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혼전 임신과 결혼 소식을 알린 엑소의 멤버 첸을 두고 팬덤 내에서 탈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SM엔터테인먼트 제공
첸의 탈퇴를 요구한 팬덤 ‘엑소엘 에이스 연합’이 시위 외 이 같은 단체 행동에 나서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일부터다. 이 팬덤은 이른바 ‘택배 총공(총공격)’이라는 이름으로 첸과 관련한 앨범 등 굿즈를 훼손한 뒤 이를 택배 상자에 담아 SM엔터테인먼트 사옥으로 발송했다. 상자에는 “첸의 탈퇴를 기원한다” “애 아빠가 돼버린 아이돌의 물건이 들어 있습니다” 등 첸과 SM 측을 조롱하는 문구가 쓰여 있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SM 측이 일부 택배의 수취를 거부하자 택배사를 바꿔 다시 발송하는 일도 있었다.
이틀에 걸쳐 SM 측에 택배 총공을 이어갔던 이들은 요지부동인 SM 측을 상대로 또 다른 단체 보이콧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계획에는 첸의 탈퇴를 요구하는 내용을 담은 버스 광고 등이 포함됐다. 이 광고는 첸이 자란 곳으로 알려진 경기도 시흥시 시내버스에 부착될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월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SM TOWN 코엑스아티움 앞에서 엑소 팬클럽 회원들이 첸의 퇴출 촉구 집회를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같은 ‘탈퇴 총공 사태’는 팬덤 내 기류가 양분되면서 더욱 가열되고 있다. 첸의 탈퇴를 요구하는 ‘첸 배제’파 팬들과 첸을 포함한 9인 멤버 체제를 지지하는 팬들 사이에서 같은 팬들을 상대로 모욕 등 악플 관련 고소‧고발전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발은 SM 측이 관여해야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팬들간 싸움에 소속사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따른다.
장기간 활동한 아이돌을 두고 멤버의 탈퇴 또는 재편성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것은 대부분 연예기획사가 겪는 관례기도 하다. 1세대 아이돌에서는 god의 박준형 탈퇴를 놓고 팬덤이 이를 반대하며 단체 행동에 나선 바 있고, 2세대에서는 보이그룹 2PM의 박재범 퇴출 사건 당시 소속사와 그룹에 대한 세계 팬덤의 집단 보이콧이 이뤄졌다. 실제로 후자의 경우 이례적으로 소속사 관계자들이 팬들을 모아놓고 간담회를 열어 직접 탈퇴 사정을 설명하는 등 팬들의 눈치를 상당히 살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유사한 사례들이 있음에도 이번 첸 사태에 업계 관계자들의 이목이 특히 집중되는 것은 멤버의 잔류가 아닌 ‘탈퇴’를 요구하며 팬덤이 유례없이 거센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더욱이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가 선배 그룹인 슈퍼주니어 때도 비슷한 일로 홍역을 치렀음에도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어 팬들의 분노에 더욱 기름을 붓고 있다는 것.
지난 3월 4~6일 첸의 탈퇴를 요구한 엑소 팬덤의 ‘택배 총공’이 이뤄졌다. 사진=트위터 캡처
실제로 슈퍼주니어는 2014년 멤버 성민이 뮤지컬 배우 김사은과 결혼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면서 팬덤을 큰 충격에 빠트린 바 있다. 그룹 활동을 위해 침묵하고 있던 슈퍼주니어의 팬덤은 성민의 무책임한 행동과 팬 기만 등을 이유로 결국 2017년 6월 성민의 퇴출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SM 측이 이 같은 요구를 온전히 받아들이진 않았으나 이 직후부터 2019년까지 슈퍼주니어의 활동에서 성민은 그룹이 아닌 개인 활동으로 노선을 변경해야만 했다. 어느 정도는 팬덤의 눈치를 본 셈이다.
첸의 경우에 대해서 여전히 “전원 함께 활동하고자 하는 멤버들의 의견을 종합해 멤버 변동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 고발전으로 이어질 정도로 양분된 팬덤을 두고도 소속사가 제3자인 양 뒷짐을 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에 대해 연예계 한 관계자는 “슈퍼주니어의 경우는 성민의 결혼 발표 당시 활발히 활동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였던 반면 엑소의 경우는 멤버들의 군입대 등으로 그룹 완전체보다 개별 활동을 미리 계획한 상황이었기에 굳이 나누자면 성민의 결혼 발표가 소속사로선 훨씬 타격이 컸을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처럼 개인 활동에 주력한다면 굳이 전체 팬덤을 눈치 볼 필요 없이 여전히 첸을 지지하는 국내외 개인 팬덤의 화력만 있으면 된다고 판단한 게 아닌가 싶다”면서도 “다만 첸이 퇴출이나 자진 탈퇴에 이를 정도로 부도덕하거나 위법한 행위를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작정 팬덤의 요구를 들어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소속사만 비난하는 것은 좀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