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물갈이 작업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총선)의 활시위는 곧장 과녁을 향해 떠났다. 이젠 끝장 승부다. 과거와는 달리 이번 총선 승리 기준점의 핵심 변수는 ‘비례정당용 위성정당’이다. 그간 베일에 싸인 시뮬레이션이 공개되자, 여당도 서둘러 비례연합정당 열차에 몸을 실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무력화한 미래통합당 반칙에는 편법을 써서라도 맞서야 한다는 ‘이이제이’ 전략이다. 여당의 시나리오가 들어맞을지, 선점효과를 누린 미래통합당이 승리할지, 결과는 국민만 안다.
3월 8일 오후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열린민주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이근식 신임 당대표와 손혜원, 정봉주, 박홍률, 김대성 최고위원(좌측부터)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총선 최대 관전 포인트는 ‘과반 의석’ 확보 여부다. 과반 확보는 곧 총선 승리다. 최근 네 차례(17∼20대)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제1당이 과반 의석수에 실패한 것은 20대 총선(더불어민주당 123석 vs 새누리당 122석)뿐이다. 17대 총선은 ‘열린우리당 152석 vs 한나라당 121석’, 18대 총선은 ‘한나라당 153석 vs 통합민주당 81석’, 19대 총선은 ‘새누리당 152석 vs 민주통합당 127석’으로 제1당은 어김없이 과반을 차지했다. 총 네 차례의 승패는 2-2다. 다만 과반 의석 확보는 통합당(전신 포함) 두 차례(18, 19대 총선)로, 민주당(17대 총선)을 앞섰다.
다급한 쪽은 여당이다. 문재인 대통령 집권 4년 차 때 치르는 이번 선거는 사실상의 ‘정권 중간평가’다. 만에 하나 제1당을 뺏기면 문 대통령은 곧장 레임덕(권력누수)으로 직행한다. 이기더라도 총의석수가 과반을 밑돌면, 롤러코스터 정국이 불가피하다. 20대 국회 때도 그랬다. 당시 제1당을 차지한 민주당은 이듬해인 2017년 19대 대선까지 연거푸 승리했지만, 회기 4년 내내 정의당을 비롯한 군소 정당에 캐스팅보트를 내줬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과 준연동형 선거구제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이 대표적이다.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국회선진화법 이후 한동안 사라졌던 ‘빠루’가 등장하자, 여야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특히 여당인 민주당의 부담은 더 컸다. 당 한 관계자는 “총선 과반 확보를 못 한 죄”라고 밝혔다.
여당의 21대 총선 전망은 안갯속이다.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득실을 둘러싼 내부 분열과 코로나19 블랙홀, 이해찬 발 시스템 공천의 민낯 논란 등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다만 당 내부에선 최소 ‘135석+알파(α)’, 최대 ‘150석’ 이상으로 목표치를 잡았다. 최소와 최대를 가르는 기준은 비례연합정당이다. 3월 10일 국회 본청 민주당 의원총회장. 이근형 전략기획위원장이 연단에 섰다. 그는 △진보진영의 비례연합정당 불발(제1안) △민주당과 연합정당 각각 비례대표 후보 출마(제2안) △민주당의 비례연합정당 참여(제3안) △정의당까지 합류한 비례연합정당 출범(제4안) 등 총 네 가지 시나리오를 현역 의원들에게 보고했다.
1안은 민주당에 최악 시나리오다. 통합당은 145석(지역구 119석+비례대표 26석)을 차지하는 반면, 민주당은 137석(지역구 130석+비례대표 7석)에 그친다. 제2안은 민주당 143석(지역구 130석+민주당 비례대표 3석+비례연합정당 10석)으로, 141석(지역구 119석+비례대표 22석)의 통합당을 2석 차이로 이긴다. 제3안은 민주당 149석(지역구 130석+비례대표 19석)으로, 137석(지역구 119석+비례대표 18석)에 그친 통합당을 두 자릿수 차로 따돌린다. 제4안은 민주당 지역구 130석과 비례연합정당 23석, 정의당 1석 등 총 154석으로 과반을 차지한다. 통합당은 138석(지역구 119석+비례대표 19석)으로, 민주당에 16석 뒤진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와 심재철 원내대표를 비롯한 주요 당직자들이 2일 서울 영등포 중앙당사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현판 제막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결론은 세 가지다. 민주당은 통합당의 위성정당 출현에도 불구하고 최소 ‘135석+알파(α)’를 얻을 수 있다. 비례연합정당만 만들면, 정의당 참여와 관계없이 제1당은 사수할 수 있다. 정의당까지 함께하면 과반 승리도 가능하다. 통합당의 최소·최대 승리 기준점도 엇비슷하다. 이 시뮬레이션의 정당 득표율은 민주당 40%, 한국당 39%, 정의당 10%, 국민의당 7%로 계산했다. 다만 실제 투표에서 정당 득표율이 시뮬레이션 과정과 다르면, 결과는 달라진다.
민주당의 135+α 근거는 ‘수도권 승리’와 ‘호남 석권’이다. 여당 전략통인 한 중진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옥중 정치를 한 마당에 통합당의 수도권 승리가 가능하겠느냐”며 “20대 총선 당시 호남에서 우리가 참패했는데도 제1당이 됐다”고 밝혔다. 20대 총선 당시 민주당은 서울 49석 중 35석을 차지했다. 새누리당은 12석, 국민의당은 2석에 각각 그쳤다. 경기에서도 민주당은 60석 중 40석을 쓸어 담았다. 새누리당은 19석, 국민의당 0석이었다. 인천에서는 총 13석 중 민주당이 7석으로 과반을 기록했다. 새누리당은 4석, 무소속 2석이었다. 전 지역구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도권 122석 중 민주당은 67%인 82석을 싹쓸이했다. 새누리당이 차지한 비율은 29%(35석)에 불과했다.
반면 민주당은 호남(광주·전남·전북) 총 28석 가운데 3석(11%)밖에 건지지 못했다.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호남 석권을 한다면, 적어도 25석을 추가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진보진영의 비례대표용 연합정당 불발로, 비례대표 의석수를 대거 뺏겨도 부산·울산·경남(PK)과 대구·경북(TK), 강원 등에서 최소 4∼6석을 추가로 거두면, 여당의 성적표는 ‘135+α’에 도달한다. 어떤 시나리오든 직전 선거 이상의 성적표를 낼 수 있는 셈이다. 민주당의 ‘135+α’ 성적표는 최근 네 차례의 총선에서 17대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이다.
문제는 비례연합정당의 부작용이다. 민주당 중진인 설훈 의원과 김해영·박용진 의원은 “중도층 이탈을 부를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수도권과 PK 등 영남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만에 하나 통합당이 참패한 수도권에서 일부 지역을 탈환한다면, 민주당은 통합당에 과반을 내줄 수도 있다. 황교안 통합당 대표도 언론과 인터뷰에서 “(우리 당이) 국민에게 호소하는 1차 목표선은 과반”이라고 밝혔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거대 양당의 승리 기준점을 결정할 세부 변수다. 결론부터 말하면 △수도권 승패와 PK·TK 무소속 연대 △국민의당 정당 득표율 △세대별 투표율 △코로나 이후 총선 프레임 등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우선 수도권 공천만 보면, ‘김형오 저승사자’를 띄운 통합당이 한발 치고 나갔다.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은 친박(친박근혜)계 김재원 의원을 비롯해 보수 텃밭인 TK에서만 60%를 날렸다.
반면 민주당은 현역 교체 비율이 20% 중반대에 그쳤다. 당내 기득권인 친문(친문재인)계,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은 본선에 무혈 입성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물갈이만 보면 통합당이 이겼다”라는 말도 나온다. 박지원 민생당 의원은 김형오 공천에 대해 “감동적 개혁 공천”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민주당 한 의원은 “수도권, 특히 서울 선거에서 중요한 것은 물갈이보다는 후속 주자”라며 “명분 없이 철새 공천 하면 필패”라고 말했다. 서초갑·강남갑 공천에서 컷오프된 이혜훈·이종구 통합당 의원의 동대문을과 경기 광주을 ‘재배치’가 대표적이라고 이 의원은 전했다. ‘중진 구제용’ 돌려막기는 수도권 필패 공식이라는 것이다.
PK·TK 무소속 연대의 파괴력도 변수다. 김형오 칼날에 컷오프된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는 자신의 고향인 ‘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의 무소속 출마를 공식화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도 무소속 출마로 가닥을 잡았다. PK 해운대을과 북강서을, 남구갑을, 금정 등에서도 통합당 공천에 반발한 예비후보들이 ‘제2의 친박연대’ 구축 움직임을 보인다. 18대 총선 당시 친박연대는 14석(지역구 6석+비례대표 8석)을 차지, 돌풍을 일으켰다.
국민의당 정당 득표율도 관심사다. 안철수 대표는 코로나 사태 후 선거운동 대신 대구로 내려가 ‘의사 안철수’로 변신했다. 그러자 당 지지도는 껑충 뛰었다. ‘리얼미터’가 3월 2∼6일까지 YTN 의뢰로 조사한 정당 지지도(9일 공개·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국민의당은 일주일 만에 3.0%포인트 상승한 4.7%를 기록했다.
세대별 투표율과 막판 총선 프레임도 승패를 결정지을 요소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전임연구원은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정치권의 불신이 높아지면, 투표율이 저하될 수 있다. 특히 2030세 대에 두드러질 것”이라며 “이 경우 집권당보다는 통합당에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