅크는 절반(5051억 원)에 그친다. 영업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재무 개선이나 흑자 전환은 꿈같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케이뱅크 주주들은 지난해 정상화를 위해 KT를 최대주주로 올리고 약 5900억 원 규모의 자금을 수혈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KT는 지난해 3월 케이뱅크의 지분을 늘리기 위해 금융위원회에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신청했다. 그런데 법이 이를 가로 막았다. 현행 인터넷은행법은 정보통신기술(ICT) 주력인 산업자본이 인터넷은행의 지분을 최대 34%까지 늘릴 수 있게 허용해주고 있다. 다만 최근 5년간 금융 관련 법령과 공정거래법, 조세범처벌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을 위반해 벌금형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고 있다. KT는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혐의로 고발당한 상태다. 금융당국은 이를 이유로 적격성 심사를 무기한 중단했다.
이 때문에 업계 안팎으로 인터넷은행법 도입 취지와 혁신금융 육성 차원에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은행권에 메기 효과를 촉발하기 위해 산업자본의 인터넷은행 진출을 허용한 만큼 규제 허들을 낮출 필요가 있다는 취지였다. 현행법에서 공정거래법 위반 전력을 제외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만들어졌고, 지난 3월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면서 기대감을 높였다.
그런데 하루 만에 분위기가 뒤집혔다. 개정안이 여야 합의 아래 법사위를 통과한 만큼 3월 5일 본회의에서도 무난히 처리될 것으로 관측됐지만 결국 부결됐다. 법사위 문턱을 넘은 법안이 본회의에서 부결되는 일은 이례적이다. 개정안이 사실상 KT가 케이뱅크의 최대주주로 등극하기 어려워지자 길을 터주려는 내용을 담고 있어 이는 ‘특혜입법’이라는 논란이 불거졌는데, 결과적으로 이 논란이 본회의에서 발목을 잡았다.
#남은 선택지들 선택하기 어려워
케이뱅크와 주요 주주들은 ‘플랜B’를 검토 중이지만 선택지는 많지 않지 데다가, 그마저도 실행이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인 개정안 처리는 시기상 이번 20대 국회에서 재도전이 불가능하다. 본회의에서 부결된 안건은 재발의할 수 있지만 법안소위 단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본회의 부결 이후 논란이 거세지자 여야 원내지도부가 “다음 회기에 우선적으로 처리하겠다”고 잠정 합의했지만, 다음 회기는 오는 4월 총선 이후다. 여야 합의는 구속력도 없고 이미 한 번 깨져버린 전력도 있다. 법안 통과에 마냥 기대를 걸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법안을 새로 내고 후속 절차를 밟게 되면 최소 6개월이 또 흐르게 된다. 케이뱅크는 이 시간을 여유를 두고 기다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케이뱅크와 주요 주주들이 꺼낼 수 있는 다른 카드들도 실현 가능성이 높은편은 아니다. 사진은 심성훈 케이뱅크 은행장. 사진=연합뉴스
법안 통과 외에 가장 유력한 방안은 KT 자회사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KT가 가진 지분 전체를 자회사인 비씨카드에 넘기고, 케이뱅크의 신주 발행분을 비씨카드가 인수하는 방식이다. 다른 자회사인 KT에스테이트와 비씨카드가 케이뱅크 지분 34%를 나눠서 보유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이문환 전 비씨카드 사장이 새 케이뱅크 은행장으로 사실상 내정된 만큼 이 방안이 실행되는 쪽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 전 사장은 KT 쪽 추천 인사로, 지난 2월 14일 비씨카드 사장에서 물러났다.
자회사를 활용하는 방식은 앞서 카카오뱅크 2대주주인 한국투자금융지주가 활용하기도 했다. 한국투자금융지주는 손자회사인 한국밸류투자자산운용에 카카오뱅크 지분을 넘기면서 대주주 적격성 문제를 피했다. 한국투자금융지주는 처음 한국투자증권에 카카오뱅크 지분을 넘기려 했으나 한국투자증권이 공정거래법 위반 전력이 있어 우회로를 찾았다.
다만 이 방식을 사용할 경우 ‘특혜’ 논란에 이어 ‘꼼수’ 논란이 불거질 수 있어 케이뱅크와 KT 모두에게 부담이다. KT 자회사들의 자본력 등을 감안할 때 지분 인수와 대규모 증자 실현이 가능할지도 미지수다. 다른 주주들의 동의도 얻어야 하는 숙제도 안고 있다. 한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KT와 케이뱅크의 통신-금융 시너지 전략을 보고 투자한 주주들이 KT는 빠지고 자회사가 지분을 가져가는 방식에 공감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존 주주를 통해 증자하는 방안은 차선책이다. 케이뱅크의 다른 주주사 관계자는 “기존 주주들이 일정 규모로 증자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주주 가운데 우리은행과 NH투자증권이 증자 후보로 꼽힌다. 두 곳은 KT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다.
다만 금융권은 증자를 하려면 최소 5000억 원 규모가 단행돼야 케이뱅크가 정상화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결코 적지 않은 규모인데다, 증자를 해도 후발주자인 카카오뱅크(자본금 1조 8200억 원)와 격차는 여전히 크다. KT가 아닌 기존 금융권이 최대주주가 되면 ‘ICT 전문성을 가진 인터넷전문은행’이라는 설립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KT를 대신할 ICT 업계나 다른 분야의 새 주주를 찾는 방안도 있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다. 케이뱅크는 자본 확충이 오랜 기간 막혀 있었던 탓에 국내 1호 인터넷은행이라는 타이틀을 제외하고 시장의 관심을 끌 만한 무기가 없다.
일부 주주사들 사이에선 기존 틀을 깨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으로 전해진다. KT의 최대주주 역할이 불투명해진 만큼 원점에서 판을 새로 짜야 한다는 취지다. 이 같은 대안들에 대해 케이뱅크 관계자는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증자와 관련해 접촉하고 있는 투자자들이 몇 군데 있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