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인천공항면세점 입찰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사업권은 DF7(패션·잡화). 처음 인천공항면세점 입성에 도전하는 현대백화점면세점이 함께 입찰에 참여한 롯데, 신라, 신세계 등 면세업계 ‘빅3’를 밀어내고 사업권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면세점의 승리는 이변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입찰심사는 사업능력 평가와 입찰가가 각각 6 대 4의 비중을 차지한다. 사업능력을 보면 공항 면세점 터줏대감인데다, 현재 DF7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신세계와 비교해 처음 도전장을 내민 현대백화점 측이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실적과 공항면세점 운영 경험으로는 밀리지 않는 롯데와 신라 등 다른 경쟁사들도 충분히 고득점을 기대할 수 있었다.
업체들이 제시한 입찰가로 승부가 갈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현대백화점면세점은 600억 원에 조금 못 미치는 가격을 써냈다. 신세계보다 20억 원가량 높았다.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낸 업체와는 100억 원가량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현대백화점이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면세점 입성에 성공하면서 업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월 20일 개장한 서울 동대문의 현대백화점면세점 2호점. 사진=연합뉴스
이 같은 현대백화점면세점의 ‘과감한’ 인천공항면세점 첫 진출을 두고 예상 밖이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과거 면세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다. 하지만 최근엔 경쟁이 치열해진 데다가 불황까지 겹쳤다. 여기에 코로나19 여파로 항공여객이 급감하면서 공항면세점 평균 매출이 반토막이 나고 있다. 거액의 ‘자릿세’, 즉 공항 임대료를 두고 인천공항공사와 면세업계가 벌이는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더욱이 현대백화점면세점은 출범 이후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8년 11월 강남 무역센터에 첫 시내 면세점을 열었는데, 지난해 말 불과 1년 사이 쌓인 적자만 998억 원이다. 이 적자는 현대백화점 실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2019년 매출 6조 5000억 원, 영업이익 2922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11% 올랐지만 영업이익은 18% 줄었다. 면세점 초기 투자 비용으로 적자가 지속됐고, 백화점 실적에도 반영됐다는 것이 증권가 분석이다.
통상 대기업 면세점들은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발생하는 적자 등을 시내 면세점 매출로 막는다. 현대백화점면세점은 강남 무역센터점에 이어 올해 동대문에 시내면세점을 추가로 열었다. 현재 실적과 공항 면세업계 업황을 종합하면 현대백화점은 인천공항 면세점 진출로 적자폭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3대 명품 브랜드 유치=수익성 직결
이번 현대백화점의 공항 면세점 진출 시도에는 ‘명품 유치’ 전략이 있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백화점과 면세점 사업에서 명품 유치는 남다른 지위를 가진다. 백화점 업계에선 매출과 규모에 따라 지점의 급을 나눈다. 통상 최상·상·중·하, 네 등급이다.
그런데 최상등급 위에 한 등급이 더 있다. 일명 ‘3대 명품’으로 꼽히는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을 유치한 지점이다. 이들 지점은 최상등급 지점보다 높은 급으로 구분된다. 3대 명품을 유치한 백화점은 전국 백화점 가운데 총 7곳에 불과하다. 신세계백화점이 4곳, 현대백화점 2곳, 롯데백화점과 갤러리아백화점이 각각 1곳이다. 3대 명품을 품은 지점 매출은 모두 1조~2조 원 사이로, 백화점 업계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명품 브랜드별 매출은 공개되지 않는다. 다만 한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백화점 전체 매출의 30%가 명품 판매에서 나온다”고 귀띔했다. 같은 이유로 면세 사업에서도 명품 유치는 수익성과 직결된다. 인천공항면세점은 매출 2조 원대로 세계 1위 수준이고, 이 가운데에서 명품 판매로 나오는 수익이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전경. 사진=최준필 기자
그런데 현대백화점은 다른 백화점과 달리 면세사업에서 명품을 유치하지 못한 상황이다. 강남 무역센터점은 물론, 최근 오픈한 동대문점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3대 명품 유치를 위해 여러차례 시도했으나 아직까지 별다른 소식이 없다. 백화점 업계에서는 ‘빅4’로 경쟁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만, 면세업계에선 후발주자라는 ‘핸디캡’을 차치하고서라도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온 이유다.
3대 명품 유치는 대형 유통그룹에게도 상당히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일부 백화점 지점은 3대 명품 가운데 한 브랜드 매장 리뉴얼 작업에 들어간 수십억 원을 직접 부담해 ‘모셔’왔고, 다른 경쟁사는 오너가 직접 나서 한 명품 브랜드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한 명품 업계 관계자는 “명품 브랜드들이 현대백화점면세점에도 경쟁사들에 준하는 조건을 제시했을 수 있다. 세계 매출 1위 공항면세점에 매장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 등일 것”이라며 “반대로 유치 조건으로 현대백화점면세점이 공항면세점 진출을 내걸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현대백화점면세점은 이번 인천공항 입찰에서 DF6, DF7 사업권에 집중했다. 3대 명품을 유치할 수 있는 패션·잡화 사업권이다. DF6 사업권은 이번 입찰에서 유찰됐는데, 제안서를 낸 업체가 현대백화점뿐이라 경쟁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인천공항이 올해 DF6에 샤넬 입점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 면세업계에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사업권을 따내면 자동으로 샤넬을 품게 되는 만큼 현대백화점면세점이 전략적으로 입찰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규모의 경제 확보, 정지선표 공격 경영 신호탄
현대백화점면세점은 인천공항 진출이 확정되면 강남 무역센터점, 동대문점을 포함해 사업영역이 크게 확대된다. 규모의 경제가 이뤄지는 만큼 구매 협상력(바잉파워)이 높아지고, 명품을 포함한 브랜드 유치도 보다 수월해진다. 수익성 개선은 그 다음이다.
한 면세업계 관계자는 “현대백화점이 단순히 공항면세점에서만의 수익성을 생각하고, 이를 위해 돈을 공격적으로 쓸 생각이었다면 마진율이 가장 높은 향수, 화장품 사업권에 도전했을 것”이라며 “사업능력 평가에서 경쟁사들에게 밀릴 것으로 판단해 차선책으로 도전했다는 해석도 있지만, 면세사업에서의 명품 유치 전략 비중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백화점 사업과 아웃렛 사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만큼 면세사업을 그룹의 새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현대백화점은 현대백화점면세점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5차례 유상증자를 통해 총 2400억 원을 운영자금으로 조달했다. 현대백화점면세점이 이번 입찰에서 과감한 베팅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관련기사 ‘롯데·신세계와 반대로…’ 현대백화점 오프라인 매장 적극 출점 왜?).
현대백화점은 또 지난해 말 정기인사를 통해 경영진 세대교체를 단행하면서 ‘공격경영’ 기조를 예고했는데, 대형 M&A(인수·합병)와 면세사업 확대 가운데 첫 스타트를 인천공항 면세점 진출로 끊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에 대해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시내면세점과 시너지를 통한 면세사업 경쟁력 상승을 기대했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