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1일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 개헌 발안권 회복을 촉구한 여야 국회의원들. 사진=연합뉴스
국민 헌법 발의안은 헌법 제128조 1항 개정을 추진하는 법안이다. 헌법 제128조 1항은 “헌법 개정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번에 발의된 개정 법안은 “헌법 개정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나 국회의원 선거권자 100만 인 이상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는 내용이다. 개헌의 문호가 일반 국민에게도 열리게 되는 셈이다.
국민 헌법 발의안은 예전에도 존재했었다. 이 법안은 1954년 이승만 정부 당시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 처음으로 헌법에 등장했다. 현경대 변호사(87년 개헌특위 간사)는 이 국민 헌법 발의안을 “이승만 대통령의 영구 집권을 꾀하는 과정에서 나온 사탕발림”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국민 헌법 발의안은 1972년 유신 개헌과 함께 헌법에서 삭제됐다. 그로부터 48년 뒤인 2020년, 국민 헌법 발의안은 다시 한번 정치권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3월 8일 국민개헌발안연대는 “‘국민 발안제’ 도입을 위한 헌법 개정안이 국회의원 148명의 참여로 3월 6일 발의됐다”고 밝혔다. 국민개헌발안연대는 경제정의시민실천연합, 대한민국헌정회,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 25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단체다.
국민개헌발안연대는 “현행 헌법은 1987년 개정돼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아 개정 요구가 많았다”면서 “역대 국회의 개헌 노력은 실패를 거듭했다. 그래서 전면 개헌에 앞서 ‘개헌을 위한 개헌’을 추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발안개헌연대의 이 같은 입장 발표는 ‘개헌의 장벽을 낮춤으로써 개헌 논의를 더욱 활발하게 이뤄지게 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국민 헌법 발의안을 대표발의한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임준선 기자
국민 헌법 발의안에 참여한 국회의원 148명 가운데 92명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미래통합당에선 김무성 의원을 비롯한 의원 22명이 함께했다. 민생당 18명, 정의당 6명, 국민의당 2명, 미래한국당 1명, 무소속 7명이 법안 발의에 동참했다. 개헌 필요성에 공감하는 의원들이 초당적 차원으로 원포인트 개헌에 참여한 모양새다. 법안 공동 발의 의원 중 과거 동교동-상도동계 의원들의 비중이 높다는 점 역시 눈에 띄는 대목이다.
여권 내부에선 ‘원포인트 개헌’을 주춧돌 삼아 총선 이후 전면 개헌을 진행하려는 청사진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월 11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1차로 ‘총선 동시 국민투표’를 통해 원포인트 개헌으로 국민 개헌 발안권을 회복하고, 2차로 총선 이후 전면 개헌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 헌법 발의안을 대표발의한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간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개헌이 실행되지 않았다”면서 “국민 이름으로 개헌 발의를 할 수 있으면, 정치 이해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원포인트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유신 잔재 청산’을 외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상수 국민발안개헌연대 공동대표는 “국민 개헌 발안권이 유신 정권 당시 대통령에게 넘어갔다”면서 “유신 헌법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국민 헌법 발의안의) 목표”라고 밝혔다.
원포인트 개헌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거세다. 먼저 “원포인트 개헌 자체가 시기상조”라는 비판이다. 심재철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3월 9일 “개헌은 21대 국회 원구성이 이뤄진 뒤 하는 게 맞다”고 했다. 심 원내대표는 “87년 체제 수명이 다해 개헌이 필요하다는 의견엔 일리가 있다”면서도 “지금은 타이밍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심 원내대표는 “우리 당(미래통합당)에서도 김무성 의원 등 22명이 (국민 헌법 발의안에) 동참했다”면서 “개정안을 보면 유권자(선거권자)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하면 독자적인 개헌안을 발의하자는 취지다. 어떻게 이용될지 뻔히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최근 미래통합당 공천 심사에서 컷오프 대상으로 분류된 윤상현 의원은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념단체, 이익단체의 개헌 요구 서명지가 국민의 요구로 치환될 수 있느냐”고 국민 헌법 발의안에 대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국민 헌법 발의안 발의를 “정치적 포퓰리즘”이라면서 “왜 20대 국회 임기가 다 끝나가는 지금 (국민 헌법 발의안을) 논의해야 하는가. 이 법안에 ‘국민’은 찾을 수 없다. 그저 정치적 선전 수단만 보인다”고 했다.
김무성 미래통합당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반면,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원포인트 개헌안을 공동발의한 김무성 의원은 3월 9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국회에서 지금 당장 개헌을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라면서 “(국민 헌법 발의안은) 주권자인 국민에게 헌법 개정 권한을 돌려주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당내서 불거지는 ‘원포인트 개헌 동조 의원을 향한 비판론’을 해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의원은 “일각에서 민주노총과 전교조 등 좌파단체만으로 100만 명 서명을 받아 헌법을 개정할 수 있다는 오해가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헌법 개정은 단순히 개정안 발의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발의된다고 하더라도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찬성을 얻고, 국민투표에서 다수 찬성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김 의원은 “일부 좌파 단체 의사만으로 대한민국을 망가뜨리는 개헌이 이뤄지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며 ‘원포인트 개헌 비판론’을 일축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번 원포인트 개헌안 발의를 두고 ‘기습 발의’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원포인트 개헌 추진 과정에서 공론화 작업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미래통합당 한 당직자는 “코로나19로 정국이 혼란에 빠진 가운데, ‘원포인트 개헌안’이 슬그머니 등장했다. 개헌 관련 법안 발의 과정이라고 하기엔 공론화 과정이 지나치게 생략된 감이 있다”고 꼬집었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위원은 국민 헌법 발의안과 관련해 “개헌 이해 당사자인 국민으로부터 개헌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엔 긍정적인 요소가 있다”면서도 “다만 (국민 헌법 발의) 형태가 정치적 편향성이나 특정 정치 지지층의 동기부여로부터 발생한다면, 결함이 생길 수도 있다고 본다”는 분석을 내놨다.
채 연구위원은 “국민 헌법 발의안이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한다는 시각도 있다”면서 “대의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를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면 그렇게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원포인트 개헌은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시민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라 본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3월 10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국민 헌법 발의안 제도 도입을 위한 헌법개정안 공고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일간 헌법 개정안을 공고하게 된다. 정부 공고 60일 이내 국회가 국회의원 재적수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헌법 개정안을 의결하면, 이로부터 30일 이내에 국민 투표를 실시한다.
국민 헌법 발의안은 3월 27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국민투표는 4·15 총선과 함께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번 원포인트 개헌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지엔 물음표가 붙어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발의에 참여한 국회의원 148명 외에 49명이 추가로 찬성표를 던져야 법안 통과가 가능하다”면서 “원포인트 개헌안의 국회 통과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국민 헌법 발의안’ 대표 발의 강창일 “유신헌법 탓 사라진 국민 권리” ―국민 헌법 발의안의 의미가 궁금하다. “10여 년 전부터 ‘헌법 개정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막상 국회에서 논의하게 되면 전부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접근을 해가지고 전혀 진척이 안 됐다. 지난 19대 국회 때도 그랬고, 이번 20대 국회도 마찬가지다. 대선 후보들도 늘 개헌의 필요성을 얘기만 하다가 선거가 끝나면 논의가 멈췄다. 20대 국회에서도 4년 동안 개헌을 추진해 왔다. 그런데도 전부 당리당략적 측면으로 접근하다 보니 성과가 없었다. 그래서 발상의 전환을 했다. 오히려 국민들도 헌법 개정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국민 헌법 발의권은 과거 존재했던 헌법 조항이다. 유신 헌법이 만들어지면서 삭제된 조항이다. 국회와 대통령 그리고 국민에게 있던 발안권 중 국민의 것이 사라져 버린 셈이다.” ―국민 100만 명의 서명이 헌법 개정안으로 통과되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가. “국민들이 헌법 개정안 제출을 한다고 하더라도, 결국엔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가 찬성을 해야 해당 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그저 헌법 개정안 발안 권리를 국민들께도 드리자는 취지다. 이번에 ‘원포인트로 개헌을 해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법안을 발의하게 됐다. 87년 헌법은 벌써 33년이 됐다. 이제 합법적 헌법 개정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더 이상은 늦출 수 없다.” ―다양한 정당 국회의원들이 초당적으로 발의에 참여했다. “국회 헌정회라는 단체가 있다. 전직 국회의원들이 소속돼 있는 단체다. 여기 소속된 전직 의원들이 ‘헌법 개정을 하자’고 앞장섰다. 이상수 전 의원이라든지 김창수 전 의원 등이 나서서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과 개헌 추진 논의를 했다. 어찌 됐건 국회에서 법이 통과돼야 원포인트 개헌도 가능하지 않나. 그래서 초당적 개헌 추진단을 만들었다. 미래통합당에선 김무성, 여상규 의원이 추진단으로 합류했고, 더불어민주당에선 원혜영, 이종걸 의원 등이 모였다. 의원 11명이 초당적 차원으로 국민발안개헌추진단을 만들었다. 거기서부터 원포인트 개헌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번 법안을 발의하는 과정에서 미래통합당 소속 의원 22명이 동참하고 있다. 처음에는 미래통합당에서 한 50~60명 정도 되는 의원들이 원포인트 개헌안에 참여하겠다고 했었다.” ―국민 헌법 발의안 본회의 통과 가능성은 어떻게 전망하나. “미래통합당이 지금처럼 반대하면 통과가 어렵다. 재적 의원 3분의 2가 찬성을 해야 하지 않나. 그러나 국민적 여론이 형성된다면, 미래통합당도 원포인트 개헌안에 동의하지 않을까. 여론이 형성된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이동섭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