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MBC ‘사람이 좋다’ 캡처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대한민국에 새로운 월드컵 스타가 탄생했다. 연이은 실점으로 침체되어 있던 경기, 위협적인 ‘헤딩 슛’ 한 방이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순간 모든 관심은 이 ‘헤더 슛’의 주인공에게 쏠렸다. 앳된 얼굴로 긴 머리를 휘날리며 그라운드를 누비던 19살 소년, 바로 ‘최연소 국가대표’ 이동국 이었다.
그 후 20여 년이 흘렀다. 그는 이제 불혹을 훌쩍 넘긴 42세의 ‘최고령 축구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과거 그와 함께 동고동락했던 선수들은 이제 선수의 자리에서 물러나 지도자로서 한국 축구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
최고령 현역 선수라는 기록을 매년 갱신하고 있는 이동국은 불혹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그라운드 곳곳을 누비며 20대 못지않은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마흔두 살, 왼팔에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장을 지키는 이동국의 존재감은 그 누구보다 뚜렷하다.
‘전북 현대 모터스’ 소속인 이동국은 프로 축구 시즌이 시작되면 소속팀이 있는 전주로 내려가야 한다. ‘기러기 아빠’ 신세가 되는 것이다.
아이 다섯에 조용할 틈 없던 집을 떠나 아무도 없는 전주 집의 불을 켤 때마다 허전하다는 이동국은 훈련이 없는 주말마다 왕복 5시간의 거리를 달려 아이들을 보러 간다.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는 대신 함께하는 시간엔 전력을 다해 놀아주는 아빠다. 그는 아빠 곁에 모여 재잘재잘 이야기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피로가 싹 가신다.
그라운드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이동국이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무장해제 되어버리는 영락없는 ‘아이 바보’ 아빠다.
다섯 아이들을 보며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다가도 아빠 품에 안기는 아이들을 통해 얻는 다섯 배의 힘과 응원에 이동국은 언제나 든든하다.
최근 스포츠 뉴스에 낯익은 이름이 눈에 띄었다, 바로 이동국의 둘째 딸 재아(14)였다.
7살 때 테니스를 처음 시작한 재아는 국내 대회 섭렵 후, 미국 테니스협회 주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테니스 유망주’로 등극했다.
올 1월, 테니스 호주 오픈 이벤트 대회에 ‘국내 1위’ 자격으로 초청받은 재아는 자신의 꿈을 향해 한발씩 나아가고 있다.
플레이 스타일도 아빠를 쏙 빼닮은 재아의 목표는 아빠 이동국보다 많은 트로피를 받는 것. 아빠처럼 오래, 선수로서의 기량을 유지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재아를 보며 아빠 이동국은 기특함을 감출 수 없다.
지금은 재아의 경기를 보며 마음껏 응원하고 조언도 해주는 이동국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딸의 경기를 볼 수 없었다.
아빠가 경기장에 오는 것에 재아가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재아보다 먼저 그 길을 걸었던 이동국 또한 재아의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한때 이동국은 차에서 몰래 숨어 재아의 경기를 봐야 했었다.
이제는 훌쩍 자라 스포츠 선수로서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녀는 서로에게 가장 좋은 동료이자, 든든한 지원군이다.
종목은 다르지만 ‘운동선수’라는 같은 길을 걷는 모녀의 이야기를 담아본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