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본만 300여 종에 이르는 ‘동방견문록’ 삽화. 사진=허풍박물관
지금 보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지만, 당시 동방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유럽인들은 그가 풀어내는 어마어마한 이야기에 열광했다. “필사본만 300여 종에 이를 정도로 초대형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15세기 활판인쇄술이 등장한 이후 가장 활발히 인쇄되었던 것도 성서와 더불어 이 책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맨더빌의 여행기는 가짜임이 드러났다. 한때 영문학의 아버지로 칭송받았던 그는 ‘사상 최악의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최근 학자들에 의하면, ‘맨더빌이 실존 인물인지’조차 불분명하다.
근세를 대표하는 유언비어를 들자면, 1555년 발간된 미셸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집이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유명 점성술사로 이름을 떨쳤는데, 당대 지식인들 사이에서 오컬트 열풍이 불면서 인기를 끌었다. 그의 예언집이 다시 회자된 것은 노스트라다무스가 죽고 몇 세기 후의 일이다. “런던 대화재, 아돌프 히틀러의 등장, 중동 지역 분쟁 등등 수많은 예언들이 적중했다”며 세간에 오르내렸다.
다만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집은 두루뭉술한 운문 형태라 “꿈보다 해몽”이라는 지적이 많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후세 사람들이 결과를 놓고 역으로 추적해 작위적 해석을 했다”는 주장이다. 또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예언은 곧잘 상업적으로 악용된다. 일례로 9·11 테러 사건 직후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했다”며 시가 떠돌았으나 결국 그 시는 노스트라다무스가 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처럼 유언비어는 일반적으로 존재하지 않은 것을 꾸며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재하는 것이 루머로 취급된 적도 있다. 바로 오리너구리의 발견이다. 1798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총독이었던 영국의 해군장교 존 헌터는 오리너구리를 박제해 런던 자연사박물관으로 보냈다. 오리도 아니고, 너구리도 아닌 기이한 존재. 당시 학자들은 “존 헌터가 새빨간 사기를 치고 있다”고 여겼다.
동물학자 조지 쇼는 학술지를 통해 “이 동물의 진위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다른 학자들 역시 “누군가 장난으로 조류의 부리와 동물의 몸통을 붙여 만든 가짜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종교적 목적의 미라를 인어로 둔갑시킨 희대의 사기극 ‘피지 인어’. 사진=허풍박물관
1842년에는 이와 정반대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름 하여 ‘피지 인어’. 희대의 인어 사기극이다. 발단은 1810년경 일본인 어부가 네덜란드 상인에게 판 미라였다. 당시 “일본의 일부 지역과 동인도제도 주민들 사이에서는 종교적인 목적으로 원숭이의 상체와 물고기의 몸을 봉합한 미라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를 미국의 서커스단장 피니어스 바넘이 입수해 인어로 둔갑시켰다.
그는 “피지에서 인어가 잡혔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브로드웨이에 전시했다. 물론 진짜 인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전시회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고, 바넘은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참고로 바넘은 영화 ‘위대한 쇼맨’의 실제 모델이다. 그에 대한 시선은 흥행의 천재, 혹은 희대의 사기꾼으로 극명하게 엇갈린다.
20세기 초반에는 전설의 괴물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스코틀랜드의 호수 네스호에는 오래전부터 “괴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565년 아일랜드 선교사가 네스호에서 괴물의 공격을 받은 사람을 구출했다”는 이야기가 시작이다. 일련의 목격담은 간간이 들려왔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1934년 런던의 의사 케네스 윌슨이 촬영한 사진이다.
윌슨은 “지나가다 급하게 찍었다”며 목이 긴 괴물체의 흐릿한 사진을 영국 대중지 ‘데일리메일’에 공개했다. 윌슨은 이 사진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아직도 ‘외과의사의 사진’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사진이 공개되자 네스호의 괴물 이야기는 단번에 화제로 떠올랐다. 수많은 사람들이 미확인 생명체를 보기 위해 너도나도 네스호를 찾았다.
그런데 반전은 사진이 가짜라는 데 있다. 사실 “윌슨의 지인이 장난감 잠수함과 모형을 사용해 만든 트릭 사진”이라고 한다. “신뢰성을 부여하고자 의사 윌슨 박사에게 협조해줄 것을 부탁했다”는 증언이 1975년 ‘선데이 텔레그래프’에 보도됐다. 윌슨 박사 역시 죽기 직전 “사진이 조작된 것”이라고 고백했다.
비틀스 앨범 ‘애비로드’ 재킷 사진.
1969년에는 록밴드 비틀스 멤버, 폴 매카트니가 사망설에 휩싸였다. 루머는 이러하다. 폴 매카트니가 사실은 1966년에 죽었으며, 현재의 폴은 비슷한 사람으로 ‘대역’이라는 것이다. 황당한 이 루머는 몇몇 언론사들이 다루면서 거대한 음모론으로 퍼져나갔다.
사망설을 진실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비틀스 앨범 애비로드 재킷이 ‘폴의 죽음’을 은유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사진을 보면 “횡단보도를 건너는 멤버 중에 폴 혼자만 맨발”이라는 것이다. 또한 교통사고도 그 근거가 됐다. 실제로 1967년 1월 7일 폴의 애마 미니쿠퍼가 교통사고가 나긴 했다. 그러나 운전사는 폴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고, 사고로 인한 사망자도 없었다. 후일담으로 폴 매카트니는 1993년 ‘폴은 살아있다(Paul is Live)’라는 앨범을 내기도 했다.
구석기 조작 사건을 특종 보도한 마이니치신문.
2000년대가 시작되자마자 세계 학계를 강타하는 ‘날조극’이 일어났다. 그 유명한 ‘일본 구석기 조작 사건’이다. 일본의 고고학자 후지무라 신이치는 ‘신의 손’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인물. 그가 땅을 파기만 하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구석기 시대 유물들이 줄줄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의 업적은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이를 수상히 여긴 마이니치신문이 발굴현장에 카메라를 몰래 설치했고, 거짓말은 만천하에 드러났다. 조사결과 후지무라는 직접 조작한 유물을 묻어뒀다가 다시 캐내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속여 왔던 것이다. 이 날조로 인해 일본 역사학계의 신뢰가 흔들렸고, 약 반세기에 걸친 일본의 전기구석기시대 연구도 대부분 가치를 상실했다. 관련 교과서는 회수됐으며, 후지무라는 고고학계에서 영구제명당했다. 일본 고고학계의 최대 참사로 꼽힌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