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공적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약국 앞에 줄을 서 있다. 사진=연합뉴스
마스크 5부제가 3월 9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수급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됐으나 부작용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공적마스크 판매처 인근에서 발생한 폭행 사건 신고 건수가 500건에 달하는 것은 물론 명의가 도용돼 마스크를 사지 못했다는 신고도 속출하고 있다.
최근에는 마스크가 또 다른 결제수단으로 떠올랐다. 5부제 시행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수급이 완전히 안정화되지 않은 탓에 품귀현상이 장기화된 까닭이다. 실제로 일부 식당과 온라인 마켓에서는 마스크에 일정 금액의 가치를 부여하고 손님들에게 이를 돈 대신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이를 토대로 온라인에서는 ‘마스코인’(마스크와 비트코인의 합성어)이라는 합성어까지 등장했다.
물론 이전에도 일부 식당에서 마스크를 내면 특정 음식을 내어주는 형태의 이벤트를 진행해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코로나19 사태로 경직된 사회분위기를 녹이고자 기부를 목적으로 한 자선행사에 가까웠다. 실제로 2월 대구의 한 식당은 마스크 3개당 쌀국수 하나를 교환해주는 행사를 진행했다. 점주는 이렇게 모인 마스크를 모두 대구시에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마스크는 특정 상품에 대해서만 교환이 가능했다. 즉, 마스크에 일정 금액의 가치가 부여되지는 않았다.
문제는 마스크에 일정 금액의 가치가 주어지고 이것이 화폐 대용으로 사용될 때다. 이런 사례는 최근 일부 식당과 온라인 마켓 등에서 발견되고 있다. 실제로 제주도에 위치한 한 식당은 마스크를 종류별로 구분한 뒤 현재 시가를 기준으로 대체금액을 정해놓았다. KF94 마스크의 경우 2500원, KF80마스크는 2000원, 면 마스크나 일회용 마스크는 1000원에 상응했다. 이에 따라 생맥주와 소주는 마스크 2장, 감자튀김 등의 안주는 마스크 6장으로 지불 가능했다. 이 외에도 모든 메뉴가 앞서 정해진 마스크 대체 금액을 기준으로 구매 가능했다.
또 다른 온라인 마켓은 기능성 마스크에 대해서는 3000원, 일회용 마스크는 1000원으로 대체 금액을 지정해놓았다. 마스크 시가로 대체 금액을 정했다고 했으나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결국은 사업주가 정하기 나름이었다. 이 온라인 마켓 사업주는 “점포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방문자에 한해서만 마스크 결제가 가능하다”며 “나와 같은 소규모 자영업자는 약국 시간에 맞춰 마스크를 구하기 힘들어 돈 대신 마스크를 받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오래 할 생각은 없다. 마스크가 귀한 시기가 지나가면 상황을 봐서 자체적으로 이벤트를 종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법률 전문가들은 이러한 결제 방법으로 인해 전자상거래법 위반, 탈세 등의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금 대신 마스크로 전체 금액을 계산할 경우, 해당 사업장의 실제 매출이 축소돼 추후 세액 산출이 정당하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일부 금액을 마스크로 지불한 뒤, 남은 금액을 현금이나 카드로 결제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마스크는 현행법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자적 대금지급 방법’에 해당하는 바가 없어 애당초 정상적인 결제수단이 될 수 없는 까닭이다. 사업자가 마스크로 지불된 금액을 매출액으로 신고하지 않는다 해도 정부 입장에서는 이를 알 길이 없는 셈이다.
한 조세전문 변호사는 “매출이 누락되면 소득이 줄어들고 이는 곧 소득세 탈루로 이어진다.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사업주 입장에서는 탈세 가능성이 열린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사업장에서 매입보다 매출이 적으면 매입 시 냈던 부가세를 환급해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제도를 이용해 부가가치세를 부당하게 환급받는 등의 ‘매입세액 부당공제’ 사례는 매년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경기가 어려운 요즘에는 자영업자들의 고민이 많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울 명동 거리에서 공적 마스크 2배 가격에 마스크를 판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마스크의 화폐화 현상에 대해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나왔다.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성인용 마스크를 어린이용 마스크로 교환했다는 이 아무개 씨(45)는 “아이에게 맞는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결국 인터넷거래를 했다. 고작 일회용 마스크 5장인데도 ‘바꿔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당연하게 여겨졌던 생필품이 이렇게 구하기 힘들어지다니 씁쓸하다”고 말했다.
반면 미술을 전공하고 있는 김 아무개 씨(23)는 “원래 1만 5000~2만 원의 돈을 받고 지인들의 포토샵 등을 대신 해주곤 했는데 최근에는 돈 대신 마스크 10장을 받고 작업한 적이 있다. 마스코인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런 때가 아니면 겪어볼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이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