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정당 시민을위하여(가칭) 우희종·최배근 공동대표가 18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자환경당, 기본소득당, 시대전환, 평화인권당,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비례연합정당 협약’ 체결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한국당이 먼저 해 다행? 예고된 꼼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 처리를 놓고 공방이 한창이던 지난해 11월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 한 중진 의원은 이인영 원내대표 등에게 “이대로 선거법이 통과되면 우리는 비례전용 정당을 만들 수밖에 없다. 법적인 부분까지 이미 다 따져봤다”고 했다. 12월 24일엔 김재원 정책위의장이 “반헌법적인 비례대표제가 통과되면 곧바로 비례대표 전담 정당을 결성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선거법 통과를 저지하기 위한 경고였지만 민주당에서도 이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은 한국당이 비례전용 정당을 만들 경우의 선거 결과 시뮬레이션까지 돌려가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겉으론 한국당 비례정당 추진 움직임에 대해 강한 비난을 쏟아냈던 것과는 달리 내부적으론 ‘실리’를 찾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친문 진영에선 한국당이 비례당을 만들면 민주당 역시 비례당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퍼졌다. 2월 26일 친문 실세들의 소위 ‘5인 회동’에서 비례당 논의가 오가기 훨씬 전의 일이다. 한 친문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하에선 지역구 전용과 비례 전용 정당을 따로 만들어 나중에 합치는 게 무조건 유리하다. 이를 민주당에서도 모를 리 있느냐.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자유한국당이 먼저 비례당을 만든다고 나선 것이 오히려 우리에겐 다행이었다. 한국당 꼼수를 막기 위한 것이란 명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의 이야기들이 패스트트랙 과정에서 많이 나왔고, 실제 당 지도부와 핵심 전략가들이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했던 것으로 안다.”
이는 자유한국당 비례전용 정당 출범 후 민주당이 보였던 반응을 생각하면 표리부동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민주당 인사들은 미래한국당을 두고 ‘쓰레기 정당’ ‘의석 도둑질’ ‘가짜 꼼수 정당’과 같은 말로 비난한 바 있는데, 정작 내부에선 비례당 논의가 이뤄졌던 까닭에서다. 그것도 선거법 처리를 위한 ‘4+1체제’의 패스트트랙 공조가 가동되고 있던 시기에 말이다. 앞서 언급했듯, 비례전용 정당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근본 취지에 어긋나는 ‘꼼수’다.
민주당이 비례당 창당의 불가피성을 일찌감치 받아들였으면서도 이를 드러내지 않은 것 역시 4+1에 참여했던 다른 당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앞서의 친문 의원도 “사실 우리는 선거법 처리가 급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4+1 공조는 중요했다. 조국 사태가 터지면서 공수처 설치를 핵심으로 하는 검찰 개혁법을 통과시켰어야 했기 때문”이라면서 “선거법 개정으로 인해 의석수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비례정당으로 만회하면 된다는 셈법이 밑바탕에 깔리면서 4+1 체제는 유지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3수 끝 만든 더불어시민당, 입맛에 맞아서?
선거법 개정안 통과 후 미래한국당이 뜨자 민주당 발걸음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을 비롯해 당 핵심 인사들은 외부 플랫폼 정당을 띄운 뒤, 여기에 비례대표를 배치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당초 진보 진영에선 민주당이 손혜원 무소속 의원과 정봉주 전 의원을 주축으로 하는 열린민주당과 손을 잡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었다. 실제 열린민주당 창당 과정에서 민주당 지도부와의 일정 부분 교감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열린민주당이 선거 후 독자노선을 고수하면서 양측엔 괴리감이 생겼다. 민주당은 선거가 끝난 뒤 비례당의 흡수 또는 당대당 통합을 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다음 선택지는 진보진영 원로들이 주도해 만든 정치개혁연합이었다. 4+1의 한 축이었던 정의당은 빠졌지만 녹색당, 민중당 등이 참여했다. 하지만 불협화음은 끊이지 않았다. 비례대표 순번 문제 등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이 벌어졌고 결국 민주당은 발을 뺐다. 그러자 정치개혁연합은 민주당을 강하게 성토했다.
3월 8일 오후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열린민주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정봉주, 손혜원 최고위원이 토크콘서트를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정치개혁연합 핵심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통합당에게 1당을 뺏길 수 없다는 목적으로 진보진영이 정치개혁연합을 만들었는데, 민주당이 나중에 들어와 생떼를 부렸다”면서 “무조건 자신들이 정한 가이드라인을 지키라는 식이었다. 일종의 ‘갑질’이었다. 우리가 이를 듣지 않으니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한 것이다. 자매정당이 아닌, 노예정당을 원했던 것 같다”고 했다.
민주당이 ‘시민을 위하여’와 함께 더불어시민당을 만든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읽힌다. 더불어시민당은 지난해 조국 사태 때 서초동 집회를 주도했던 개싸움국민운동본부(개국본)이 주축인 비례연합 플랫폼 정당이다. 민주당 외에 기본소득당, 시대전환, 가자환경당, 가자평화인권당으로 꾸려졌다.
민주당을 제외하곤 대부분 신생정당이거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정당들이다. 또 친문 성향 인사들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정치개혁연합과는 달리 다루기 쉬운 정당을 고른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온다. 앞서의 정치개혁연합 관계자는 “민주당이 출범시킨 더불어시민당은 누가 봐도 비례민주당이다. 미래한국당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면서 “결국 선거법은 거대 양당 꼼수에 유명무실화됐다”고 덧붙였다.
#겉으론 조용한 민주당, 안에선 부글부글
민주당이 진보진영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실상의 위성정당을 만든 것은 결국 의석 수 때문이다. 현 정당 지지도 조사 등에 따르면 더불어시민당은 대략 17~20석이 예상된다. 꼼수라는 지적에 민주당 내부에서 ‘묘수’라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정치권 관계자들은 결국 ‘악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민주당 행보에 실망한 중도 지지층들이 이탈해 오차 범위 내로 접전 중인 지역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에서다.
설령 민주당이 기대하는 의석을 얻는다 하더라도 진보진영을 사분오열시킨 후폭풍이 클 것이란 얘기도 뒤를 잇는다. 정치개혁연합에 참여했던 한 원로 인사는 “친문이 큰 착각을 한 것이다. 금배지 몇 자리 늘리는 게 정치권 현실에서 얼마나 문재인 대통령을 돕는 일인지 모르겠다”면서 “문 대통령 지지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단체들이 등을 돌릴 경우 후반기 국정운영에 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놓쳤다. 얄팍한 꾀를 부린 민주당이 장기적으론 고립되는 형국에 놓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황이 이런데 어찌된 일인지 민주당 내부는 조용하기만 하다. 민주당과 불협화음을 냈던 열린민주당과 정치개혁연합 내부에서 불만이 나오는 정도다. 열린민주당의 손혜원 의원과 하승수 정치개혁연합 집행위원장은 일제히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을 향해 날을 세웠다. 손 의원은 “양 원장이 아직 문 대통령 복심인지 살펴봐야 한다”고 했고, 하승수 위원장은 “적폐 중의 적폐다. 이런 사람이 집권여당의 실세 노릇을 하고 있으니 엉망인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의 비례정당 출범을 양 원장이 배후에서 기획하고 있다는 주장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민주당에선 별다른 말이 들리지 않는다. 한 친문 실세는 사석에서 “이렇게 잡음 없이 조용한 공천이 있었던 적이 있느냐. 총선에서 크게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공천 떨어진 금태섭을 봐라. 지금 경선이 한창인데 누가 감히 뭐라고 하겠느냐. 할 말이 없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친문 의원도 “친문 진영에서조차 더불어시민당 출범을 기사 보고 알았다는 의원들이 있었다. 그만큼 몇몇 실세들이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선거를 이기면 모르겠는데, 만약 지기라도 하면 그 후폭풍은 상당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부실검증 부메랑 맞을라
3월 18일 돛을 올린 더불어시민당은 22일까지 비례대표 후보와 순번을 확정해야 한다. 이 짧은 시간에 과연 다양한 계층·세대·직능 등을 대표할 만한 인물을 골라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치권에선 사실상 친문 인사들 줄세우기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민주당 역시 부실검증에 따른 부메랑을 맞는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자칫, 총선 판세 전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더불어시민당에 참여한 인사들 중 일부가 도마에 올랐다. 2월 27일 출범한 가자환경당은 고 노무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와 친척인 권기재 씨가 대표다. 노무현 정부 행정관으로도 재직했던 권 씨는 2013년 사회봉사단체 여성단원 3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피소됐다. 이 중 한 명은 미성년자였다. 경찰은 미성년자 강제추행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이후 검찰은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권 씨는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건이었다”라고 해명했다.
가자평화인권당 이정희 대표는 유사역사학 논란에 휩싸였다. 이 대표는 2016년 우리 민족 고유의 달력을 찾았다고 주장하며 ‘마고력’이라는 책을 집필했다. 또 2017년엔 도종환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환단고기를 읽어보지 않았다’고 발언하자 “환단고기를 아직도 안 읽을 정도로 게으르고 무지한 사람이 이다지도 많단 말인가”라고 꼬집었다. 환단고기는 역사학계에서 대표적인 위서로 꼽힌다.
민주당 측은 “더불어시민당에 참여한 인사들의 개인적 문제일 뿐이다. 그들이 직접 출마하는 것은 아니다. 비례대표 순번은 공천심사위원회 검증에 따라 이뤄질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내부에선 곤혹스러운 기류가 역력하다. 앞서의 민주당 중진 의원은 “국민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 구차한 변명이다. 과거 막말 하나 때문에 총선에서 진 기억을 잊은 것 같다. 이런 구설에 오른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어떻게 표를 달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