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방지법도 뜨거운 감자가 됐다. 3월 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n번방 관련 국회 국민청원이 안건으로 올랐으나 정작 현장에서는 다른 사안이 논의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부터다. 일부 국회의원들의 성인지감수성이 회의록을 통해 그대로 드러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피해자의 인권을 고려해 딥페이크 영상 소지만으로도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의원은 채이배 민생당 의원과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뿐이었다.
일요신문은 3월 25일 채이배 민생당 의원을 만나 당시 법사위 상황과 n번방 사건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그는 “n번방에 대한 법사위 논의가 부족했다는 비판은 수용할 수 있다“면서도 “다만 가해자를 처벌할 법 근거가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현행법으로도 최대 무기징역까지 처벌이 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다음은 채이배 의원과의 일문일답.
채이배 민생당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3일 열린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두고 말이 많다.
“절차적인 부분이 일부 생략되어 외부에서 보면 그렇게 보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여러 형태의 디지털성범죄, 이른바 ‘n번방 사건’ 해결에 관한 청원이 국회청원 1호가 됐다. 상징성이 큰데.
“디지털성범죄는 과거에 없던 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형태의 성범죄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일종의 사회 병리적 현상이다. n번방 가입자만 26만이라고 하는데 가입비가 결코 적지 않기 때문에 돈을 나눠 내고 아이디를 공유한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본다. 그렇게 치면 실제 인원은 더 많을 거다. 정말 심각한 사회문제다.”
―그런데 정작 법사위 회의에서는 n번방이 아니라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성범죄 처벌에 대한 법안만 논의돼 문제가 됐다.
“논의 안건은 국회사무처를 거쳐 법사위 테이블에 올라온다. 의원들에게는 이미 국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정리되어 온 상태였다. 실제로 국회 청원문을 살펴보면 청원의 이유가 총 3가지인데 경찰의 국제공조수사, 수사기관의 디지털성범죄 전담부서 신설,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 재조정이다. 앞서 두 가지는 수사기관의 업무이고 양형기준 조정도 대법원이 해야 할 영역이다. 엄격히 따지면 입법부인 국회에서 논의할 수 있는 부분은 없었다. ‘그럼 국회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보니 청원문에서 언급된 ‘딥페이크로 인한 성범죄’의 경우 아직까지 처벌기준이 없어 이 부분을 새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국회가 신종 디지털성범죄에 대해 안일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식이 부족한 부분은 있었다. (국회가) 전반적으로 성인지감수성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디지털성범죄 사건에 낮은 형량이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검사와 판사가 대부분 중년 남성이다 보니 지금의 성인지감수성을 따라가지 못한다. 이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국회에 더 많은 여성 의원들이 들어와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의원들이 못한다면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많이 들어야 할 필요도 있다.”
채이배 민생당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3일 법사위에서 특례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통과됐다. 법조계에서는 조주빈 등 핵심운영자들에게 적용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 개정안은 6월 25일부터 시행된다. 우리 헌법에는 ‘형벌 불소급의 원칙’이 있어서 범죄에 대한 형벌은 나중에 만들어진 법률에 의해 소급되지 않는다. 현재 시점에서는 어떠한 법을 만든다고 해도 조주빈 등 정작 n번방 범죄자들에게 적용할 수 없다. 결국 지금 있는 법으로 강력한 법을 끌어낼 수밖에 없다. 현행법을 검토해보니 n번방 주범의 경우 영리목적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제작만으로 최소 5년 이상의 징역부터 최대 무기징역까지 처벌할 수 있었다.“
―그 외 가입자들은.
“유료 가입자의 경우 이미 돈을 내고 성을 사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동‧청소년 성매수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동청소년법은 직접적 신체접촉 외에 상대방으로 하여금 수치심을 일으키는 행위 등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텔레그램이라는 온라인 공간에서 벌어진 행위라 해도 아청법 적용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렇게 되면 최대 10년 이하의 징역을 받게 된다.”
―무료 가입자는 안전하다는 이야기도 돈다.
“텔레그램의 특성을 알면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텔레그램은 동영상이나 사진을 보기 위해 누르면 자동으로 다운로드되는 시스템이다. 결국 동영상이나 사진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소지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 또한 아청법 위반으로 1년 이하의 징역을 받게 된다.”
―스트리밍(실시간 재생)을 통해 영상을 볼 경우 현행법에서 ‘소지’로 인정하지 않아 처벌 근거 조항이 없다고 한다. 새로운 법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보나.
“이 역시 행위 자체는 있었으므로 성매수 혐의로 간주해 처벌할 수 있다고 본다. 법 개정이나 추후 논의가 필요한 부분은 성인 여성 피해자들에 대해서다. 성인 여성이 피해자일 경우 성폭력처벌법에 의해 가해자의 형량을 따지게 되는데 미성년자가 피해자일 때보다 처벌이 약하다는 문제가 있다.”
―적절한 양형기준이 없어 처벌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양형기준이 없어서 처벌을 못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모든 법률에 양형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권고 사항일 뿐이다.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개별 판사가 이를 판결문에 적시하면 된다. 결국 검찰이 얼마나 강력하게 구형하고 법원이 이를 수용할 것이냐의 문제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