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증시가 코로나19가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으로 번질 수 있다는 공포감에 폭락하고 있다. 2월 27일 뉴욕증권거래소. 사진=연합뉴스
#새로운 형태의 위협…공포는 전염된다
과거 전염병들은 발생 후 6~9개월 후에는 종식되거나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주가도 전염 속도가 줄어드는 3~4개월쯤 바닥을 확인했다. 그런데 코로나19는 과거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발발했다. 우선 미국 등 글로벌 증시가 초저금리로 팽창한 유동성의 힘으로 상승해 상당한 가격(Valuation) 부담이 존재하는 시점에 발발했다. 상장지수펀드(ETF) 등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한 스마트 자금의 영향력도 엄청나게 크다.
미국 3대 지수로 대형주 중심의 S&P500이 고점 대비 20% 하락해 약세장에 진입한 기간을 보면 코로나19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다. 거래일 기준으로 고점인 2월 20일(3393.52)부터 20% 하락하는 데에 불과 보름이 걸렸다. 최단 기간이던 1929년 대공황 때 기록(42일)을 가뿐히 깼다. 급락세는 최근 들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12일 뉴욕증시는 33년 만에 최악의 폭락장을 연출했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2352.60포인트(9.99%) 폭락한 21200.62에 거래를 마쳤다. S&P500 지수는 전장보다 260.74포인트(9.51%) 떨어진 2480.64에, 나스닥도 750.25포인트(9.43%) 하락한 7201.80에 장을 마감했다.
뉴욕증시의 주가 하락은 전날 진행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TV 대국민 연설 내용이 시장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준비한 1조 5000억 달러 규모의 유동성 투입 계획도 얼어붙은 투자심리를 녹이지 못했다. 같은 날 유럽증시도 동반 폭락세를 보였다. 13일 한국과 일본의 증시 역시 주저앉았다.
코로나19는 전염성이 아주 강력한 것이 특징이다. 우선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온 중국이 진원지다. 중국 내 생산이 위축되면 전세계 제조업이 타격을 받는다. 또 중국은 세계 2위 소비국가이자, 최대 해외여행국이기도 하다. 중국의 소비가 위축되면 적잖은 나라들이 타격을 입게 된다. 코로나19는 중국에 이어 세계 3대 시장인 유로존으로 빠르게 확산했고, 세계 1위 경제대국인 미국에서도 기세를 높이고 있다. 중동과 중남미 등 상대적으로 방역체계가 열악한 국가들의 대규모 감염 확산 우려도 크다.
#경제전쟁 동시 발발…국제 공조 어려워
냉전 붕괴 후 세계화를 주도했던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자국 제일주의로 돌아섰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촉발된 탈 세계화로 국가 간 갈등의 골도 깊어졌다. 5G 등 IT부문을 둘러싼 미중 양국 간 갈등은 끝내 해결이 어려울 전망이다. 미국과 중국이 별도의 정보통신 생태계를 구축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을 정도다.
글로벌 증시 폭락의 또 다른 악재가 됐던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원유 전쟁도 그 가운데 하나다. 원유전쟁으로 초저유가가 나타나면 상대적으로 원유 생산단가가 높은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이 직격탄을 맞는다. 셰일가스 업체들은 미국 에너지산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유가가 그리 높지 않은 상황에서 생산량 확보를 위한 공격적 투자를 펼쳐 재무건전성이 약하다. 미국발 기업 신용위기가 셰일가스 업체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국제 공조가 활발했다. 동시다발적인 양적완화와 유동성 공급으로 금융회사와 기업들의 연쇄 도산을 막아냈다. 하지만 이번엔 전염병이다. 자국 내 코로나19 통제를 위해 입국 통제 등 경제·외교적 부담까지 감수하는 모습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팬데믹(Pandemic·대유행) 선언 이후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 간 인적 교류도 사실상 차단됐다.
#재정정책이 해결책? 정치 갈등 변수
글로벌 금융위기는 진앙지가 금융이어서 돈을 풀어 막을 수 있었다. 이번엔 실물경제가 문제다. 경제활동이 위축되면서 가계와 기업이 생존위기에 직면했다. 건강이 위협 당하는데 금리가 낮다고 돈을 빌려 소비하거나, 공장을 돌리기 어렵다. 결국 해답은 재정정책에서 찾아야 한다는 관측이 많다. 정부가 돈을 지급하는 직접적인 접근과, 세금감면 등을 통해 부담을 줄여주는 간접 접근이 가능하다. 효과는 전자가 확실하지만 재정부담이 크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이 높아 재정건전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내부적 반발도 불가피하다. 특히 선거가 임박했다면 이번 문제가 정치적 갈등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
미국의 경우 트럼프 행정부의 재정정책에 과연 민주당이 얼마나 합의를 해줄지 변수다. 11월 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큰 치적인 ‘경제’가 망가질수록 민주당의 승산은 높아진다. 건강보험체계 혁신인 ‘오바마 케어’의 가치가 재조명된다면 민주당 유력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 유리할 수 있다. 미국은 의료비가 워낙 비싸 서민들은 코로나19 검사도 어렵다.
유럽 내에서도 이를 두고 독일과 유로존 국가 간 보이지 않는 갈등도 감지된다. 재정위기를 가까스로 벗어난 유로존이지만 독일은 여전히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50% 수준이다. 이번 위기에서 가장 유력한 해결책인 재정정책을 펼칠 여력이 가장 크다. 하지만 단일 통화권이어서 독일이 재정을 풀면 유로존 국가들도 그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후임을 선출해야 하는 독일 정치권 입장에서는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어려운 정책이다.
#어떻게 진행될까, 확산속도 주목해야
1차 충격은 전염 확산에 대한 공포다. 아직 진행 중이다. 사우디와 러시아 간 원유 전쟁이 1차 충격의 위력을 배가 시켰다. 2차 충격은 실물 경기 위축과 기업이익 하향 조정이다. 추가예산을 편성한 국가들도 아직 집행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1분기 경제지표와 기업실적이 발표될 3월 중순 이후 4월까지다. 일단 경제 피해 현황이 파악되면 각국 정부의 진단과 정책대응에도 속도가 붙을 수 있다.
충격의 1차 강도가 드러나고, 대응 정책에 대한 기대가 형성되더라도 코로나19의 확산 속도가 변수다. 코로나19가 통제되지 않는 한 소비위축과 생산차질을 계속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정책 부담도 더욱 커진다. 전문가들은 여름 전 코로나19 활동이 잦아들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장기화된다면 한계기업들이 쓰러지며 그 부실이 금융권으로 전이될 수도 있다. 현재 글로벌 부채는 이미 오랜 초저금리에 힘입어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넘어선 만큼 부실 도미노가 불러올 파장은 상당할 수 있다.
#그럼에도 반등에 대한 기대감
글로벌 금융위기 학습효과로 반등 기대감이 높다. 안전자산으로 피난 중인 기관투자자들과 달리 삼성전자 등을 중심으로 이른바 저가분할 매수에 나서는 개인투자자들이 상당하다. 하지만 바닥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반등 기대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2008년 폭락장 이후 빠른 반등이 가능했던 이유는 적극적인 돈 풀기와, 중국의 소비, 그리고 미국의 애플과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모바일 혁신이 함께 작용한 덕분이다. 지난 11년간 증시가 가장 많이 오른 곳은 돈을 가장 많이 풀고, 모바일 혁신이 활발했던 미국이다.
현재 상황에서는 돈은 이미 많이 풀려 더 풀 여지가 적다. 설령 코로나19가 조기에 종식된다고 해도 혁신이 없다면 반등의 강도는 이전보다 약할 수 있다. 아울러 반등하는 자산과 그렇지 못한 자산간 양극화도 극명할 가능성이 크다.
1순위는 유가다. 유가전쟁으로 비정상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만큼 정상화 가능성이 크다. 두 번째는 IT다. 거의 모든 소비재가 IT와 관련을 맺고 있다. 유망 혁신 분야인 인공지능(AI) 역시 IT와 밀접하다. 3순위는 헬스케어다. 코로나19로 건강과 보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