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성규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에서 민초를 대변하는 ‘영신’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지난 24일 화상 인터뷰를 통해 일요신문과 만난 김성규(34)는 멀끔해 보였다. 차기작인 tvN 드라마 ‘반의 반’ 촬영을 위해 익숙한 긴 머리를 짧게 다듬은 덕이었다. 한층 가벼워진 모습이었지만 눈빛과 목소리에서는 여전히 ‘영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시즌1에서 영신은 상대적으로 다른 인물에 비해 굉장히 역동적이고 액션도 많았잖아요.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사연이 가득한 인물로 비춰져서 제가 연기한 것보다 더 비밀스럽고, 궁금증을 간직한 캐릭터처럼 보였던 것 같아요. 저도 영신이란 인물을 연기하면서 재미있는 상상들을 해봤는데 시청자분들이 제 생각과 비슷하게 댓글을 달거나 반응을 보여주시더라고요. 그게 참 신기했어요.”
김성규는 ‘킹덤’에서 과거 호랑이를 사냥하던 착호군이자 수망촌 출신의 미스터리한 인물 ‘영신’으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시즌1에서는 좀처럼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극도로 현실적인 모습을 보이면서도 분노와 원한, 슬픔이 섞인 감정을 눈빛만으로 표현해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영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는 왕세자인 창과 함께 ‘킹덤’ 시리즈에서 큰 줄기를 이루는 스토리 가운데 하나다.
“작가님께서 ‘킹덤’의 주제가 피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씀해주셨잖아요. 그것과 크게 다르진 않지만 영신의 입장에서 봤을 땐 어떤 책임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생각했어요. 여러 인물들이 각자 타인에 의해 책임을 지게 되기도 하고, 누군가는 본인이 했던 선택의 책임을 지기도 하고 그런 이야기죠. 시즌1부터 갖고 있던 복수에 대한 이상이 시즌2에서 정리가 되긴 했지만, 영신은 다시 어떤 백성으로서 또는 천민으로서 돌아갈 곳이 없는 그런 캐릭터예요. 그런 가운데 왕세자인 창을 바라보면서 그를 믿고, 그 옆에 함께하겠다는 선택을 하는 것 역시도 영신이 시즌1에서 본의 아니게 역병을 퍼뜨리게 된 죄책감에 대해 책임을 지는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김성규가 생각한 ‘킹덤’의 주제는 ‘책임’이었다. 영신의 행동 역시 죄책감에서 비롯된 책임을 지는 선택이었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시즌1 때는 작가님께 작품에 대해 많은 걸 물어 보는 게 좀 쑥스럽더라고요. 그래서 영신이 죽은 사람 또는 누군가의 호패를 주워서 자기 것인 양 갖고 다니는 걸 봤을 때 저도 참 궁금했어요. 제 개인적으로는 영신이 동생의 호패를 지니고 있다는 설정을 택하는 게 ‘영신이 살아남으려 하는 이유’를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사실 저도 시즌1 때 영신의 과거에 대해 아주 기본적인 라인만 들었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풀릴지는 몰랐거든요(웃음). 영신의 변화가 너무 갑작스럽고, 생각보다 창을 너무 쉽게 믿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제 나름대로는 시즌1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이는 지점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거칠 것이 없던 영신이 다른 이들을 구하고, 창과 함께 하는 과정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영신이 변화하는 모습도 어느 정도 잘 그려지지 않았나 싶어요.”
추위와 더위 속에서 좀비와 싸우는 조선시대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은 여간 고생스러운 일이 아니었을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킹덤’의 촬영 뒷이야기에는 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돈다. 고된 촬영 속에서도 즐기고 기뻐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김성규는 “믿음” 덕분이었다고 했다.
“대본에 대한 믿음, 감독님에 대한 믿음, 배우들에 대한 믿음과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참 재밌는 게 뭐냐면, 저희 배우 분들 보면 서로 다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거든요. 배두나 선배님은 선한 마음으로 다들 하나하나 챙기시는 모습이 인상적인데 그러면서도 되게 또 엉뚱하세요(웃음). 전석호 선배님은 마냥 사람들을 기분 좋게, 편하게 해주시고. 허준호 선배님도 중심을 잘 잡아주시고 류승룡 선배님은 후배들이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농담도 많이 해주셨어요. 주지훈 선배님 같은 경우엔 제가 어떤 연기를 해야 할지 망설일 때 옆에서 조언을 많이 해주셨고. 역할도 각자 다른 조합인 것처럼 배우들끼리도 다들 밸런스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저는 그 밸런스가 좋아서 현장 분위기도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필모그래피에 강렬한 카리스마를 가진 캐릭터가 많이 자리잡고 있는 김성규는 자신의 배우로서 강점을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 목소리”라고 말했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현장의 분위기가 좋았던 만큼 그 분위기의 한 축을 담당하던 선배들의 퇴장은 김성규에게 큰 충격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들의 빈자리를 채울 새로운 캐릭터들과 김성규가 그려낼 영신의 이야기에 기대감이 더욱 모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가 팬들만큼이나 시즌3의 시작을 기대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시즌2 촬영 중간에 전석호 배우님과 ‘와, 저렇게 큰 역할을 하셨던 분들이 작품에서 이렇게 가 버리시면 어쩌지?’ 하는 얘길 나눴거든요(웃음). 그렇지만 부담보다는 시즌3에 대한 기대가 더 커요. 앞서 작가님께서 영신의 이야기가 시즌3에서 풀린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어떤 이야기가 될진 모르겠지만 사실 너무 감사드리고 저도 기대 중이에요. 작가님을 자주 봬서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여쭤볼까(웃음)…. 수망촌에 돌아와 처참한 광경을 보고, 가족들의 시신을 수습해 무덤을 만드는 그런 과거의 이야기가 나와도 어떨까 싶기도 해요. 한편으론 착호군으로서 험한 산행을 하며 창 일행을 만나기 위해서 가는 거친 액션 같은 게 나와도 재미있지 않을까요?”
김성규의 필모그래피에는 유독 강렬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다. 영화 ‘범죄도시’에서 잔인한 조선족 두목 장첸의 왼팔 ‘양태’ 역부터 지난해 개봉한 영화 ‘악인전’에서의 사이코패스 살인마 ‘강경호’까지. 뚜렷한 이목구비나 형형한 눈빛, 깊은 목소리가 어우러진 그에겐 어쩌면 맞춤옷 같은 역할일지도 모른다.
“의도적으로 제가 강렬하거나 카리스마 있고, 조금은 의뭉스러운 이미지를 더 좋아하고 선택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저라는 사람에게 그런 이미지가 많이 있긴 하지만 아주 가벼운 모습도 있거든요. 앞으로 어떤 이미지를 그려간다면 생각보다 좀 더 평범하고, 오히려 어떻게 보면 좀 부족한 사람을 하고 싶은, 그런 배우로서 바람이 있네요(웃음). 저 자신에 대해 의심이 많은 편이어서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거든요. 그렇게 고민하면서 연기를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풍기는 느낌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느낌과 에너지 때문에 제가 캐스팅되고, 제가 맡을 수 있는 역할들이 있는 거겠죠. 그런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배우로서 강점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하나 더 추가해서 말씀드리면 제 목소리도(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