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은 2010년 6500억 원에 KDB생명(당시 금호생명)을 인수했지만 현재 거론되는 KDB생명의 매각가는 2000억~3000억 원이다. KDB생명 인수 후 수천억 원대 유상증자까지 했던 것을 생각하면 실제 KDB생명에 투입한 금액은 1조 원이 넘는다. 따라서 헐값 매각은 혈세 낭비라는 지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산업은행은 2010년 6500억 원에 KDB생명(당시 금호생명)을 인수했지만 현재 거론되는 KDB생명의 매각가는 2000억~3000억 원이다.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사진=임준선 기자
그러나 6500억 원 이상의 돈을 내고 KDB생명을 인수할 곳은 많지 않아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보험업계 상황이 좋지 않아 금융사나 사모펀드가 굳이 KDB생명 인수에 나설 이유가 없다”며 “그나마 보험사를 필요로 하는 KB금융, 우리금융 등은 푸르덴셜생명에 집중하고 있고, 동양생명도 잠재 매물로 꼽혀 상대적으로 매력이 떨어지는 KDB생명에 큰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KDB생명·대우건설 ‘밀린 숙제’
산업은행이 오는 3월 말까지 KDB생명을 매각하지 못하면 금융당국에 의해 과징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사모펀드가 금융사를 보유할 수 있는 기간은 최대 10년이다. 산업은행은 칸서스자산운용과 사모펀드를 구성해 KDB생명을 인수했다.
다만 산업은행이 사모펀드의 대주주이기에 사모펀드를 인수 주체가 아닌 수단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금융위에서 제재대상이 맞는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며 “잘 마무리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대우건설 매각도 이동걸 회장의 숙제 중 하나다. 산업은행은 2018년 대우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호반건설을 선정하는 등 매각에 속도를 냈지만 호반건설이 인수를 철회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대우건설은 기업가치 제고를 통해 시장 신뢰를 회복한 후 여건이 조성되면 매각을 다시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2019년 7월 기업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산업은행 자회사 KDB인베스트먼트 출범 후 대우건설 경영 정상화 및 매각 준비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이동걸 회장은 2019년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대우건설에 대해 “2년 정도의 경영 정상화를 거쳐 시기가 좋아지면 기업 가치를 높여 판매하겠다”며 “KDB인베스트먼트는 대우건설만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고, 노하우와 경험이 쌓이고 조직이 정비되면 추가적으로 (회사를) 이관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호반건설이 대우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당시 제시한 금액은 주당 7700원(약 1조 6000억 원)이었다. 대우건설 본입찰이 이뤄진 2018년 1월 19일의 주가는 주당 5960원. 따라서 경영권 프리미엄으로 주당 1700원가량이 붙은 셈이다.
그런데 최근 대우건설 주가는 2000원 후반대로 당시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대우건설의 매출이 2018년 10조 6055억 원에서 2019년 8조 6519억 원으로 줄었고, 코로나19 등으로 향후 좋지 않은 전망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이 야심차게 출범시킨 KDB인베스트먼트가 첫걸음부터 삐걱거리고 있는 셈.
대우건설의 주가가 언제 회복할지는 증권가에서도 쉽게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채상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주요 대형 건설사의 가치는 2008년 금융위기, 2015년 유가폭락 때보다 낮은 수준”이라며 “코로나19 위기로 건설사들의 가치는 저점을 갱신하는 중이며 주가로만 보자면 지금이 역사상 최대 위기”라고 전했다.
이동걸 회장이 추진해온 대우조선해양 매각은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2019년 1월 산업은행 본점에서 대우조선해양 관련 기자회견을 진행한 이동걸 회장. 사진=이종현 기자
#대우조선해양·아시아나항공 ‘쉽지 않은 마무리’
이동걸 회장이 추진해온 대우조선해양 매각도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2019년 3월 산업은행은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 인수 본계약을 체결했지만 기업결합 심사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기업결합 심사는 두 회사가 일정 이상의 매출을 내는 한국, EU, 일본, 중국, 싱가포르, 카자흐스탄, 6개국에서 이뤄지며 한 곳이라도 반대하면 인수는 무산된다. 현재까지 기업결합 승인을 내준 국가는 카자흐스탄뿐이다.
2018년 11월 일본이 세계무역기구(WTO)에 한국을 제소하면서 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은 한국 국책금융기관이 조선사에 공적자금을 지원한 것을 두고 WTO의 보조금 협정을 어기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다만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완료 시기는 미정이지만 기업결합 심사는 원만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각국이 기업결합 승인을 내주더라도 그때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각국 공정위에 해당하는 곳들이 조선업계 전문가들은 아닌 관계로 서류 확인 및 분석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특히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업계 1~2위 기업들이기에 더욱 세심하게 살펴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현재 진행 중인 아시아나항공 매각 작업도 순탄치만은 않다. 최근 항공업계가 유례없는 불황에 빠지면서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포기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다만 HDC현대산업개발 측은 꾸준히 인수 의사를 밝히고 있으며 지난 13일에는 아시아나항공 인수대금 마련을 위해 3207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도 단행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에 비해 아시아나항공은 항공기 리스 비중이 높아 인수하는 입장에서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HDC현대산업개발이 산업은행에 인수 가격을 낮춰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이동걸 회장은 취임 때부터 현재까지 기업 민영화에 의욕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있다. 2019년 3월 “회장직을 내놓겠다는 각오로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기업 민영화는 이 회장에게 1순위 과제다. 하지만 이 회장의 임기 만료일인 오는 9월까지 임무를 완수하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