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전국 2위 득표율로 대구 수성갑에 민주당 깃발을 꽂았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김 의원은 당선 이후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내는 등 여당 중진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그 사이 지역구 수성갑은 싸늘하게 바뀌었다.
현재 민주당을 보는 영남(TK·PK) 민심이 4년 전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신호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대구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김 의원도 최근 선거사무실에 계란이 던져지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일요신문은 김부겸 의원과 3월 26일 전화로 대구 상황과 현재 선거 분위기 등을 들어봤다.
김부겸 의원. 코로나19로 인해 전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최준필 기자
―선거사무실 출입문에 계란이 던져지고, 민주당과 대통령을 향한 비방글이 부착돼 논란이 됐다. 계란을 던진 사람은 잡혔지만 김부겸 의원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며 ‘증오의 정치’에 맞서 ‘통합의 정치’를 펴겠다고 했다.
“대구에서 4번째 선거인데 이런 적은 처음이다. 8년 전 처음 출마할 때도 냉대는 심했다. 예를 들면 면전에서 명함을 찢는다든가, 욕설을 한다거나. 그러나 이번처럼 비방하는 글을 부착하고 계란을 던지는 소동은 처음이다. 우리 사무실 막내가 그 계란을 치우면서 “이렇게 냄새가 지독하니깐 계란을 던지나 보네요”라고 했다. 놀랐을 텐데도 담담하게 대처해 고마웠다.”
―일종의 테러인데 왜 처벌을 원치 않나.
“이런 분들의 가슴 속엔 어떤 기존 질서나 정치권에 대한 증오 같은 게 있다. 그 증오가 진영 정치로 구분돼서 상대 진영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불신 같은 게 있지 않나. 그 분도 어찌 보면 과도한 진영 정치나 증오에 내몰린 정치의 희생자가 아닌가 생각한다. 한마디로 욱해서 그러신 것 같은데 뭐 던지면 맞아야지 어쩌겠나. 그것도 내 운명이다. 또 계란이 날아온 자리에 시민들이 꽃과 편지를 붙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정말 감사하고 힘이 난다.”
―그동안 대구를 위해 구호 물품과 1조 원 추경을 위해 노력했다고 알고 있다.
“지역 정치인들이 많지만 공교롭게도 이 시기가 미래통합당 공천 시기였다. 그래서 그분들이 움직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다행히 나를 포함해 홍의락 의원, 김현권 의원 등 민주당 의원이 전부 예결위원이었다. 그래서 정부 원안을 보고는 ‘이게 말이 되냐’, ‘이 어려운 시기에 국민들에게 빚내서 버티라는 게 말이 되냐’ 하며 싸움도 했다. 마지막에는 홍의락 의원이 정말 목숨을 걸고 ‘한번 도와달라’, ‘한 지역이 말라 죽게 생겼다. 굶어죽게 생겼다’고 해서 정부원안보다 1조 400억 원을 추가해 대구·경북에 배정했다.”
―국가 예산으로 시민 개개인에게 현금을 지급한다는 발상에 대한 우려도 있다. 전례가 있나.
“있다. 예전 농민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부채 탕감은 농민들이 진 빚을 없애준 것이어서 ‘현금 직접지급’이나 마찬가지다. 최근에도 지난 포항 지진 당시 각 가구에 ‘전파’와 ‘반파’로 나눠 현금을 지급했다. 그렇게 시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내가 어려울 때 국가는 나를 포기하지 않는구나’ ‘나는 국민이고 이 공동체의 일원이구나’ 하는 신뢰를 가질 수 있다.”
―국가의 빚이 너무 많으면 ‘진짜 어려울 때’ 필요한 공공자금을 조달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 ‘진짜 어려운 시기’는 도대체 언제인가. 나는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로 일상이 무너진 시민들에게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대출 지원만 한다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감염병이라는 도적떼가 온 국민의 살림을 거덜 내고 있는 즈음에 소득이 사라져버린 시민 개개인이 각자 빚을 내서 먹고 살거나, 아니면 국가가 빚을 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는 재정건전성 원칙 때문에 빚을 낼 수 없다. 각자 알아서 빚을 내 해결하세요’라고 말해도 되나. 그럼 국가와 국가 재정은 왜 존재하는 것인가.”
―총선이 이제 20일가량 남았다. 계란 투척한 용의자 비방 글을 보면 문재인 폐렴, 민주당 아웃, 이런 것인데 선거운동하면서 이런 이야기도 듣나.
“그렇게 노골적으로는 아니다. 사실 정부 여당 비판의 핵심은 결국 ‘정부 정책을 못 믿겠다’는 것이다. 이번 정부의 방역 대책에 대한 국민적 긍정 평가가 67% 정도 되고 대구·경북도 정부가 잘한다는 여론조사가 57% 정도 나온다. 현재 이런 분위기와 달리 초기에는 중국인 입국을 막지 않아서 확산됐다는 오해도 많았고 또 마스크 때문에 우리가 3주 정도 곤욕을 치렀다. 지금은 여론조사를 보듯 그런 부분들이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본다. 해외 평가도 그렇고, 문재인 정부의 방역 대책에 대해서 조금씩 신뢰가 높아지는 중이다. 다만 정치적으로 여러 가지 응어리 맺혔던 부분은 쉽게 안 풀리는 것 같다.”
계란을 맞은 김부겸 의원 선거 캠프 벽에는 현재 꽃과 편지가 붙여져 있다고 한다. 사진=김부겸 의원실 제공
“아직 여기는 체감을 못 하겠다. 민주당 지지율이 20% 초반대, 미래통합당에 대한 지지율이 40%대 초반이니까 우리 후보들이 모두 힘들어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 대안 없이 정부를 비판하고 화만 내는 게 결국 지역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시민들이 새로운 비전이나 도시 발전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 어렵게 하고 있다. 그래서 지역 발전 공약과, 국가의 미래 비전들을 더 열심히 제시하고 있다.”
―현재 대구 분위기는 김부겸 의원과 주호영 후보가 박빙이라는 여론 조사도 있지만 꽤 큰 차이로 주호영 의원이 이기는 조사도 있다. 2016년 20대 총선은 전국 2위 득표율이었지만 이번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때는 도전자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면 지금은 지키는 입장이라 훨씬 어렵다. 그런데다가 지역주의 정치, 진영 정치에 대한 상처들이 아주 강하게 남아있다. 정부 여당의 각종 정책에 대한 막연한 분노도 있다. 김부겸을 살려주는 게 도움이 될지, 이번 기회에 민주당을 청산해버리는 게 도움이 될지 유권자들이 아직 마음을 못 정하는 것 같다.”
―정부나 여당 지지자들과 대구의 정서는 괴리가 있을 것 같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내가 대구에서 좀 화끈하게 행동하길 바라고 대구 시민들은 정부에 대해 각을 세우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정치를 하는 사람이다. 능력이 되든 안 되든 이 공동체와 국가의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 역할을 한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다. 분노를 토해내는 것에서 그치면 안 되고, 어떻게든 문제를 풀면서 밀고 나아가 지금보다는 좋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양쪽 모두에게 비판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양쪽에서 욕을 먹는 게 나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개인의 정치적 미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곳 대구에서 민주당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1991년에 제도 정치권에 들어온 뒤 김대중·노무현·제정구 같은 선배들을 모셨다. 그들이 몸부림치는 것을 봐왔다. 내가 어떻게 되든 내 힘의 한계까지는 버텨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40대 중반·50대 초반의 출마자인 후배들도 희망을 갖고 도전할 수 있다.”
―김부겸에게 대구란 무엇인가.
“엄부(엄격한 아버지)다. 아무리 잘해도 칭찬에 좀 인색하고 잘못한 일 있으면 바로 회초리를 드셨던, 하지만 은근히 속으로는 대견해 하시던 우리 시대의 엄격한 아버지.”
―반대로 대구에게 김부겸이란 무엇일까.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