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 확산과 세 부담 가중 추세 속 서울 집값이 어떻게 움질일지 주목된다. 사진=고성준 기자
한국은행이 지난 16일 결국 1.25%이던 기준금리를 0.75%로 내렸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현재 2.5~3% 사이에 형성된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곧 하향 조정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한은이 연내 추가로 기준금리를 더 내릴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최근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과 기준금리 간 차이가 1.5%포인트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연 2% 아래 수준까지 하락할 수도 있다. 1억 원을 빌리는 데에 연 이자가 200만 원, 월로는 17만 원가량이란 뜻이다. 기존 대출 이자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대출한도가 늘어날 수도 있다.
문제는 시장금리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채권가격 하락, 즉 금리상승 현상이 뚜렷하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기축통화의 우월적 지위를 확보한 달러 유동성 확보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달러 확보를 위해 달러가 아닌 자산을 주식이든, 채권이든 다 내다 팔고 있다. 그런데 미국 국채 금리도 상승세다. 미국 국채보다 차라리 달러, 현금을 보유하는 게 낫다는 심리다. 금값이 하락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시중은행의 대출은 시장금리, 5년만기 금융채에 연동된다. 기준금리를 내려도, 시장금리가 오르면 대출금리가 상승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시장금리가 상승세다. 정부와 중앙은행으로부터 직접 자금을 공급받을 수 있는 은행들의 신용도가 급격히 나빠질 가능성은 당장은 높지 않다. 문제는 회사채다. 비은행·비금융 기업이 발행하는 채권은 정부나 중앙은행이 직접 사줄 수 없다. 코로나19로 실적 우려가 큰 상황에서 비은행·비금융 기업의 자금조달이 꼬일 수 있다. 회사채 발행금리가 올라가든지, 차환발행이 안되는 상황이다. 현금이 없으면 부도가 난다.
기업들이 경영난에 처하면 고용에 영향을 미친다. 가계소득이 줄고, 이자부담이 커진다. 빚 부담이 큰 곳부터 이자를 연체하거나 자산 처분에 나설 수 있다. 이처럼 실물경제 충격이 거세지면 주택시장도 버티기 어렵다. 하지만 웬만한 위기상황이라도 사업가, 대기업 임직원, 고소득 전문직 등 서울에 집을 가진 자산가들은 충분히 버틸 가능성이 크다. 다만 정부의 보유세 강화는 다주택 은퇴생활자의 비거주 주택처분을 압박하는 요인이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전국 아파트·연립주택·빌라 등 공동주택 1383만 가구의 올해 공시가격을 지난해보다 5.99% 올렸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22.9%) 이후 최대폭이다. 9억 원 이상 아파트는 올해 보유세가 최소 20% 이상 오른다. 서울에서 이에 해당하는 아파트가 절반이 넘는다. 중산층의 세 부담이 커졌다. 공시가격이 오르면 보유세, 건강보험료 등도 덩달아 오른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면적 84㎡(34평형)는 지난해 695만 원이던 보유세가 올해 1017만 7000원으로 46.3% 늘어난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84㎡는 공시가격이 8억 6400만 원에서 10억 8400만 원으로 올라 종합부동산세 대상이 됐다. 종부세가 더해지면서 보유세는 246만 원에서 올해 354만 원으로 늘게 된다. 종부세 대상 주택도 지난해 21만 8124가구에서 올해 30만 9361가구로 9만여 가구 늘었다.
관건은 과연 서울 핵심 지역에 집을 가진 이들이 종부세와 은행 이자를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경기가 최악의 상황이 될지 여부다. 아직은 이런 분위기가 감지되지 않는다. 강남 아파트 현장에서는 하락을 염두에 둔 투매나 급매는 한두 건에 그치는 수준이다.
다주택자인 A 씨는 최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신축 아파트인 ‘대치 SK뷰’ 전용면적 93㎡를 31억 원에 매물로 내놓았다. 같은 평형의 최근 거래는 5개월 전 28억 3000만 원이다. 그는 양도소득세 중과가 유예되는 오는 6월 말까지 이 아파트를 팔려고 한다. 하지만 내년 중순까지 14억 원의 전세계약이 체결돼 있는 이 집에 17억 원을 투자해 집을 사려는 이는 아직 없다. A 씨는 31억 원 이하로는 팔 생각이 없다. 보유세가 크게 상승하더라도 그 이상 집값이 뛸 것으로 내다보기 때문에 6월 말까지 팔리지 않으면 계속 보유할 생각이다.
강남 부동산에서 급매물은 단지 당 평형 별로 한두 건이다. 실거주 주민들의 경우 집을 팔더라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데, 집을 팔고 사는데 들어가는 기회비용이 더 크다. 급매 물량은 대부분 다주택자가 양도소득세 중과가 유예되는 6월 말까지 팔려고 내놓은 물건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로 안전자산 선호가 강화된다면 오히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인 9억~10억 원대에서 가격상승이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맞벌이 고소득자가 공동명의로 매수할 경우, 공시지가 현실화율 100%가 되더라도 종부세 부담이 크지 않다.
외국인 매도로 코스피가 폭락했지만, 개인들은 오히려 우량주를 사들이고 있다. 3월 들어 20일까지 개인의 코스피 순매수 금액만 4조 원에 달한다. 한국은행 집계를 보면 1월 통화량(M2)은 2929조 원으로 1년 전보다 무려 7.8% 늘었다. M2란 현금, 요구불예금, 각종 저축성예금, 머니마켓펀드(MMF) 등이다. 연말 상여금을 받은 가계가 자금을 은행 예금에 넣어두며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이 9조 6000억 원 늘었다. 아직 시중에 돈은 충분히 많다.
집값 하락이 촉발된다면 서울보다는 지방이 될 가능성이 크다.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약한 중상층 이하 서민들이 경기침체 시 소득 타격이 더 크기 때문이다. 최근 수도권 일부 집값 급등도 주로 새 아파트에 집중됐다. 구옥과의 가격 차이가 크다. 투자목적 자금이 몰려 단기간에 급등한 수도권과 지방의 일부 새 아파트 값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