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뒤덮은 코로나19 여파로 유럽축구가 ‘올스톱’됐다. 사진은 마스크를 쓰고 경기를 관람하는 팬.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에 멈춘 유럽 축구
리그 재개 시점은 여전히 알 수 없다. 프리미어리그의 경우 오는 6월 1일 재개 논의가 이뤄지는 듯하지만 결정된 바는 없다. 다만 시즌 일정이 중후반부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멈춘 리그에 대해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는 예측들이 나오고 있다. 유럽 빅리그는 이미 단순한 축구경기가 아닌 거대 산업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기 때문이다.
특히 프리미어리그는 현 시점에서 그대로 종료된다면 20개 구단이 1조 원이 넘는 거액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시점은 알 수 없지만 재개 가능성만큼은 높게 점쳐지고 있다. 2~3개월 이상 장기 중단 가능성도 있다. 사상 초유의 사태지만 일부 구단에는 오히려 호재로 작용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리그 중단이 반가울 팀들
리그가 때아닌 ‘강제 휴식기’를 맞으면서 손흥민이 활약하고 있는 토트넘 홋스퍼는 오히려 기회를 얻었다. 지난 4년간 4위 이내 성적으로 선전했던 이들은 올 시즌 혼란을 겪었다. 시즌 초반 부진이 이어졌고 사령탑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이 팀을 떠났다.
때 아닌 휴식기는 손흥민이 부상에서 회복하는 시간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사진=토트넘 홋스퍼 페이스북
‘명장’ 조세 무리뉴가 합류하며 반등하는 듯했지만 2020년에 들어서면서 시즌 초반 못지않은 시련이 닥쳤다. 지난 1월 팀의 핵심 전력인 해리 케인과 주전 미드필더 무사 시소코가 부상으로 쓰러졌다. 2월에는 손흥민이 부상을 당했고 설상가상 겨울 이적 시장에서 긴급 수혈한 스티븐 베르바인마저 다쳤다.
팀 주축 선수들이 연이어 쓰러지면서 팀도 무너졌다. 리그 순위는 중위권에 머물러 있다. 손흥민과 케인 등이 빠진 사이 챔피언스리그, FA컵에서 모두 탈락했다. 이번 시즌 참가하는 모든 대회에서 우승 가능성이 사라진 것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리그 중단이 토트넘에는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이 됐다. 부상자들이 돌아올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당초 케인, 손흥민 등은 시즌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회복하기가 어려워 시즌 아웃 가능성까지 점쳐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휴식기가 길어지며 케인이 훈련을 재개했고 손흥민의 회복도 순조로운 상황으로 전해진다.
리그 사무국은 ‘6월 1일까지 리그가 종료돼야 한다’는 규정에 손을 대며 장기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핵심 자원들이 돌아오는 토트넘은 승점 7점 차인 4위권 진입에 대해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4위 첼시도 휴식기가 반갑다. 이들은 당초 예상보다 선전하는 시즌을 보내고 있다. 시즌 시작 전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려웠다. 유럽축구연맹 징계로 선수 영입이 금지됐고 ‘초보 감독’ 프랭크 램파드가 지휘봉을 잡았다. 그럼에도 첼시는 예상을 뒤집는 모습을 보였다. 징계로 영입하지 못한 자리에는 젊은 선수들이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램파드 감독의 지도력도 빛을 발했다.
한계는 있었다. 리그 중반을 넘어서며 많은 활동량으로 승부를 보는 스타일 탓에 선수들에게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토트넘과 같이 주축 선수들을 중심으로 부상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그러나 첼시도 부상 선수들의 복귀를 눈앞에 두고 있다. 크리스티안 풀리시치, 은골로 캉테, 마테오 코바치치 등이 돌아올 예정이다. 이들의 복귀는 만 18세 소년을 선발로 내세워야 했던 첼시에 큰 힘이 될 전망이다.
#휴식기가 ‘악몽’ 같은 구단들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 2019-2020시즌 프리미어리그의 화제는 단연 리버풀의 독주였다. 지난 시즌 리버풀은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유럽 챔피언 자리에 올랐고 리그에선 승점 단 1점 차이로 아쉽게 2위를 차지했다. 리그 후반기 상승세는 그 어느 팀을 만나도 패배할 것 같지 않았다.
그 같은 상승세가 이번 시즌에도 이어졌다. 모든 대회를 통틀어 올 시즌 치른 48경기에서 7패 3무만 기록하는 경이로운 성적을 냈다. 특히 리그에서는 27라운드를 치를 때까지 단 1경기(무승부)를 제외하고 모두 승리했다. 내심 무패 우승까지도 바라봤다. 27승 1무 1패로 우승컵은 맡아놓은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리그가 중단됐다. ‘시즌 무효화’가 될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오며 불안에 떨어야 했다. 이에 케니 달글리시, 제이미 캐러거, 존 알드리지, 스티브 니콜 등 리버풀 구단 역대 레전드들은 “우승을 확정할 기회를 줘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승이 간절하지 않은 구단은 없겠지만 리버풀의 간절함은 남다르다. 1970~1980년대 축구 종가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명문으로 유럽을 호령했던 이들은 1991년 힐스버러 참사, 1992년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리그 우승컵을 따내지 못했다. 30년 만의 리그 우승을 눈앞에 두고도 안심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리버풀의 노스웨스트 더비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또한 리그 중단에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 들쭉날쭉한 모습을 보이던 이들은 2월 들어 안정세를 보이고 있었다. 2월부터 열린 9경기에서 무패행진을 벌였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영입한 브루노 페르난데스가 잘 녹아들었고 팀은 유로파리그 16강 진출, 난적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승리하는 등 호재가 이어졌다.
5위에서 상위권 진입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고 선수단 운용에서 경쟁자들보다 여유가 있었다. 첼시(4위), 토트넘(8위), 아스널(9위) 등은 부상자가 많고 규모가 다소 작은 울버햄튼 원더러스(6위), 셰필드 유나이티드(7위)는 선수단이 지쳤다. 이들 팀의 부상자가 복귀하고 재충전을 하는 사이 맨유는 발만 구르게 됐다.
다만 리그 중단이 맨유에 악재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맨유도 역시 부상선수들의 복귀를 앞두고 있다. 전반기 팀 공격을 이끈 마커스 래시포드, 이적료 1400억 원의 사나이 폴 포그바가 돌아온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