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올해 상반기 인수·합병(M&A) 최대어로 꼽히는 푸르덴셜생명 본입찰이 진행됐다. 서울 강남구 푸르덴셜생명 본사. 사진=일요신문DB
오렌지라이프(옛 ING생명)의 가격과 비교했을 때 골드만삭스가 제시한 매각가 3조 원은 시장가보다 높게 측정됐다는 의견이 나온다. 신한금융은 2019년 오렌지라이프 지분 60%를 2조 2989억 원에 인수했고, 나머지 40%는 포괄적 주식교환 방식으로 매입했다. 신한금융에 따르면 오렌지라이프 잔여 지분 40%와 교환한 신한금융 주식은 총 9584억 원 규모다. 따라서 신한금융이 오렌지라이프 지분 100%를 인수하는 데 쓴 돈은 3조 2572억 원 수준이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2019년 11월 말 기준 오렌지라이프의 총자산은 33조 7460억 원으로 푸르덴셜생명의 20조 8930억 원과 적지 않은 차이가 난다. 또 2019년 11월 한 달 동안 오렌지라이프의 신규 보험 계약 규모는 8조 2134억 원, 푸르덴셜생명은 4조 6230억 원으로 영업력에서도 큰 차이가 있으며 대리점 수도 오렌지라이프(96곳)가 푸르덴셜생명(54곳)보다 42곳 많다. 2018년 영업수익도 오렌지라이프가 5조 480억 원, 푸르덴셜생명이 2조 1208억 원으로 2배 이상 차이난다.
금융권 관계자는 “2013년 MBK파트너스가 오렌지라이프 지분 100%를 1조 8000억 원에 인수했는데 2019년에는 지분 60%가 2조 원 넘는 금액으로 거래돼 오렌지라이프 매각 때도 오버페이라는 지적이 있었다”며 “골드만삭스도 이유가 있어서 푸르덴셜생명 매각가를 3조 원으로 불렀겠지만 실제 그 가격에 거래될 것 같지는 않다”고 전했다.
최근 보험업계가 불황인 것도 푸르덴셜생명 매각가 형성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17일 발표한 ‘2019년 보험회사 경영실적’에 따르면 국내 생명보험사의 순이익은 2018년 4조 325억 원에서 2019년 3조 1140억 원으로 22.8% 감소했다. 같은 기간 총자산이익률(ROA)은 0.48%에서 0.35%로 하락했고, 자기자본이익률(ROE)도 5.55%에서 3.87%로 떨어졌다. ROA는 총자산에서 당기순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을 뜻하고, ROE는 자기자본에서 당기순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한다(관련기사 국내 보험사 2019년 총 수익 5조 3367억 원).
생명보험사들의 향후 전망도 좋지 않은 편이다. 금감원은 “저성장·저출산·저금리의 3중고에 직면한 어려운 경영상황에서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영업 위축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며 “경기불황에 대응하기 위한 금리인하로 초저금리 진입이 예상돼 투자수익률도 악화할 전망”이라고 전했다.
높은 매각가에도 금융지주사들이 푸르덴셜생명 인수전에 뛰어든 이유가 오렌지라이프를 인수한 신한금융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금융권 다른 관계자는 “금융지주사는 생보사가 필요한 입장이고, 사모펀드는 오렌지라이프처럼 회사를 키워서 재매각을 하는 게 목표기에 접근 방법이 다를 것”이라며 “특히 KB금융은 금융지주 1위를 위해 푸르덴셜생명을 꼭 원할 것이며 시너지 효과를 생각하면 푸르덴셜생명 입장에서도 금융지주사에 인수되는 게 유리하다”고 전했다.
푸르덴셜생명 본입찰에 참여한 KB금융의 윤종규 회장은 이전부터 M&A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 사진=이종현 기자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이전부터 M&A에 대해 강한 의지를 보였다. 윤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 강화 차원에서 다양한 M&A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할 것”이라며 “신중하게 접근하되 기회가 왔을 때 과감하고 신속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전했다.
2019년 11월 말 기준 KB생명의 자산총액은 10조 원 수준으로 국내 24개 생명보험사 중 17위에 해당한다. 푸르덴셜생명의 자산총액은 20조 8930억 원으로 두 회사의 자산총액을 합치면 30조 9383억 원이 되며 순위도 9위로 상승한다. 자산 33조 원대인 동양생명, 신한생명, 오렌지라이프 등과도 경쟁이 가능하다.
비은행 부문이 약한 우리금융 역시 푸르덴셜생명을 눈여겨볼 듯하다. 우리금융은 2014년 민영화 추진 과정에서 우리금융투자(현 NH투자증권), 우리아비바생명(현 DGB생명) 등 비은행 계열사들을 매각했고, 지주사도 해체했다. 민영화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2019년 우리금융은 다시 지주사를 설립해 동양자산운용(현 우리자산운용), ABL글로벌자산운용(현 우리글로벌자산운용), 국제자산신탁(현 우리자산신탁)을 인수하는 등 공격적인 M&A에 나서고 있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캐피털이나 저축은행 등 중소형 M&A뿐 아니라 증권이나 보험 등 그룹의 수익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포트폴리오 확대도 속도감 있게 추진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우리금융이 IMM PE에 인수금융을 제공한 후 푸르덴셜생명 지분에도 투자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인수금융을 주선하기로 했지만 그건 IMM PE가 매각자로 선정됐을 때 이야기”라며 “푸르덴셜생명 지분을 가질 가능성은 아직 정해진 게 없고, 추후 IMM PE 의사에 따라 검토해볼 것”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금융지주사들의 본입찰 참여로 푸르덴셜생명 인수 열기는 뜨겁지만 높은 매각가로 인해 ‘승자의 저주’ 우려가 적지 않다. 하지만 향후 운영에 따라 이에 걸맞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앞의 금융권 관계자는 “보험업계가 워낙 좋지 않다보니 얼마가 적정한 가격인지 쉽게 논하기 어렵다”면서도 “향후 수익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지금 적정성을 판단할 건 아니다”라고 전했다.
조보람 NH투자증권 연구원은 “KB금융이 푸르덴셜생명 인수에 성공한다면 (푸르덴셜생명의) ROE 개선 효과와 4~5%의 EPS(주당순이익) 상승 효과가 예상된다”며 “인수 시점의 수익성 및 효율성을 향후에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존재하고, 추가 증익 효과 및 시너지 창출은 전적으로 경영진의 전략에 달려 있다고 판단된다”고 전했다. 푸르덴셜생명 인수전에 참여한 업체들은 “아직 정해진 게 없어서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