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단 영순위 김효영과 선으로 대국하는 서봉수(왼쪽). 서래바둑연구실(바둑맘TV 스튜디오)에서 진행한 대국과 복기는 유튜브 채널 ‘서봉수’에 올라와 있다. 사진=바둑맘TV
영상편집과 촬영을 직접 하긴 어려웠다. 채널 ‘서봉수’는 권효진 6단(바둑맘TV)이 숨은 기획자다. “처음에는 순수하게 도와주는 마음이었습니다. 서봉수 사범님도 좋은 추억을 회상하며 지난 역사를 기록에 남긴다는 의미로 시작하셨어요. 몇 번 가르쳐드리다가 요즘은 제가 채널운영자로 자리잡았습니다”라고 말한다. 최근 유튜브 채널은 50~60대도 많이 본다. 특히 바둑채널 구독자들은 상상외의 고연령 층이 많다. 당연하지만 여성과 젊은이들은 극소수다. 서봉수 콘텐츠가 통하는 무대다.
권효진은 “평소에 서 사범님이 재미나게 이야기하시는데 카메라만 돌리면 얼음이 되신다”라고 아쉬워한다. 서봉수는 대회장이나 사석에서 만나면 일면식 없는 기자를 붙들고도 기본 한두 시간은 이야기하는 달변가다. 유튜브 채널에선 아직 그 방언(?)이 터지지 않았다. 처음 AI바둑판을 만난 서봉수는 “이런 물건이 있나. 내 애인으로 삼겠다. 이름을 붙여줘야 하나”라면서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인공지능을 컴퓨터 화면이 아니라 진짜 바둑판으로 보여주는 방식도 올드팬의 향수를 자극했다. 앞으로 그의 입이 풀리면 서봉수의 투박한 말투에 중독될 사람들이 많다.
‘바둑맘’ 권효진은 “바둑유튜브 콘텐츠를 크게 나누면 세 가지다. 경기 중계와 하이라이트 해설, 강좌와 지도대국, 바둑 예능과 토크쇼 분야다. 서봉수 채널은 강좌와 지도대국을 중심으로 시작했지만, 앞으로 독보적인 예능 채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유튜브에서 강좌분야는 아마추어 바둑원장님들이 만든 채널 ‘쉬운바둑’ 채널을 모두 인정한다. 예능면에선 ‘프로연우’ 채널이 이미 바둑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우리 채널은 서봉수만의 독특한 매력으로 이 둘을 따라잡을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유튜버 수입 대부분은 결국 광고에서 나온다. 채널에 담긴 영상에 조회 수와 시청시간이 그 기준이 된다. 바둑은 다른 채널에 비해 시청시간이 길다. 구독자 대비 수입이 꽤 좋은 편이다. 서봉수 채널 구독자 수는 이제 1600명 정도다. 치수 고치기 4국에서 1만 5000회를 넘겼다. 응씨배 결승대국(서봉수-오다케 히데오) AI+자전해설이 500회를 못 넘은 거와 비교하면 천지차이다. 인공지능과 치수 고치기에서 재미를 보고나선 ‘추억의 기보’는 다시 찍지 않았다. 방향을 급선회했다. 어린 여자 영재와 대결 등도 새로운 콘셉트도 시도하고 있다.
서봉수와 여자 영재들. 왼쪽은 악지우, 오른쪽은 김효영이다. 사진=바둑맘TV
유튜브는 너(You)의 텔레비전(Tube)이다. 원래 채널 운영자 개인이 직접 기획하고, 영상편집까지 할 수 있어야 그 맛이 살아나는 미디어다. 바둑 방송사들도 유튜브 채널을 가지고 있다. 한국기원 바둑TV는 지난 KB리그에서 장고대국을 유튜브를 통해 송출했다. 급하게 기획하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잘나가는(?) 유튜버를 초빙하고 유명한 프로기사를 섭외했지만, 그냥 바둑판을 앞에 둔 낡은 토크쇼였다. 유튜브는 프로기사도 계급장을 떼고 오직 재미로 경쟁해야 하는 곳이다. 특색 없는 낡은 콘텐츠는 그대로 아웃이다.
심기일전한 바둑TV에서 올해 새로 전담팀을 꾸린다는 소식이 들린다. 개인의 열정이 재미로 승화되려면 강렬한 주인의식이 필요하다. 회사 차원에서 만드는 유튜브는 이런 면에서 경쟁력이 많이 떨어진다. 억지로 하는 숙제 같은 느낌이 날 수밖에 없다. 유튜브에서 개인의 개성이 거세되면 이도 저도 아닌 잡탕채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 전문가는 “플랫폼에 최적화된 크리에이터 1인이 중요하지 거대자본이나 꼰대기획은 다 필요 없다. 기존 미디어의 방식을 답습해선 생존자체가 어렵다. 어떤 스타가 출연해도 자만해선 살아남을 수 없는 정글이다”라고 충고했다.
바둑TV와 경쟁하는 K바둑(한국바둑방송)은 방향성이 다르다. 유튜브를 생방송 플랫폼으로 활용하고 있다. 시청자들이 그 방송을 언제 어디서나 휴대폰으로 실시간 감상할 수 있다. K바둑 유튜브 담당자는 “유튜브에 동시 송출하면 물론 시청률에 영향이 간다. 그러나 우리는 자체 홍보효과가 더 크다고 본다. K바둑 스튜디오에서 열리는 대국을 개인 유튜버들이 따로 생중계해설하기도 한다. 이것도 K바둑에 대한 바둑팬들의 접근성을 높여준다고 판단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예전 이세돌-한돌 대결은 공중파 SBS의 요청으로 일반 유튜버들의 중계를 막았지만, K바둑 자체 제작 프로그램에는 독점중계를 풀었다. 장기적인 안목이 돋보인다.
새로 생긴 바둑채널 중에선 이현욱TV가 단연 돋보인다. 능수능란한 방송 경험이 개인방송에도 잘 녹아있다. 사진=유튜브 이현욱TV 캡처.
많은 프로기사와 아마추어가 유튜브 채널에 뛰어들었다. 바둑 크리에이터로 성공을 꿈꾼다. 이제 프로연우, 강남바둑 같은 오래된 유튜버들은 이미 ‘시조새’다. 새로 생긴 채널 중에선 이현욱TV가 단연 돋보인다. 능수능란한 방송 경험이 개인방송에도 잘 녹아있다. 기본에 충실한 채널이다. 이현욱 8단은 “아주 예전부터 유튜브에 관심이 있었다. 본격적으로 방송을 시작한 지 이제 5개월이 되었다. 주어진 한계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봤다. 생각과 달리 조회수가 안 나오면 힘이 쭉 빠지곤 한다. AI시대라 프로기사의 일방적인 가르침은 통하지 않는다. 유명 게스트를 초청해도 조회수는 큰 영향이 없다. 결국 길게 가려면 내가 재미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깨달았다”라고 말한다.
코로나19 사태로 뛰어든 ‘바둑의 품격’ 채널 하호정 4단은 “하루 종일 스튜디오에 산다. 방송에 등판할 프로들이 많다는 게 우리 채널의 장점이다. 지치지 않고 각자의 색깔대로 영상을 찍을 수 있다”라고 자신한다. 최근 내셔널리그팀 전력분석과 입단대회 이야기로 화제를 모은 ‘쿤켄TV’(정훈현 초단 운영)도 주목할 만하다. 정통 강좌를 추구하는 ‘키바바둑TV’(권갑용 8단 운영)도 팬층이 두텁다. 낭랑한 목소리로 AI바둑을 전도하는 ‘바둑맘TV’ 권효진은 중화권 진출도 꿈꾸고 있다. 조한승과 박정상 9단이 콤비를 이룬 ‘조앤탑 바둑’은 매번 새로운 시도로 흥미를 끈다.
이현욱 8단은 “새로 유튜브로 들어올 준비를 하는 프로기사와 후배들이 많다. 무한경쟁, 적자생존의 세계다. 돈만 보고 뛰어들면 힘들다. 바둑 보급이라는 측면에서 좋은 역할을 한다는 마음이면 편하게 할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바둑 유튜브 백가쟁명의 시대가 왔다.
박주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