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로 송치돼 종로경찰서를 나서는 조주빈. 사진=고성준 기자
#엄중 처벌 운 띄운 법무부
텔레그램을 이용해 성착취 영상을 판매·유포해 온 사건에 대해 엄중 처벌을 검찰에 지시한 법무부는 범죄단체 조직죄 적용 필요성까지 거론했다. 법무부는 3월 24일 오후 3시 브리핑을 열고 ‘SNS 이용 성착취 등 디지털 성범죄에 강력 대응’ 방침을 밝혔다.
특히 추미애 장관이 직접 참석한 이번 브리핑에서 법무부는 법정 최고형 구형 검토를 주문했다. 디지털 성범죄 대화방 개설·운영자 및 적극 관여자의 경우 범행 기간, 인원 및 조직, 지휘체계, 역할분담 등 운영구조와 방식을 철저히 규명해 가담 정도에 따라 법정 최고형 구형을 적극 검토하라고 덧붙였다. 최근 검찰로 송치된 ‘박사’ 조주빈 외에, 함께 적극적으로 참여한 운영진에 대해서도 가중처벌을 하라고 지시한 셈이다.
그렇다면 조주빈은 어느 정도의 형량을 받게 될까. 아직 수사가 끝나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점을 고려할 때 ‘중형’은 불가피하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경찰이 3월 25일 조주빈을 검찰에 송치하면서 밝힌 혐의는 모두 7가지. 아동·청소년성보호법상(청소년성보호법) 아동 음란물 제작과 형법상 강제추행, 협박, 강요, 사기에 개인정보보호법(개인정보 제공)과 성폭력처벌법(카메라등 이용 촬영) 위반 등이다. 조주빈이 미성년자 16명을 포함, 70여 명의 여성들을 유인 및 협박해 성착취 영상물을 찍도록 하고 이를 회원들에게 가상화폐를 받고 유통했다는 게 핵심이다. 특히 피해자가 영상물 촬영을 거부할 경우 운영진을 시켜 강간과 강제추행 범죄를 저지르도록 지시한 정황도 있다.
7가지 혐의가 적용됐지만 결국 청소년성보호법상 아동 음란물 제작 및 유포 혐의에 다른 혐의들이 가중된 형식으로 처벌이 이뤄질 것이라는 게 주된 전망이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 제11조에는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제작·수입 또는 수출한 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조주빈 양형 얼마나 될까
법원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20년’을 넘는 양형은 나오기 어렵다는 얘기다. 한 판사는 “이렇게 이슈화가 되지 않았다면 5~7년형을 선고 받을 정도로 양형이 약한 영역”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앞서 설명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지만, 유사한 사건들은 대부분 이보다 훨씬 약한 양형을 받아왔다.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아동‧청소년 대상으로 한 성착취 영상을 제작한 혐의와 관련된 1심 재판이 모두 535건 열렸는데 실형은 154건에 불과했다. 법무부가 발간한 ‘성범죄 백서’에 따르면 2008년부터 10년 동안 음란물 제작 배포의 경우 전체 732건 가운데 약 40%가 벌금형을, 그리고 41%가 집행유예 형을 선고 받았을 정도다. 특히 카메라를 이용한 촬영 관련 범죄에서도 역시 56% 정도가 벌금형을, 30%가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았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3월 24일 서울고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형법상 범죄단체 조직죄 등 적용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형법 114조에 명시된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해 조주빈 외 운영진도 높은 양형을 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사진=박은숙 기자
하지만 판사들은 이에 대해 “지금까지 수사 결과가 전부 유죄로 나온다면 징역 15년 내외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판사는 현재까지 언론보도로 나온 혐의를 전제로 한 뒤 “기존 사건들과 비교했을 때 지나치게 잔혹하고 비인간적이며, 인권을 짓밟아가며 돈을 버는 구조로 미성년자와 여성들을 활용한 죄질이 나쁜 사건”이라면서도 “결국 직접 강간을 하거나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점 등이 고려돼 징역 15년 내외 정도의 형을 받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성범죄 판결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도 “징역 10~12년이면 충분히 세게 처벌하는 것 같다”며 “그동안 양형이 약하게 이뤄졌던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 n번방의 최초 운영자로 알려진 ‘갓갓’으로부터 이를 물려받아 2500만 원의 이득을 챙긴 운영자 ‘켈리’는 지난해 9월 구속돼 넘겨진 재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조주빈에게 적용된 아동청소년법 상 음란물 제작 배포 혐의가 적용된 결과였다. 심지어 검찰은 이후 항소조차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피해 규모와 죄질이 좋지 않은 부분은 법원에서 유죄를 받기 유리하다는 평이다. 현재까지 경찰이 파악한 피해자만 74명. 이 가운데 16명이 미성년자이고 일부는 극단적인 선택도 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선 변호사는 “만에 하나, 사건 주심판사가 미성년 딸이 있을 경우 양형이 5년은 더 올라가도 이상하지 않을 사건”이라며 “무기징역까지 선고가 가능하기 때문에 어떤 판사가 맡느냐에 따라 양형은 징역 10년 이상을 기점으로 얼마든지 더 가중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범죄단체조직죄 왜? “가중처벌 가능”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3월 24일 서울고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형법상 범죄단체 조직죄 등 적용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형법 114조에 명시된 범죄단체조직죄(범단죄)를 적용해 조주빈 외 운영진도 엄벌을 내리겠다고 밝힌 것이다. 사형이나 무기징역·4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조직한 경우에 성립하는데 범단죄를 적용해 유죄 판결을 받아내면 ‘박사’로 이를 지시한 조주빈 외에 운영진도 같은 형량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조직원들 지위와 상관없이 모두 목적한 범죄의 형량으로 판단하는 것. 맡은 역할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공동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범단죄는 성범죄 사건에 자주 적용되던 법이 아니었던 터라, 법조계 반응은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통상 보이스피싱이나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 사건의 경우에 적극적으로 적용되는데 이번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경우 기소를 하는 선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유죄까지 나오려면 입증해야 할 요소들이 많다는 얘기다.
범단죄를 적용하려면 먼저 조주빈과 운영진이 징역 4년 이상으로 처벌되는 범죄를 목적으로 삼았어야 한다. 이는 이미 입증됐다는 게 중론이다. 조주빈이 주도한 성착취물 촬영 및 유포, 협박, 자금세탁, 대화방 운영 등은 모두 징역 4년 이상을 선고 받을 가능성이 높다.
시민들이 조주빈의 강력처벌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문제는 ‘조직’으로 인정될 만큼의 체계를 갖췄는지 여부다. 차장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조직체계가 얼마나 확실한지가 나와야 한다. 조직도는 있어야 하고, 그 안에서 조직 내 규율 등이 계모임이나 동창회 이상으로 확인돼야 한다”며 “범행 자체는 이미 입증이 됐기 때문에 결국 조주빈 외에 운영진들 각각이 얼마나 분업화 돼서 구체적으로 업무를 맡고 있고 그로 인한 경제적 보상을 받았는지를 입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경찰이 2017년 관광비자로 입국한 태국인 불법체류 여성 13명 등을 고용해 마사지 업소 8곳을 운영하며 조직적으로 성매매 영업을 관리한 일당에게 범죄단체 조직 혐의를 적용한 것이 성범죄 관련해서는 처음일 정도다. n번방 운영진이 ‘조직’으로 인정될 만큼의 체계를 갖췄는지를 얼마나 입증하는지가 관건이라는 얘기다.
일단 경찰이 수사한 바에 따르면, 검찰이 이를 활용해 기소하는 데 있어서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어디까지 운영진으로 판단할지 여부만 검토하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조주빈은 자신에게 동조하는 회원을 ‘직원’이라고 지칭했다. 또 피해자들의 성착취 동영상 유포 및 자금세탁, 대화방 운영 등 세분화된 임무를 맡긴 것으로 파악된다. 이미 구속 기소된 운영진 중에서는 공무원도 있었는데, 거제시청 공무원 29세 A 씨는 아동 성착취물 제작에 관여했다고 경찰은 판단했다. 어느 정도 범죄 혐의가 입증된 만큼, 이들 공범들을 ‘조직’으로 보기에 충분하다는 판단이 나오는 대목이다.
하지만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운영진 각각이 ‘역할’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피해자들을 향한 핵심 범죄 내용을 공유하지 않았다면 조직으로 처벌하기 힘들다는 의견이다. 특히 운영진들은 조주빈이 ‘50대 사업가’인 줄 알았던 점 등은 익명으로 움직인 이들을 ‘조직’으로 보기 어렵다는 데 힘을 보탠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피해 여성들에 대한 협박 및 성착취, 그리고 이를 통한 수익 창출의 목적과 과정을 구체적으로 공유했음을 입증해야 하는데 증거가 없다면 어느 운영진이 이를 인정하겠느냐”며 “조직도도 없이 서로 누구인지도 정확히 모른 채 익명으로 이뤄진 이들의 범행을 ‘수직적 형태를 갖췄다’고 법원이 판단할지는 의문”이라고 얘기했다.
앞선 성범죄 판결 경험이 많은 변호사 역시 “조폭들에 대해서 범단죄를 적용하는 것은 이들이 각기 맡은 업무나 역할을 일일이 입증하는 게 제한적이기 때문에 일괄 엄중 처벌을 하기 위해서인데, 각각의 역할을 입증할 수 있다면 범단죄를 적용하지 않고 각각 처벌하면 된다”고 말했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역시 “범단죄를 적용했을 때 얼마나 조직적으로 이뤄졌는지를 입증해야겠지만 조폭들처럼 ‘규율’이나 ‘체계’가 있지 않은 점조직이면 적용이 어려워 보인다”며 “이런 사건까지 범단죄를 적용하면 2~3명 이상이 공모한 거의 모든 사건에 범단죄를 적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회의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