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자체 조사 결과 국내 제약·바이오기업 15곳이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에 착수했거나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또 4곳의 정부기관도 자체적으로 백신·치료제 개발에 돌입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참여하는 곳은 SK바이오사이언스, GC녹십자, 보령바이오파마, 스마젠, 지플러스생명과학, 5곳이다.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뛰어든 곳은 셀트리온, 한국유나이티드제약, 셀리버리, 노바셀테크놀로지, 이뮨메드, 유틸렉스, 지노믹트리, 카이노스메드, 코미팜, 점벡스, 10곳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자체 조사 결과 국내 제약·바이오기업 15곳이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에 착수했거나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 시내 한 약국 앞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최준필 기자
대형 제약사들은 주로 국책과제 지원을 통해 백신·치료제 개발에 힘을 보태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와 셀트리온은 질병관리본부(질본)의 국책과제인 ‘2019 코로나19 치료용 단일클론 항체 비임상 후보물질 발굴’에 지원한 상태다. 또 GC녹십자는 질본의 ‘합성항원 기반 코로나19 서브유닛 백신 후보물질 개발’에 지원했다.
반면 중소 제약사들은 자체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상대적으로 이름값이 낮은 제약사가 치료제 개발에 성공하면 그야말로 회사의 위상이 달라질 수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대형 제약사들은 기존 상품들로 안정적인 영업을 하고 있다보니 주로 신생 스타트업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전했다.
이뮨메드는 치료제 ‘HzVSFv13주’를 통해 임상 1상을 진행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코미팜은 신약물질 ‘파나픽스’를 통해 폐렴 유발 물질인 ‘카이토카인 폭풍’을 억제하는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코미팜은 지난 2월 26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긴급임상시험계획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밖에 유틸렉스는 면역항체를 활용한 코로나19 치료 신약 개발에 착수했다. 카이노스메드도 한국파스퇴르연구소와 자체적으로 연구한 화합물의 스크리닝을 준비하고 있다. 스크리닝이란 다른 질병 치료 목적으로 개발된 약물 중에 코로나19 치료 효과가 있는 약물이 있는지 검사하는 것이다.
정부 기관에서도 치료제 개발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에 따르면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영장류센터는 개발 중인 약물의 코로나19 치료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4월 초까지 코로나19 감염모델(영장류)을 개발할 계획이다.
하지만 치료제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된 후 개발하면 판매로 이어지지 못해 제약사 입장에서 재무적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 때문인지 치료제를 개발 중인 제약사들은 이미 개발했거나 개발 중인 의약품에서 코로나19의 치료 효과를 확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미 개발한 의약품은 수년이 걸리는 임상시험 기간을 수개월로 단축해 비교적 단기간에 개발할 수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측은 “단기간에 치료제를 개발하기는 힘든 상황이라 기존 치료제의 적응증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임상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치료제를 개발 중인 한 업체 관계자는 “지난 10년 동안 개발하던 신약이 있는데 이 신약이 코로나19 치료제로 효용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해 임상을 신청했다”며 “코로나19를 타깃으로 개발했던 건 아니지만 최근 사태가 심각해 프로젝트를 하나 더 늘린 것뿐이다”라고 전했다.
적지 않은 업체들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실제 개발에 성공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코로나19가 유행한 후 한산한 명동 거리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최준필 기자
적지 않은 업체들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실제 개발에 성공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가 유행할 때도 적지 않은 제약사가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나섰지만 아직까지 개발된 건 없다. 앞의 제약업계 관계자는 “기술력의 차이로 단기간에 신약 개발을 할 수 있는 회사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며 “국내 중소 제약사들이 치료제 개발에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확률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치료제를 개발 중인 코미팜도 “임상시험약물이 의약품으로 최종 허가받을 확률은 통계적으로 10% 수준으로 알려졌다”며 “임상시험 및 품목허가 과정에서 기대에 상응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으며 상업화 계획을 변경하거나 포기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고 공시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공시 규정에 따라 그렇게 기재하라고 안내받은 것이고, 우리는 (치료제 개발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치료제 개발 성공 가능성과 관계없이 최근 주식 시장에서는 코로나19 치료제를 개발 중인 업체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최근 코로나19 관련 테마주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제약업계 다른 관계자는 “기존에 폐렴과 관련한 연구·개발(R&D)을 하고 있어서 치료제 개발에 나선 곳도 있지만 사업 목적과 상관없이 코로나19 테마주로 묶여 투자를 받으려는 곳도 상당히 많은 것 같다”며 “신약 개발에 실패한다고 회사가 문 닫는 경우는 거의 없고, 다른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또 적지 않은 투자를 받는다”고 전했다.
이처럼 개발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고, 주식 시장에서 혼란도 야기하지만 치료제 개발 시도가 의미 없는 건 아니다. 앞의 제약업계 관계자는 “치료제를 만든 후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면 타이밍이 맞지 않고, 코로나19 변종이 생기면 개발을 다시 할 수도 있다”면서도 “일각에서는 향후 코로나19가 계절병처럼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와 지금부터 준비하면 변종이 나와도 지금보다 빠르게 치료제를 만들 수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치료제를 개발 중인 다른 업체 관계자는 “신약을 개발했을 때 시장성을 가져올 수 있는가는 제약사들의 영원한 고민”이라면서도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제약사의 업이고, 이에 맞춰 투자를 하는 게 맞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