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 계류장에 이스타항공 여객기가 멈춰 서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 3월 23일 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이사는 ‘급여 및 전면 비운항관련 임직원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통해 임금 미지급 및 셧다운 사실을 공지했다. 최 대표는 “내부 자구 노력과 영업활동만으로는 기본적인 운영자금 확보도 어려운 현실”이라며 “정부의 긴급운영자금 지원요청 등 특단의 대책을 찾아봤지만 가시적 성과가 없어 부득이 이달 25일 예정되었던 급여 지급이 어렵다”고 전했다.
또 위기상황을 견뎌내기 위한 강도 높은 자구책으로 셧다운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최 대표는 “오는 24일부터 4월 한 달간 모든 노선의 운항을 중단하며 사업량을 최소화할 것”이라며 “4월에는 최소한의 운영인원을 제외한 모든 인원은 휴직에 들어가고,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기재를 조기 반납해 유동량 악화 속도를 조절해 시장상황에 대비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스타항공은 2019년 9월부터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지난해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따른 노재팬(일본 불매운동) 확산 여파로 일본 운항편이 줄면서 단거리 중심인 저비용항공사의 어려움이 심화된 탓이다. 공시에 따르면 이스타항공의 2018년 자본총계는 252억 8613만 원, 부채총계는 1224억 9351만 원으로 부채비율은 484.4%에 달했다. 2019년 실적이 공시되지 않아 정확히 파악하긴 어렵지만, 업계에서는 지난해 이스타항공의 상황이 더욱 어려워졌을 것이라 보고 있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지난 3월 3일 보고서를 통해 “2018년 말 재무제표 기준 약 48%의 자본잠식 상태인 이스타항공은 2019년 말에는 자본전액 잠식상태로 추정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재무상황이 악화되며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직원들이다. 이스타항공의 한 직원은 “2월에는 월급날 당일 급여의 40%만 지급한다는 공지가 게재됐다. 이번(3월 급여 미지급 공지)에도 게시글을 통해 최대한 빨리 주도록 하겠다는 뉘앙스만 있을 뿐 사전설명이나 안내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제주항공은 경영참여 전까지 이스타항공이 자체적으로 해결하라고 임금 체불에 대해 함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셧다운 또한 내부적으로 제주항공 측의 압박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스타항공의 다른 직원 또한 “4월에도 수당 및 급여가 미지급된다고 한다. 구조조정도 계획 중이라고 알려진 탓에 직원들의 불안감이 크다”고 전했다.
내부 직원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스타항공은 현재 임직원 급여는 물론, 비행기 리스료와 공항사용료 등 전반적인 대금 지급이 밀려있다. 실제로 이스타항공은 지난 2월 중순 10억 원 상당의 항공유 대금 결제가 밀려 현대오일뱅크로부터 급유 중단 통보를 받기도 했다. 현 상황을 봤을 때 추후에도 임금 지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이스타항공 안팎의 분위기다.
임직원들은 사측이 급여를 정상적으로 지불하지 못한다는 사실보다 월급날 당일 혹은 전후에 게시글을 게재해 통보한 행태를 지적하고 있다. 이에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게시글에 설명된 내용처럼 여러 대책을 강구했으나 성과가 없어 공지가 늦어졌다”고 해명했다.
현 오너일가가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사실상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 이스타항공 최대주주는 지분 39.6%를 보유한 이스타홀딩스다. 이스타홀딩스 지분은 이스타항공 창업주 이상직 전 이스타항공그룹 회장의 딸 이수지 이스타홀딩스 대표(33.3%)와 아들 이원준 씨(66.7%)가 전량 보유하고 있다. 이스타홀딩스는 지난해 12월 제주항공으로부터 이행보증금으로 받은 115억 원 가운데 100억 원으로 이스타항공 전환사채(CB)를 매입해 항공 운영자금을 간접 지원했으나 상황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후 별 다른 대응도 하지 않고 있다.
직원들이 ‘경영 공백’을 체감하는 상황에서 이스타항공 측은 본격적인 경영 정상화는 제주항공으로 인수가 마무리된 후에나 가능하다는 입장만 내놓고 있다. 지난 3월 23일 전사 공지 게시판 게시글에서 최 대표이사는 급여 미지급과 셧다운에 설명하면서 “이스타항공의 현 위기상황을 극복하는 길은 손실 규모를 최소화하면서 최대한 빠른 시간에 인수 절차를 마무리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또 “예정된 절차는 있지만 하루 속히 제주항공과의 인수과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경영 정상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제주항공이 인수한 이후 경영 정상화 자금이 들어온다는 개념으로 (최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체불임금과 항공유 대금 미결제 등의 문제도 이 자금이 들어와야 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갈수록 이스타항공이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면서, 인수 마무리 후 수혈될 자금 규모와 집행 계획도 가늠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스타항공 직원 입장에서는 제주항공 인수가 마무리된 이후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치기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인수 주체인 제주항공 측은 이스타항공의 자구책을 지켜볼 수밖에는 없다는 입장이다. 인수 마무리 전까지 법적인 자격이 없어 현 이스타항공의 상황에 개입할 수 없고, 체불임금을 비롯해 인수 이전까지 발생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제주항공이 책임지기는 어렵다는 것. 실질적인 새주인이 되려면 여러 절차를 거친 이후에 잔금 납입을 완료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순탄치 않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제주항공은 지난 3월 2일 인수 계약을 체결하고 지난 3월 13일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결합심사 신청서를 접수했다. 제주항공은 심사가 마무리되면 잔금 납부 이후 이스타항공 주식 취득을 통해 경영권을 인수하고, 이후 경영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펼치겠다는 계획이다. 제주항공은 최종 인수가액 545억 가운데 이행보증금 115억 원을 지급했으며, 오는 4월 29일 차액 430억 원을 납입해 이스타항공 지분 51.17%를 획득해 최대주주에 오르게 된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모든 심사절차가 원활하게 진행되고 인수가 순탄히 마무리되기를 바란다”면서도 “인수 작업이 완료되려면 공정위 심사 외에도 해외 경쟁당국 심사 등이 아직 남아있어 계약이 완료됐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이스타항공에 투자하게 되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며 “현재의 경영책임은 일차적으로 이스타항공에 있다는 원론적 이야기밖에는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