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플레이어 출신의 삼성화재 신진식(가운데) 감독조차 친정팀의 부진을 막지는 못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화재는 V리그 출범 이후 15번의 챔피언결정전에서 8번 우승컵을 들어 올린 팀이다. 프로 출범 이전 실업배구 시절에도 창단과 동시에 매년 겨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삼성만 이기면 우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2005-2006시즌부터 2013-2014시즌까지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전무후무한 7연패를 기록하기도 했다. 포지션마다 즐비했던 스타 선수들의 존재는 팀의 성적을 견고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영원한 강자는 없었다. 2016-2017시즌 삼성화재는 팀 역사상 처음으로 4위를 차지해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2018-2019시즌에도 4위를 기록했다. 올 시즌에는 5위에 머무르고 있어 구단 역사상 최저 성적을 눈앞에 두고 있다. 시즌이 재개돼 잔여 경기를 모두 치른다는 가정 하에 정규리그 종료까지 4경기만 남겨두고 있기에 승점 9점차를 뒤집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문제는 한때 기업 경영뿐 아니라 스포츠에서도 ‘1등’만 추구하던 삼성 스포츠단이 이제는 화려했던 과거를 추억하는 신세가 됐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대표적 겨울 스포츠인 농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업 시절부터 명문 농구단으로 이름을 날렸던 서울 삼성 썬더스는 어느덧 KBL에서 하위권이 익숙한 팀이 됐다. 10개 구단 중 6개 구단이 나서는 플레이오프에 발을 들인 것은 준우승을 차지한 2016-2017시즌이 마지막이다. 7위에 머물러 있는 현재 상황을 뒤집지 못한다면 3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하는 팀이 된다. 같은 기간을 연속해서 6위 이내에 들지 못한 팀은 삼성이 유일하다.
서울 삼성 썬더스 이상민 감독은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 사진=KBL
삼성의 부진 원인 중 하나는 ‘투자 위축’이 꼽힌다. 농구는 샐러리캡이 존재하는 종목이기에 구단별 선수단 연봉은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농구계에선 “삼성이 외국인 선수에 대한 투자가 적다”는 말이 나온다. 공공연하게 오가는 외국인 선수를 향한 ‘뒷돈’을 삼성은 아끼고 있다는 것이다. 규정 준수는 높게 평가를 받아야 하지만 리카르도 라틀리프(라건아) 이후 삼성은 외국인 선수 운용에 매번 어려움을 겪어왔다.
KBO와 K리그 스토브리그에선 삼성 라이온즈와 수원 삼성 블루윙즈 사이에 대해 ‘평행이론’이라는 말이 나왔다. 양 구단 모두 적지 않은 기간 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하던 구자욱과 구자룡이 금전적 문제로 구단과 진통을 겪었기 때문이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구자룡은 2020 시즌을 앞두고 FA(자유계약) 자격을 얻었다. 수원 유스(매탄고) 출신으로 팀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그가 떠날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연봉 협상 과정에서 이견이 있었고 그는 결국 수원과 앙숙인 전북 현대 유니폼을 입었다. 삼성 라이온즈 구자욱도 연봉 협상에서 구단과 갈등을 겪었다. 지난해 부진을 본인이 인정하지만 구단이 제시한 삭감 폭이 너무 크다는 주장을 내놨다. 2014년 입단 이후 ‘매년 불이익’을 받았다는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진통 끝에 2월 중순에서야 연봉 협상을 마무리했다.
배구나 농구와 달리 샐러리캡이 없는 야구와 축구에서 삼성 구단은 가장 공격적인 투자를 하며 리그를 이끄는 명문 구단이었다. 심지어 ‘돈성(돈+삼성)’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구단과 구자룡·구자욱의 갈등은 ‘돈성 시대’의 완전한 마침표를 찍은 상징적인 사건이 됐다.
항상 수원의 푸른 유니폼만 입을 것 같았던 구자룡의 가슴엔 전북 현대 엠블럼이 새겨졌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삼성 라이온즈는 FA 제도 도입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 공격적 영입을 하던 팀이었다. ‘돈성’이라는 별명도 이때 생겼다. 박진만과 심정수라는 당시 각 포지션 최고 선수들에게 푸른 유니폼을 입혀 화제를 모았다. 단순히 선수를 끌어 모을 뿐만 아니라 대우도 선수들 사이에서 ‘최고’로 평가받았다.
2000년대 삼성에서 활약했던 한 선수는 “월급(본봉)에는 손을 안 대고 보너스(수당)로만 생활을 했다. 일본 캠프에서 선수들 파친코 출입이 문제가 되자 구단이 파친코에 가지 않는 조건으로 승리수당을 5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인상했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 이는 1990년대와 2000년대 활약했던 스타들이 ‘그때 삼성에 갔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하는 모습이 자주 노출되는 이유기도 하다.
이 같은 투자의 결실은 우승이었다. 삼성 라이온즈는 2000년대 3회(2002, 2005, 2006년), 2010년대 4회(2011, 2012, 2013, 2014년)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2015년 준우승 이후 삼성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2016년부터 9위-9위-6위-8위로 가을야구에 나서지 못했다.
축구도 사정이 비슷하다. 수원은 과거 ‘레알 수원’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국가대표급 스타선수들이 즐비한 구단이었다. 서정원, 황선홍, 안정환 등 해외 진출 이후 국내로 들어오는 슈퍼스타들이 선택한 팀도 수원이었다. 자연스레 유망주가 몰리는 팀이기도 했다.
한 지도자는 “과거엔 학생 때 선생님(감독)들이 항상 ‘열심히 해서 수원 같은 팀 들어가야지’라고 하셨다. 그만큼 수원이 명문구단으로 통했다. 어린 선수들에게 꿈같은 팀이었다”고 말했다.
선수단 지원도 최고였다. 전북 현대 모터스가 공장 직원 숙소에서 선수들을 살게 하던 과거에도 수원은 자신들만의 최신식 클럽하우스를 보유하고 있었다. ‘주머니’도 두둑했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뒷돈을 챙겨주는 다른 구단도 물론 있었다. 과거 수원은 그럴 필요 없이 ‘공식적으로’ 많은 연봉과 수당을 챙겨줬다. 선수들 사이에서 ‘베팅’으로 불리는 승리 수당 책정 금액은 압도적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랬던 수원의 화려한 모습은 과거가 된 지 오래다. 언제나 상위권 경쟁을 할 것만 같았던 이 팀은 2016년 7위로 체면을 구겼다. 이듬해 3위로 반등하는 듯했지만 2018년 6위로 하락했고 2019년 8위로 처졌다. 팀에 대한 투자가 줄며 성적도 함께 떨어졌다.
이임생 감독은 지난 1월 “구단은 이전과 달리 시스템이 크게 변했다. 적자라고 한다”며 허심탄회하게 현재 구단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례적으로 “타가트(득점왕)라도 좋은 오퍼가 오면 팔아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팀 내 핵심 선수를 돈 때문에 내보다는 현실은 과거 수원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삼성 스포츠단의 동반 부진은 삼성그룹의 스포츠단 운영 기조 변화와 시기가 겹친다. 2015년 전후로 구단들의 운영 주체가 제일기획으로 교체됐다. 일부 구단 직원들의 명함에는 ‘제일’이 새겨져 있다. ‘1등’을 추구하던 삼성 스포츠단은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다.
KBO의 경우 2013년 당시 연봉총액 67억 1200만 원(55명 기준)으로 1위를 기록했던 삼성 라이온즈는 2020년 현재 67억 1000만 원(상위 28명 기준)으로 리그 6위권에 그치고 있다. 축구의 수원은 2014년 구단 선수 평균 연봉 2억 9000만 원에서 2019년에는 1억 8309만 원으로 대폭 하락했다.
‘돈’의 힘을 떼어 놓고는 이야기하기 힘든 현대 프로 스포츠에서 삼성 스포츠단의 성적 하락은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스포츠단 운영으로 이윤을 추구하기 힘든 국내 현실에서 구단에 무조건 투자만 강요하기도 어렵다. 결국 구단을 지지하는 팬들의 시름만 깊어지고 있다. 언제쯤 각 종목에서 ‘푸른 유니폼’이 다시 영광을 찾을 수 있을지 팬들도 궁금할 따름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