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상대성 이론의 공리화’가 출간됐다.
#아인슈타인이 ‘쉴러’에 비유한 한스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는 철학, 수학, 물리학 등에서 걸출한 학자들이 배출되며 학문의 수준이 절정에 다다르던 시기다. 수학자와 물리학자를 포함한 자연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 주제가 갖는 철학적 의의에 대해 토론하는 데 거부감이나 거리낌을 느끼지 않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920년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발표되자 과학 지식으로서 상대성 이론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다양한 종류의 해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상대성 이론의 등장은 기존의 칸트의 자연철학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음을 의미했다.
라이헨바흐는 이에 새로운 종류의 자연철학이 이러한 논쟁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상대성 이론에 대한 본격적인 철학적 분석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실로 1924년에 출판된 저서가 이 책 ‘상대성 이론의 공리화’다. 이 책의 저술 당시 라이헨바흐는 슈투트가르트 공과대학에서 재직 중이었는데, 아인슈타인은 그를 자신이 재직 중이던 베를린 대학에 직접 적극 추천하며 데려왔다. 아인슈타인은 그를 ‘쉴러’에 비유하며 베를린 대학에 추천했다.
#자연철학의 방향을 제시한 책
수학자와 물리학자가 수학적인 간결함과 우아함을 목적으로 공리화를 진행한다면, 자연철학자는 분석 대상이 되는 물리학 이론의 인식적 구조를 명료하게 드러내기 위해 공리화를 진행한다. 라이헨바흐는 이 책을 통해 상대성 이론의 경험적 토대, 즉 공리가 무엇인지를 밝혔으며, 이러한 경험적 공리들뿐만 아니라 상대성 이론이 의존하고 있는 임의적이고 규약적인 정의들이 무엇인지도 밝혔다. 또한 가장 일반적인 경우에도 시간 순서의 위상적 공리들이 여전히 적용됨을 밝힘으로써, 인과성이 시공간 구조의 가장 일반적인 특성이라는 사실을 보였다.
라이헨바흐는 과학적 지식에 대한 면밀한 철학적 분석을 통해서 인간의 인식과 세계의 본성에 대한 유의미한 철학적 귀결들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고, 그러한 노력의 과정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자연철학이란 어떤 학문이 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인간과 세계를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지를 제시했다는 점에 이 책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
#지은이 한스 라이헨바흐는
1891년에 독일에서 태어났다. 베를린대학, 괴팅겐대학, 뮌헨대학 등을 거치며 수리물리학자 막스 보른, 철학자 에른스트 카시러, 수학자 다비트 힐베르트,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 등의 지도 아래 수학, 물리학, 철학을 연구했다. 베를린대학에서 자연 과학적 지식에 적용될 수 있는 확률 이론을 발전시킴과 동시에, 당시 뜨거운 논쟁의 주제였던 양자역학에 대한 철학적 분석 또한 진행했다.
나치의 정치적 압력을 피해 1933년부터 5년간 터키의 이스탄불대학 철학과 학과장을 맡은 라이헨바흐는, 이 시기에 자신 고유의 확률 이론과 기호논리학을 체계화했다. 1953년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하기 전까지 활발하고 열정적으로 철학적 탐구를 진행했다. 라이헨바흐가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 통계역학을 분석함으로써 얻은 철학적 결론들과 주제들은, 21세기인 지금까지도 많은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며 연구의 원천을 제공하고 있다.
#옮긴이 강형구는
1982년에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자연대학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 진학, 논리경험주의의 대표자인 한스 라이헨바흐의 상대성 이론 분석을 연구한 논문 ‘라이헨바흐의 ‘구성적 공리화’−그 의의와 한계’로 2011년에 이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공공기관인 국립대구과학관에서 연구원이자 학예사로 근무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한스 라이헨바흐의 ‘양자역학의 철학적 기초’(2014, 지식을만드는지식), ‘상대성 이론과 선험적 지식’(2015, 지식을만드는지식), ‘원자와 우주’(2017, 지식을만드는지식) 등이 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