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판에 무풍(무소속 바람) 주의보가 내려졌다. 이는 거대 양당(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구도를 흔들 핵심 변수로 꼽힌다. 적전 분열로 반대편에 어부지리를 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악의 경우 ‘X맨’으로 낙인찍힌다. 무소속 예비후보가 거대 양당의 승자독식 구도를 뚫고 이겨도, 다시 ‘복당을 둘러싼 갈등→이후 내부 권력암투’ 등의 험난한 과정이 기다린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2월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국회의원선거 후보자 면접에 참가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무소속 출마를 한 단어로 정의하면 ‘마이웨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직진한다. 여기엔 복잡한 정치적 공학이 깔렸다. 탈당 후 무소속 출마는 일종의 ‘자객 공천’ 효과를 낸다. 스스로 자객을 자임해 한때 같은 편이었던 경쟁자를 제거한 뒤 나머지 후보와 일대일 승부를 펼치는 것이다.
20대 총선 땐 대구·경북(TK)에서 무소속 바람이 거세게 일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칼날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진 유승민계 다수는 무소속 출마를 감행했다. 혈혈단신 허허벌판에 내몰렸던 유승민 주호영 당시 새누리당(현 미래통합당) 의원은 동구을과 수성을에서 각각 생환했다. 다만 ‘옥새 파동’ 논란 끝에 새누리당이 후보를 내지 않았던 동구을은 진정한 의미의 자객 공천을 둘러싼 승부 지역은 아니었다. 반면 주 의원은 여성우선 추천을 받은 이인선 새누리당 후보를 꺾고 4선 고지를 밟으며 자객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홍의락 의원(대구 북구을)이 컷오프(공천 배제)에 반발, 무소속으로 출마해 양명모 새누리당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그는 이후 복당 절차를 밟았다. 친박(친박근혜)계 윤상현 무소속 의원(인천 남구을)은 20대 총선 때도 컷오프, 새누리당을 박차고 나갔다. 그는 열세 전망을 뒤집고 과반(48.1%)에 육박한 득표율로, 김정심 새누리당·안귀옥 국민의당·김성진 정의당 후보를 꺾었다. 20대 총선에서 ‘공천 반란’을 일으킨 무소속 당선자는 총 11명에 달했다.
21대 총선에서도 공천 반란자들은 전광석화같이 출마 채비를 마쳤다. 민주당에선 이해찬 대표가 ‘탈당 후 무소속 출마 시 영구 제명’ 카드를 앞세워 압박에 나섰지만, 공천 반란자들의 움직임을 막지는 못했다. ‘미투(나도 당했다) 의혹’ 끝에 낙천한 민병두 의원(서울 동대문을)은 3월 15일 ‘주민추천 후보 출마선언문’을 통해 “미래통합당 후보와 양자대결 구도를 만들고 승리하겠다”며 4선 의지를 드러냈다.
민주당은 3월 5일 동대문을 지역을 ‘청년 우선 전략지역’으로 지정한 바 있다. 이 대표는 그 이전부터 자진 사퇴를 고리로 민 의원을 압박했지만, 끝내 버티자 결국 칼날을 들이댔다. 민주당 청년 당원들은 민 의원 무소속 출마에 대해 “해당행위”라고 반발했다.
‘아빠찬스’ 논란 끝에 출마 뜻을 접었던 문희상(경기 의정부갑) 국회의장 아들 석균 씨도 3월 17일 돌연 무소속 출마로 턴했다. 오제세(충북 청주) 의원도 무소속 출마 의사를 내비쳐 충청권이 혼돈에 빠졌다. 오 의원은 이 대표가 불출마 현역 의원들과 한 ‘위로 오찬’에도 초청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당 사정은 더 복잡하다. 19대 대선 때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대선 후보였던 홍준표 전 대표는 3월 17일 “대선 경쟁자를 쳐내기에 광야로 간다”며 “40일만 탈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 전 대표는 대구 수성을에 무소속으로 출마, 한솥밥을 먹었던 주호영 통합당 의원과 맞붙는다. 보수 대권잠룡으로 분류되는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는 앞서 3월 8일 “살아서 돌아오겠다”며 일찌감치 탈당과 함께 자신의 고향인 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 탈환에 시동을 걸었다. 김 전 지사 측은 낙천 직후 “감정적인 보복성 공천 배제이자, (대선으로 갈 후보의) 싹을 자르겠다는 의도”라고 반발했다.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민병두 의원. 사진=이종현 기자
홍 전 대표와 김 전 지사는 당 공천관리위원회의 서울 강북 험지 출마 요구를 거부한 대표적인 인사다. 권성동 의원(강원 강릉)의 3월 16일 무소속 출마를 시작으로, 정태옥 의원(대구 북구갑), 이주영 의원(경남 창원·마산·합포), 김재경 의원(경남 진주을) 등도 무소속 출마 대열에 합류했다.
공천 반란자들의 무소속 출마 이면에는 ‘거대 양당 싹쓸이는 불가능하다’는 총선 셈법이 깔렸다. 20대 총선을 거치면서 여의도 정치권은 ‘거물급 정치인’ 부재에 시달리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5%포인트 차 내외인 격전지 판세를 뒤집을 만한 인물이 없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시절인 19대 총선 때 TK 27석을 싹쓸이했던 새누리당은 20대 총선에선 대구(12석)에서만 4석(민주당 1석+무소속 3석)을 내줬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4년 전 국민의당 녹색 바람에 직격탄을 맞은 민주당은 호남 28석 중 3석만 건졌다. 진보진영의 심장부인 광주에서는 전멸했다.
영·호남 등 특정 지역에서 대규모 탈당이 현실화하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는 무소속 연대의 학습효과도 한몫했다. 18대 총선 당시 친이(친이명박)계에 밀린 친박계는 대거 탈당, 친박연대와 친박무소속연대를 만들어 총 25석을 차지했다. 박 전 대통령도 이명박(MB) 전 대통령을 겨냥,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며 이들을 지원사격 했다. 통합당을 탈당한 PK·TK 일부 인사들이 ‘제2의 친박연대 돌풍’ 재연을 위한 무소속 연대 결성에 시동을 건 것도 이 때문이다.
호남에서도 민주당 공천에 탈락한 예비후보들이 잇따라 무소속 출마를 선언, 여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무소속 출마자들이 대거 파란색 점퍼를 입고 선거운동을 한다”며 “유권자들이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의 ‘탈당 후 출마 시 영구제명’ 으름장에는 “1석이 아쉬운 상황에서 당선 후 복당을 막겠느냐”는 기류가 강하다. 오는 8월이면 새로운 당 대표가 선출, 이 대표의 ‘탈당 후 출마 시 영구제명’ 압박 카드가 공수표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관전 포인트는 △공천 반란자들의 파괴력 △총선 후 역학구도 변화 등이다. 공천 반란자들의 최대 빅매치 지역은 지난 총선에 이어 또다시 영남권이다. 보수진영의 대권 잠룡인 ‘홍준표·김태호’ 원투펀치가 출격해서다. 홍 전 대표가 지난 총선의 ‘유승민·주호영’ 데자뷔를 일으킨다면, 보수진영 대선판은 다시 한번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홍 전 대표는 ‘경남 창녕→양산→대구’로 이어진 출마 과정을 ‘유랑극단’에 빗대 표현한 뒤 “박근혜 정권 이후 대구로 정권을 되찾아 올 사람은 홍준표뿐”이라고 다음 과녁을 2022년 대선으로 못 박았다.
다만 홍 전 대표가 TK 입성에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홍 전 대표 위력은 19대 대선을 거치면서 사실상 소진됐다는 평가다. 급기야 황교안 통합당 대표와의 내부 권력구도에서도 밀렸다. 홍 전 대표는 보수 궤멸에서 치른 지난 대선 때 24.0% 득표율을 기록, 막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21.4%)를 제치고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TK 득표율은 대구 45.4%, 경북 48.6%로 과반에도 못 미쳤다. 이는 87년 체제 이후 대선에서 보수진영 후보가 기록한 득표율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만에 하나 홍 전 대표가 낙선하면, 정계은퇴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지사도 마찬가지다. ‘꼭 살아서 돌아오겠다’고 한 김 전 지사가 거대 양당 후보를 꺾고 산청·함양·거창·합천에 깃발을 꽂은 뒤 복당한다면, 총선 이후 보수진영의 세대·세력 교체 바람을 일으킬 전망이다. 1962년생인 김 전 지사는 올해 우리나이로 59세다. MB 정부 시절 40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던 그는 여전히 보수진영의 우량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낙선 땐 당 복당부터 험로가 예상된다.
수도권 무풍의 풍향계는 ‘동대문을’이다. 변수는 민병두 의원의 여권 잠식표다. 19∼20대 총선에서 민 의원이 기록한 득표율은 52.9%와 58.2%였다. 여권 한 관계자는 “당 지지도 이상의 득표율은 탄탄한 지역조직을 가졌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민주당 후보와 민 의원이 진보진영 표를 양분할 경우 이혜훈 통합당 의원에게 어부지리를 내줄 수도 있다.
당내 전망도 엇갈린다. 한 당원은 “민주당 지붕이 없었다면, 민 의원이 동대문을에서 살아남았겠느냐”라고 말했지만, 다른 당원은 “민병두를 밀자는 주민 여론도 만만치 않다”고 반박했다. 서울 영등포을에 출사표를 던진 이정현 무소속 의원은 보수진영 표를 잠식할 변수로 꼽힌다. 여의도 한 전략통은 “무풍의 전제조건은 무소속 후보의 넓은 연대 전선”이라면서 “하지만 거물급 무소속 출마자들은 각자도생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