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녹취록 속 김 회장과 라임의 연관성, 청와대 개입을 연관짓기는 어렵다. 한편에서는 녹취록에 이목이 집중되자 정작 사건의 본질인 라임 투자 피해와 재향군인회상조회(상조회) 꼼수 매각 문제가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이 최근 청와대 행정관이 라임에 개입했다는 요지의 녹취록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어, 선택적 수사로 사건의 본류에서 벗어날까 하는 우려가 나온다. 사진=일요신문DB
장 전 PB가 2019년 12월 투자자와 나눈 대화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라임사태와 관련해 상조회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 녹취록에 따르면 장 전 PB는 투자자에게 “상조회가 공개입찰에 나와서 여러 회사가 신청했지만 (김) 회장님이 따낼 것”이라며 “상장사 2개를 가지고 있는 회장님이 6000억 원을 펀딩해 라임 투자자산을 유동화할 예정이다. 14조 원을 움직이는 청와대 행정관 김 아무개 씨가 회장님과 네트워크를 통해 들어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조회는 2019년 12월 실제로 상장사 비피도 등 3개사 연합으로 구성된 재향군인회상조회컨소시엄(컨소시엄)에 매각됐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컨소시엄에 매각되기 한 달 전인 2019년 11월 상조회는 ‘메트로폴리탄’이라는 부동산개발업체에 매각될 예정이었다. 메트로폴리탄이라는 회사는 그 실체가 모호한 데다 실적이 전무하고 재무상태가 나빴으며 상조회 노조의 반발도 극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조회 최초 매각 과정은 깜깜이로 이뤄져 밀실 매각 의혹이 일었다.
부동산개발업체이자 라임의 부동산금융을 담당한 메트로폴리탄이 상조회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과정은 석연치 않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상조회 매각주간사인 법무법인 청담은 상조회 매각을 위한 투자안내서를 잠재적 투자자들에게 배포했다. 서류상 본사가 제주에 있으나 실체가 불분명한 메트로폴리탄이 어떻게 잠재적 투자자에 포함됐는지 의문이다. 메트로폴리탄은 인수 입찰가로 200억 원을 써내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이 같은 과정에서 밀실매각 의혹이 일자 국가보훈처는 심의 끝에 상조회를 공개 매각하기로 결정하고, 2019년 11월 28일 매각 공개입찰 공고를 냈다. 컨소시엄, 보람상조, 쌍방울이 입찰에 참여해 각각 320억, 311억, 280억 원을 써내 컨소시엄이 우선협상자대상자로 선정됐다. 320억 원에 상조회를 인수한 컨소시엄은 한 달 만에 이를 보람상조에 380억 원에 매각했다.
컨소시엄이 불과 한 달 만에 60억 원의 차익을 얻은 것은 차치하고라도, 그 사이 상조회에서 290억 원가량이 인출된 것과 3년간 재매각 금지 조건을 어겼다는 비난이 불거졌다. 컨소시엄을 주도한 인물이 앞서 장 전 PB가 녹취록에서 언급한 ‘김 회장’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됐다. 라임의 관계사인 메트로폴리탄이 인수하려던 상조회를 결국 컨소시엄이 인수했기에 앞의 녹취록에 힘이 실렸다.
녹취록과 함께 김 회장이 청와대 행정관으로 파견됐던 금융감독원 직원 김 아무개 씨와 고향 친구 사이로 알려지면서 김 회장은 청와대와 라임의 연결고리로도 지목됐다. 특히 녹취록에서 장 전 PB는 “김 씨가 핵심이다. 라임 관련해서 이 분이 청와대 고위 간부한테까지 가서 다 막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청와대 개입설에 불을 지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어떤 식으로든 청와대가 라임 환매중단 등 사태에 개입했을 것이란 의혹이 확대됐다. 청와대는 즉각 “녹음파일의 내용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상조회 매각 과정과 녹취록 인물 면면을 살펴보면 ‘상조회-라임-청와대’로 연결되는 의혹을 제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또 취재 결과 라임과 김 회장의 직접적 연결고리도 발견되지 않는다. 메트로폴리탄과 그 관계사인 메트로폴리탄디앤씨, 메트로폴리탄건설 등 회사들과 김 회장의 연관성이 없으며 회사 간 인적·물적·사업적 공유도 발견되지 않는다. 상조회 매입에 나선 메트로폴리탄과 김 회장의 교집합은 장 전 PB가 유일하다. 다만, 라임 펀드를 판매한 장 전 PB가 김 회장, 금감원 직원 김 씨와 술자리를 한 사실은 있다.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왼쪽)이 잠적하기 전인 2019년 기자회견 모습. 사진=연합뉴스
장 전 PB가 금감원 직원 김 씨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던 건 2019년 12월 중순이다. 앞의 녹취도 12월 19일께 일이다. 모두 이종필 라임 전 부사장이 잠적한 뒤 장 전 PB가 펀드 회생방안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던 시기다. 손실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그가 메트로폴리탄과 김 회장을 설득해 상조회 입찰을 주선했을 가능성은 있다.
장 전 PB는 이 전 부회장이 사라진 뒤에도 투자자들과 소통을 이어가고 금융사에도 최대한 정보를 공개하는 등 협조적인 자세를 취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장 전 PB가 어떻게든 손실을 줄여보려고 뛰다보니 별별 사람을 만나게 된 듯하다”고 말했다.
14조 원을 동원할 수 있다고 언급된 금감원 직원 김 씨에 대해서도 ‘과장이 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청와대에 파견되는 금감원 몫의 자리는 자금을 동원할 만한 의사결정 라인이 아닌 데다 그다지 힘이 세지도 않은 곳으로 꼽힌다. 이런 이유로 녹취록에서 장 전 PB가 투자자를 달래기 위해 과장된 발언을 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문제는 녹취록 공개와 이에 따른 의혹이 불거지면서 사건의 본질이 흐려진다는 것이다. 라임 사태의 본질은 부실기업 전환사채(CB) 투자와 부동산금융 실패로 큰 투자 손실을 낸 데 있다. 특히 부동산금융에 흘러간 투자금 2500억 원에 대해 제대로 투자가 집행됐는지도 의문이 제기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김 회장과 금감원 직원 김 씨 등은 라임 사태의 본질과 무관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최근 녹취록 등장인물에 초점을 맞춰지면서 자칫 사건의 실체가 가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라임 투자피해자를 변호하는 한 법무법인 측은 “청와대의 누가 개입했다는 이야기 등 정치적인 부분이지, 환매중단 사건의 본질과 상관없고 피해보상과도 무관하다”고 말했다.
향군정상화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청와대 행정관이나 높은 사람 이름이 거론된 녹취록이 나오자 정작 상조회 매각 과정이나 자금이 유출된 점 등 본질적인 문제가 가려지고 있다”며 “최근엔 언론에서도 상조회 매각 내막을 취재하지 않고 청와대 관련 내용이 없냐는 질문이 많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사정당국 일각에서는 최근 검찰이 녹취록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부분에 주목했다.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처음엔 김 회장과 라임이 연결될 수 있나 살펴봤는데 연결고리가 없다. 일부 언론과 검찰이 녹취록에 집중하는데 이게 사건 본류와 무관하게 청와대 행정관이란 등장인물에 주목한 부분일 수 있다”며 “라임을 수사하는 남부지검은 건건이 법무부와 마찰을 보였다. 최근에도 수사 인력을 보강해주지 않는다고 반발했는데 녹취록을 살펴보겠다는 것도 청와대에다 검찰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시그널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
거물인 줄 알았던 ‘김 회장’의 실체 장 아무개 전 대신증권 PB가 상당한 자산가라고 소개한 김 아무개 회장은 실제 로비력이나 자금동원력은 그리 세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오히려 김 회장은 2018년 한 운수업체를 인수하고 회사 자금 161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도피 중이다. 지난 18일에는 코스닥 상장사 스타모빌리티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로 고소당했다. 김 회장은 2018년 3월 스타모빌리티 이사로 선임된 후 바이오사업 총괄대표를 맡아 항암제 개발 사업을 주도했다. 김 회장은 미국 항암제 개발업체인 ‘윈드밀’을 인수할 것이라고 인터뷰하는 등 사업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이에 힘입어 2018년 초 스타모빌리티 주가는 7000원대에서 1만 4000원으로 2배 가까이 뛰었다. 그러나 윈드밀 인수에 100억 원을 출자하기로 한 스타모빌리티는 2018년 5월 출자계획을 철회했으며 이를 두 달 뒤인 7월에야 공시했다. 주가는 3500원대로 주저앉아 바이오사업 진출을 발표하기 전 주가에서 반토막이 났다. 또 김 회장은 출자를 철회한 2018년 5월 일신상의 사유로 사내이사에서 물러났다. 김 회장이 바이오 사업 총괄로 임명됐던 시기 스타모빌리티 실소유주는 ‘차이나블루’라는 회사다. 차이나블루는 공평저축은행(현 상상인저축은행)에서 85억 원을 차입해 2018년 1월 스타모빌리티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하지만 스타모빌리티 주가가 고공행진을 하던 기간 차이나블루는 보유한 지분의 86.7%를 장내매도해 큰 차익을 실현했다. 차이나블루는 라움코퍼레이션이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다. 라움코퍼레이션 실소유주는 업계에서 기업사냥꾼으로 유명한 한 아무개 씨로 알려졌다. 무자본 인수·합병(M&A)과 횡령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한 씨는 중국으로 밀항을 시도하다 2019년 4월 해상에서 붙잡혔다. 한 씨는 동종 전과도 여럿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한 씨가 스타모빌리티를 실소유했던 시기 김 회장이 전면에 나서 바이오 사업을 무기로 주가를 끌어올린 것이다. 한 씨와 관계된 상장사 한 관계자는 “한 씨는 기업사냥의 큰 그림을 구상하고 기획하는 일을 전부 도맡아 할 만큼 업계에서 유명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