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교 미래한국당 대표가 3월 19일 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3월 16일 오후 4시 30분쯤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후보자 추천안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후보 1번에 조수진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2번에 신원식 전 육군 수도방위사령관을 포함한 40인의 비례대표 추천안이었다. 순식간에 공유된 이 추천안에 미래통합당은 발칵 뒤집어졌다. 미래한국당이 영입한 인재는 물론 유력하게 점쳐지던 인사가 대부분 날아간 명단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선권으로 분석되는 20번 안에 미래통합당 영입인재는 17번 정선미 한반도 이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처장이 유일했다. 이 추천안은 선거인단 투표에서 가결된 뒤 곧장 최고위에서 의결될 예정이었지만 미래통합당에서 당적을 옮긴 미래한국당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 회의를 거부했다.
이날 밤 미래통합당은 추천안 분석에 착수했다. 한선교 전 대표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공관위원과 공병호 공천관리위원장의 공동 작품이었다는 게 미래통합당 내부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특히 3월 16일 정오쯤부터 3시까지 일부 미래통합당 추천 인사에게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던 귀띔조차 다 뒤집어진 상태라 이러한 의심은 시간이 갈수록 짙어져만 갔다.
밤새 미래통합당을 뜨겁게 달군 이 추천안에 대해 3월 17일 공병호 위원장은 “가장 독립적이고 중립적으로 공관위가 운영된 결과”라며 서류 심사부터 면접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점수로 수치화해 집단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했다. 또한 “평화 시에는 전문가를 대거 등용하지만 전시에는 전투성을 우선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미래통합당 쪽에서는 추천안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연락을 여러 차례 보냈지만 무시됐다. 공병호 위원장은 이에 대해 “대학 입시가 끝났는데 시험 성적을 조정해서 자신들이 밀었던 사람을 뽑아달라는 것”이라고 일축했고 “공천 결과가 바뀐다면 선거는 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뽑은 황교안 대표의 실수였다고도 했다.
미래한국당 최고위원회는 이날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비례대표 공천 결과에 대한 ‘재의’를 공관위에 요구하기로 했다. 공 위원장은 강하게 저항했다. 그는 “결과를 부정하고 싶다면 날 자르고 다시 공관위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꼿꼿하게 맞서던 공병호 위원장이 한풀 꺾인 모양새가 된 건 11번 권애영 후보 관련 문제가 불거진 직후였다. 미래한국당 광주·전남 당원 일부는 3월 17일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권 후보가 취업 사기, 학력 위조, 선거법 위반 등에 연루된 사실이 있다며 부적격하다고 사퇴를 주장했다.
동시에 미래통합당 일각에서는 최소 5명은 바꿔야 한다는 재의 요구설이 모락모락 피어나왔다. 이에 대해서도 공병호 위원장은 한 수 물러 “5명은 좀 어렵다”면서도 “1명 정도는 확실하게 우리가 놓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3월 18일 공병호 위원장이 백기를 반쯤 들었다. 그는 “부적격 사유가 확실한 분은 최고위 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8번을 받았던 우원재 씨가 미국 국무부에 지원하려 했던 과거 행적이 결정적이었다. 게다가 우 씨는 당직자 시절 뉴미디어 TF 때 한선교 대표를 바로 옆에서 보필했던 인물이었다.
결국 공관위는 7시간 긴 회의 끝에 당선권 밖에 있던 윤주경 전 독립기념관장을 3번으로, 이종성 지체장애인협회 사무총장을 8번으로 전진 배치하는 등 최초 안에서 4명을 교체했다.
하지만 최고위원회는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공병호 위원장은 “이것이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정치에 발을 디딘 것”이라며 “사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를 내리꽂고 하겠지만 처음부터 전체 그림을 그리고 지향점을 정해놓고 엄격하게 점수화 작업을 통해 사람을 뽑았다”고 버텼다.
예상보다 완강한 미래한국당 기류에 미래통합당 내부 여론은 급격히 악화됐다. 특히 황교안 대표 리더십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학(성균관대학교) 후배이자 측근으로 통했던 한선교 전 대표조차 휘어잡지 못한 게 증명된 까닭이었다. 미래통합당 일각에서는 총선을 넘어 전당대회 준비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돌기 시작했다.
3월 19일 오전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황교안 대표 쪽에서 전에 없던 강력한 메시지가 나오기 시작했다. 황 대표는 미래통합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미래한국당은 혁신 통합 가치를 담는 희망의 그릇이었다. 국민 열망과 먼 모습을 보이며 큰 실망을 안겨드리게 됐다”며 “이번 선거 의미 중요성 생각할 때 대충 넘어갈 수 없다. 단호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 뒤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정치는 약속입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의 존엄을 짓밟는 것입니다”는 글까지 올렸다.
쿠데타는 의외로 간단히 제압됐다. 황교안 대표의 전화 한 통으로 마무리됐다고 알려졌다. 미래통합당 관계자에 따르면 황 대표는 미래한국당 대구경북 지역 선거인단 쪽에 전화를 걸어 부결로 결론 지으라고 한마디 건넸다고 한다. 선거인단 61명 찬반 투표 결과 반대 47명, 찬성 13명으로 수정안은 부결됐다.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후보 선거인단은 미래한국당 당원 1만여 명 가운데 배심원 추천과 최고위원회 의결을 거친 인사 약 100여 명으로 구성됐다.
이를 전해들은 한선교 대표는 즉시 사퇴했다. 취임 43일 만이었다. 미래한국당 지도부도 총사퇴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오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참으로 가소로운 자들에 의해 정치인생 16년의 마지막을 당과 국가에 봉사하겠다는 제 생각은 막혀버리고 말았다”고 했다. 이어 김성찬, 이종명, 정운천 최고위원과 조훈현 사무총장 등 다른 지도부 4명도 총사퇴를 의결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