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1일, 유엔 기준 193개국 중 119개국에서 한국발 입국자에 대한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1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의 한산한 모습. 사진=박정훈 기자
12일 현재 한국발 입국자 입국금지를 조치한 국가는 51개국이다. 이 가운데 한국 전지역에 대해 입국금지를 한 국가가 46개국, 대구·경북 등 일부 지역에 대해 입금금지를 한 국가가 5개국이다. 한국발 항공기를 탑승한 자에게 14일 동안 의무 시설 격리 조치를 취하는 국가도 18개국으로 보건당국의 통제 아래 의무 격리 조치되는 상황 역시 입국금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14일 동안 격리되기 위해 타국을 방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외 비자발급을 중단하거나 자가 격리를 요구하고 건강 검진 증명서를 제출해야 하는 등 검역을 강화한 국가도 50개국이나 된다.
#입국금지국 항공도 안 떠
각국의 한국발 입국 금지 및 제한 조치는 양국을 잇는 항공편의 무더기 운항 중단을 가져왔다. 대한항공은 1차로(3월 11일 16시 기준) 4월 25일까지의 잠정 운항중단 노선을 대거 발표했다. 미주노선은 보스턴 뉴욕 댈러스 라스베이거스 로스앤젤레스 시애틀 토론토 등의 노선을 운항 정지하고 유럽노선은 밀라노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비엔나 자그레브 이스탄불 취리히 프라하 프랑크푸르트 로마 텔아비브 등의 노선을 잠정 중단한다. 주요 미주노선과 유럽노선 중 25개 노선을 비운항하거나 감편하는 조치다.
또 러시아는 모스크바 블라디보스토크 노선을, 대양주는 시드니 브리즈번 오클랜드 노선을, 동남아시아는 방콕 치앙마이 나트랑 다낭 하노이 호치민 푸켓 발리 싱가포르 등 25개 노선을, 중국과 일본은 거의 전 노선을 운항 중지했다. 아시아나항공도 시애틀 호놀룰루 시드니 리스본 베네치아 파리 런던 이스탄불 등 주요 장거리 노선 및 일본 전 노선에 대해 운항을 중단했다.
대한항공은(3월 11일 16시 기준) 1차로 4월 25일까지의 잠정 운항중단 노선을 대거 발표했다. 사진=대한항공 홈페이지 캡처
중국, 일본, 동남아 노선이 운항 편수의 90%를 차지하는 LCC(저비용항공사) 역시 어쩔 수 없이 노선을 중단하고 나섰다. 에어서울, 에어부산, 이스타항공은 전체 국제노선의 운항을 중단했다. 제주항공은 전체 87개 노선 중 7개 노선만 운항하며 티웨이항공은 50개 노선 중 2개 노선, 진에어는 32개 중 7개 노선만 운항하는 등 최소한의 항공기만 띄우고 있다. LCC로서는 거의 전 노선에서 운항을 중지했다고 볼 수 있다.
외항사들 역시 한국행 노선을 잠정 중단하거나 감편하고 있다. 한국인 입국을 제한하는 국가가 늘면서 한국과의 노선 운항을 80% 이상 줄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재 해외에 나가 있는 재외 국민이나 유학생, 비즈니스맨들의 한국 귀국길도 쉽지 않다.
#한국 가는 항공편은 어디에
출장차 터키 이스탄불을 경유해 바르셀로나로 가는 항공권을 구매했던 A 씨는 출국 당일인 3월 1일 항공 카운터에서 갑자기 터키 정부로부터 한국인 입국이 막혔다는 소식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 3월 1일 오전 터키 복지부 장관이 갑자기 터키로 들어오는 한국, 이란, 이탈리아 항공기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다음 날 다른 항공사를 통해 겨우 출국했지만 출국 시 이용했던 항공사도 인천행을 단항해 보름 뒤의 귀국에 문제가 생겼다.
A 씨는 바르셀로나에서 인천으로 가는 귀국편을 구해보려고 애썼지만 직항도 끊기고 경유편도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유럽에서 경유지까지 갈 수는 있어도 경유지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항공편을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말았다. 한국행 항공편이 무더기로 운항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항공사에 문의했지만 “인천행 항공편이 없어 환불해 줄 테니 귀국편은 알아서 구하라”는 말을 들었을 뿐이다. 동남아시아를 경유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한국인 입국금지 조치를 내렸기 때문에 단순 경유라 해도 항공편에 따라서는 불가한 경우도 있다.
애초에 왕복 항공권을 구매했던 항공사에 컴플레인을 걸자 돌아온 것은 말도 안 되는 항공권이었다. 243시간, 즉 열흘이 넘는 환승대기가 표시된 항공권에는 바르셀로나에서 이스탄불까지 가는 항공편만 기재되어 있을 뿐 귀국 여정엔 인천행이 빠져 있었다.
그는 “세계 절반의 나라에 한국인 입국제한이 걸리고 인천행 항공도 잇따라 중단되다 보니 한국에선 밖으로 나오질 못하고, 나와 있는 사람은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돼버렸다”며 “전 세계 여권 순위 3위로 파워풀했던 한국 여권이 이렇게 괄시를 받을 수 있냐”며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
한국행 항공편이 무더기로 운항 중단되면서 해외에 나가 있는 재외 국민이나 유학생, 비즈니스맨들의 한국 귀국길도 쉽지 않다. 사진=제보자
뉴질랜드 유학생 B 씨의 경우는 더 황당하다. 인천-뉴질랜드 직항이 갑자기 운항 중지되는 바람에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것. 에어뉴질랜드가 3월 7일부터 인천-오클랜드 노선을 6월 말까지 중단한다고 밝혔고 대한항공 역시 직항편 운항을 갑자기 중단하면서 인천행 티켓을 구매한 고객에게 호주를 경유해 귀국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곧 대부분의 호주-인천 노선마저 중단됐다. 가까운 호주를 놔두고 어렵게 동남아시아를 돌아가야 하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았다.
또 3월 9일 아시아나 항공을 이용해 오클랜드에서 도쿄를 거쳐 인천으로 귀국하려던 승객들도 발이 묶였다. 아시아나항공의 도쿄-인천 노선이 갑자기 운항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3월 10일 뉴질랜드에서 인천으로 직항 귀국편을 구매했던 B 씨는 시드니에서 나리타로 다시 방콕으로 경유지를 바꾸며 겨우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일본의 경우 3월 9일부터 한국과 일본 양국이 상호 무비자 입국을 거부하고 기존 비자도 모두 취소하겠다고 밝힘으로써 항공편도 끊겨 양국 간 인적 교류가 사실상 중단됐다. 아시아나항공은 9일부터 전 일본노선에 운항 중지했으며 대한항공 역시 인천-나리타를 제외한 모든 일본 노선을 중단했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대부분의 항공사가 입국금지된 국가로 가는 항공편 취소에 대해서는 고객에게 수수료나 위약금 없이 전액 환불해 준다. 불가항력적인 일로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이미 티켓을 구매한 고객 입장에서는 수수료보다 귀국편은 사라졌는데 대체 항공편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황망하다. 게다가 항공사로 항공권 취소와 환불 문의가 급증하면서 상담 인력이 부족해져 항공사와의 통화조차 어려운 형편이다. 외항사는 더욱 심하다.
또 항공편이 자체 결항하기 전에 고객이 이런 상황을 염려해 미리 환불받는다면 위약금을 지불해야 한다. 더구나 제3국을 경유하는 항공편으로 따로 구매했을 경우 환불도 절반만 되는 등 애매한 경우도 생긴다. 중간 경유지까지는 무난히 올 수 있어도 한국행으로 오는 항공편을 찾기도 쉽지 않다.
이탈리아의 경우는 확진자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지역이동제한 명령이 내려진 상태다. 외국인의 경우 귀국 항공티켓이 있다면 이동할 수 있지만 귀국행 항공편이 여의치 않아 티켓을 구하지 못했을 경우 지역 밖으로의 이동도 원활하지 않아 한국인들의 발이 묶이고 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