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는 당초 캠프 기간을 늘리기로 결정했다가 돌아오는 비행기가 운항되지 않을 위기에 놓이자 다시 일정을 단축해 급하게 짐을 쌌다. 미국 애리조나에 머물던 한화 이글스는 한 달 전 예약했던 항공편이 결항돼 귀국일을 하루 앞당겨야 했고, 대만에 있던 키움 히어로즈는 돌아올 비행기가 없어 인근에 있던 두산 베어스 2군 선수단과 함께 전세기까지 빌려야 했을 정도다.
코로나19 여파로 각 구단들은 훈련만 이어나가고 있다. 코칭스태프는 훈련 중에도 마스크를 착용한다. 사진=연합뉴스
국내 확진자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던 시기에 해외 스프링캠프를 치르던 프로야구 선수들은 한국 상황을 궁금해 하거나 귀국 이후 벌어질 일들을 염려하며 좀처럼 마음을 잡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특히 해외 유력 언론들이 매일 ‘아시아 바이러스’에 대한 속보를 쏟아내자 한국이 ‘타지’인 외국인 선수들과 그 가족들은 더 큰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많은 팀 외국인 선수들이 캠프 종료 후에도 한국행을 잠시 유보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움직임이 일었던 이유다.
#“가족이 불안해한다” 입국 유보 택한 선수들
LG 외국인 선수 삼총사가 가장 먼저 입국 유보를 결정했다. LG는 지난 7일 귀국을 앞두고 세 외국인 선수와 면담을 한 뒤 “가족들이 지금은 함께 한국에 입국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선수들의 뜻을 받아들였다. 새로 KBO 리그에 발을 내딛는 외국인 타자 로베르토 라모스는 물론, 이미 KBO 리그를 경험한 투수 타일러 윌슨과 케이시 켈리 역시 고국에서 개인 훈련을 진행하기로 뜻을 모았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캠프를 마친 이들은 한국으로 귀국한 동료들과 공항에서 헤어져 각각 미국(윌슨·켈리)과 멕시코(라모스)로 돌아갔다. 단 LG 구단과 “정규시즌 개막 시점이 확정되는 즉시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 48시간 이내에 팀에 복귀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투수 파트와 타격 파트, 트레이닝 파트가 세 선수에게 정규리그 개막전까지 해야 할 숙제를 줬고, 구단도 세 선수가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해 서울에서 스카우트팀 관계자들을 파견해 시즌 준비를 돕도록 배려했다. 이후 셋은 훈련 스케줄과 훈련 장면을 담은 비디오를 구단과 공유하면서 시즌 준비를 해나갔다. 윌슨은 모교인 미국 버지니아대학교, 켈리는 친척이 코치로 있는 미국 애리조나대학교에서 훈련을 이어갔고 라모스는 자택 인근 야구 연습장에서 타격 감각을 조율했다.
함께 오키나와에서 훈련했던 삼성 외국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벤 라이블리, 데이비드 뷰캐넌, 타일러 살라디노는 국내 선수들이 귀국하는 날 공항에서 잠시 동료들과 작별해 다른 비행기를 탔다. 도쿄 나리타공항을 경유해 미국으로 떠나는 일정. 이들 역시 개막 2주 전까지 한국에 도착하는 게 조건이었다.
삼성은 코로나19 최대 피해 지역인 대구와 경북을 연고로 하는 팀이라 일찌감치 귀국일을 늦추고 스프링캠프를 3월 18일까지 연장해둔 상태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한국인 대상 입국 규제 강화 방침을 발표하고 동시에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항공편이 대폭 축소되자 부랴부랴 다시 열흘을 앞당겨 귀국을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대구에 짐을 풀어야 하는 삼성 외국인 선수 3인의 가족이 걱정을 금치 못했고, 삼성 구단도 “굳이 무리하게 동행하는 것보다 외국인 선수들의 심리적인 안정이 더 중요하다”며 미국행을 제안했다는 후문이다.
대만에서 캠프를 치른 키움도 같은 선택을 했다. KBO 리그 경험자인 제이크 브리검과 에릭 요키시, 새 외국인 타자 테일러 모터가 지난 10일 귀국을 하루 앞두고 먼저 미국으로 돌아갔다. 지난 9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출발해 미국 시애틀을 경유한 뒤 플로리다주에 도착해 함께 훈련을 진행하는 일정이었다. 손혁 키움 감독은 “정규리그가 개막하더라도 코로나19로 인해 외국인 선수 가족들이 바로 한국으로 입국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선수들의 훈련 집중도를 위해 셋이 미국에서 훈련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훈련한 팀들은 아예 외국인 선수들을 현지에 남겨 두고 돌아왔다. KT 위즈는 3월 9일 “36일간 미국 애리조나 투손에서 캠프를 진행한 선수들이 이날 귀국한다”고 발표하면서 “다만 총 인원 51명 가운데 외국인 선수 세 명(멜 로하스 주니어, 윌리엄 쿠에바스,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은 당분간 애리조나에 남는다”고 전했다. 캠프지에서 훈련 기간을 개별적으로 연장한 뒤 KBO 리그 정규시즌 개막일이 확정되면 귀국일을 결정하겠다는 뜻이었다.
애리조나주 메사에 머물던 한화도 KBO 리그 3년 차를 맞이하는 재러드 호잉과 2년 차가 되는 채드 벨을 미국에 남겨 두고 호주 출신인 워윅 서폴드를 고국으로 보낸 뒤 3월 10일 국내 선수들만 먼저 귀국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프로야구 개막이 연기되자 일부 외국인 선수들은 한국 입국을 미루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보다 안전해” 동반 귀국 택한 선수들
물론 모든 외국인 선수가 이런 선택을 한 것은 아니다. 일본 미야자키에서 캠프를 마친 두산은 외국인 선수 세 명을 모두 데리고 한국에 돌아왔다. 두산 입장에선 다른 구단에 비해 한결 수월하게 진행된 캠프였다. 한국인 입국 규제 강화 방침이 시행되기 직전의 항공편을 예약해뒀던 터라 일정을 변경하거나 급히 대체 비행편을 알아보는 번거로움을 겪지 않았고, 외국인 선수 세 명 역시 구단에 따로 미국행이나 개인 훈련 허가를 요청하지 않아 그 문제를 두고 고민할 일도 없었다.
KT에서 두산으로 이적한 라울 알칸타라와 KBO 리그 무대를 처음 밟는 크리스 플렉센, 지난해 최다안타왕에 오른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가 모두 이의 없이 국내 선수들과 함께 한국땅을 밟았다.
한국에 와본 적이 없는 플렉센은 이 결정과 관련해 “코로나19를 가볍게 보지 않지만, 어차피 미국에도 코로나19가 확산하고 있고 한국이 오히려 감소세인 것 같다. 손을 잘 씻고 청결을 유지하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많은 외국인 선수가 미국에 남거나 고국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접했고 그 의사도 존중하지만, 나는 한국에서 훈련하기로 결정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미국 애리조나 투손에 있던 NC 다이노스와 SK 와이번스, 호주 애들레이드에 있던 롯데 자이언츠 외국인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선수들의 동의를 받아 예정대로 함께 한국에 들어오는 쪽을 택했다. NC는 2년 차 외인 드류 루친스키와 새 외인 마이크 라이트, 애런 알테어가 모두 한국 입국을 선택했다면서 “선수들이 크게 불안해하지 않았고, 본인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했다”며 “루친스키가 구심점 역할을 해 다 같이 한국에 들어오기로 했다”고 고마워했다.
롯데 역시 당초 댄 스트레일리, 아드리안 샘슨, 딕슨 마차도 등 세 외국인 선수에게 캠프 종료 후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특별 휴가를 줄 계획이었다. 당분간 가족이 한국에 올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 선수들이 잠시라도 고국에 다녀올 시간을 필요로 한다고 판단해서다.
그러나 나란히 KBO 리그에서 새 출발을 해야 하는 셋은 상의 끝에 “새로운 팀과 하나가 돼 시즌을 준비하고 싶었고, 한국에서 빠르게 적응해야 하는 과제도 있기에 멀리 내다보고 휴가를 자진 반납하는 게 옳은 것 같다”는 결정을 내렸다. KIA 타이거즈 역시 플로리다 포트마이어스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외국인 선수 애런 브룩스, 드류 가뇽, 프레스턴 터커를 모두 대동했다.
#“우리 선택이 옳았다” SK 킹엄과 로맥의 ‘시의적절한’ 판단
SK는 유일하게 외국인 선수 두 명이 함께 귀국하고 나머지 한 명은 고국에 다녀오게 한 구단이다. 지난 10일 애리조나 투산 훈련을 마치고 귀국한 SK 선수단 명단에는 올해 새로 영입한 외국인 투수 닉 킹엄과 리카르토 핀토가 모두 이름을 올렸다. 반대로 KBO 리그 네 번째 시즌을 맞이하는 외국인 타자 제이미 로맥은 이들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지 않았다. 본인은 물론 아내까지 함께 입국한 킹엄과 대조적이다.
킹엄은 많은 선수가 가족 문제로 입국을 미루는 시기에 정반대 선택을 한 이유를 묻자 “처음에는 팀 동료들과 함께 훈련하며 새 시즌을 준비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고, 아내도 그 과정을 함께하기로 했다. 처음 입국할 당시에는 걱정했던 게 사실”이라고 털어 놓은 뒤 “그러나 막상 와보니 한국 상황은 미국보다 나은 것 같다. 최악의 상황은 지난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실제로 SK 선수단이 귀국한 뒤 한국은 확진자 수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로 접어든 반면 미국과 유럽 지역에 코로나19가 더 광범위하게 번지면서 해외에 남은 선수들이 오히려 더 불안해지는 ‘반전’이 벌어졌다. 외국인 선수들을 미국 등지에 보냈던 다른 구단들은 현지에 있는 선수들의 감염 위험이 더 커지고 입국길이 막힐 위기에 놓이자 예정보다 더 빨리 외인들을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과감한 선택 덕에 뜻밖의 이점을 누리게 된 킹엄은 “지금 마스크를 쓰고 손 세척에 신경을 쓰면서 문제없이 한국 생활을 하고 있다”며 “언제 리그가 시작할지 몰라 약간 혼란스럽지만 이런 상황은 나만 겪는 게 아니다. 예년보다 몸 상태를 천천히 올리면서 준비하고 있다”고 차분한 태도를 보였다.
‘로맥아더 장군’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한국 생활에 익숙하고 애정이 많은 로맥은 고국 캐나다에 들렀다가 다른 선수들보다 5일 늦게 한국에 돌아온 뒤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리고 만족감을 표현했다. 그가 SK 선수단을 떠나 가족이 있는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다녀온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한 불안감 탓이 아니라 아내의 둘째 출산을 보기 위해서였다. 캠프 막바지에 둘째 출산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듣자 경조 휴가를 얻어 가족 곁으로 향했고, 무사히 둘째의 탄생과 건강한 아내의 모습을 확인한 뒤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로맥이 귀국한 시점 역시 국내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반면 미국과 유럽지역 코로나19 확산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시기였다. 특히 공황 상태에 빠진 일부 유럽 지역의 ‘사재기’ 사태는 현지 주민들을 큰 혼란에 빠트리기도 했다.
로맥은 캐나다 현지 매체와 인터뷰에서 이 점을 강조했다. “내가 둘째를 보고 바로 한국에 가겠다고 결정했을 때 주변에선 ‘미쳤냐’는 이야기를 했다. 나도 처음엔 걱정했지만, 상황은 이제 급변했다”며 “한국에 와보니 상황은 안정적으로 변했다. 한국 국민들은 질서 있게 생활하면서 코로나19 확산을 효과적으로 막고 있다”고 자신의 ‘일터’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했다.
또 “한국에선 어딜 가나 마스크를 쓰고 있고, 사재기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평소처럼 식료품, 화장지를 살 수 있다”고 소개하면서 “지금 같은 상황이 유지된다면 한 달 안에 리그가 개막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도 언제든 경기를 치를 수 있게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해 SK 팬은 물론 한국 야구팬들까지 뿌듯하게 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