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4일부터 임시 휴장에 돌입한 세븐럭 카지노 강북점. 사진=이동섭 기자
3월 22일 익명을 요구한 카지노 업계 관계자는 “서울 시내 외국인 전용 카지노들이 여전히 성업 중”이라고 제보했다. 그는 “주말(3월 21일~22일)간 외국인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카지노 입장을 기다렸다”면서 “카지노를 이용하려는 고객 중엔 조선족을 비롯한 중국인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고 전했다. 이어 “일부 카지노가 코로나19 확진 방지 차원에서 사업장 내 고객 체류 인원을 제한했고, 이로 인해 카지노 입구에 외국인 관광객이 줄을 서 있는 풍경이 연출됐다”고 덧붙였다.
이를 확인해보기 위해 일요신문은 3월 24일 서울 광진구 소재 워커힐 파라다이스 카지노를 찾았다. 민간 기업 파라다이스가 운영하는 워커힐 파라다이스 카지노는 3월 24일 오전 6시를 기점으로 임시 휴장을 시작한 상태였다. 공고문에 따르면 임시 휴장 기한은 4월 6일 오전 5시 59분까지였다. 파라다이스 카지노는 워커힐뿐 아니라 파라다이스 시티(인천), 부산, 제주 그랜드 지점에서도 임시 휴장을 결정했다.
GKL이 운영하는 세븐럭 카지노 강북·강남점 역시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세븐럭 카지노는 전국 3개 지점(서울2, 부산1)에 대해 24일부터 임시 휴장을 결정했다. 세븐럭 카지노 또한 4월 6일 카지노 영업을 재개할 방침이다. 영업 재개 시간은 오전 6시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들 임시 휴장은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권고안’의 영향을 받은 결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GKL 관계자는 “정부가 3월 21일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하는 권고안을 발표했고, 해당 정책에 동참하려 했다”면서 “3월 23일 긴급하게 경영위원회와 이사회를 열어 3월 24일부터 휴장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문이 굳게 닫힌 파라다이스 카지노 워커힐. 사진=이동섭 기자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은 대한예방의학회 코로나19 대책위원장 직을 맡고 있는 기모란 국립암센터대학원 교수가 2월 19일 처음 제안했다. 2월 28일엔 대한의사협회가 “3월 첫째 주 1주일간 각종 모임을 자제하자”는 취지로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제안했다.
지자체를 비롯한 공공기관들도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에 속속 동참하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3월 2일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2주간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실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코로나19 사태가 중차대한 고비를 맞이했다”면서 “(서울)시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시민들과 ‘잠시 멈춤’을 강력히 실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후 코로나19는 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급속 확산됐다. 급기야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팬데믹이 선언된 상황에서도 국내 외국인 전용 카지노들 문은 닫히지 않았다. 카지노에 다녀간 외국인 중 확진자가 발견되진 않았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감안한다면 비판을 면하기 힘든 대목이다. 한 의료인은 “코로나19 확진의 가장 대표적인 유입 경로는 외국인 입국자를 통한 감염”이라면서 “카지노에선 카드나 칩 등을 통한 간접 신체접촉이 빈번히 일어난다. 여기다 밀폐된 공간임을 감안했을 때 카지노엔 적지 않은 전염병 확산 위험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감염병 전문가도 “확진자만 안 나오면 된다는 식의 배짱 영업 아니었겠느냐”고 되물었다.
코로나19 확산에도 꼼짝 않던 외국인 전용 카지노의 ‘배짱 영업’은 3월 21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회적 거리두기 권고안 발표 이후에서야 멈출 기미를 보였다. 박 장관은 “3월 22일부터 4월 5일까지 종교시설, 실내체육시설, 유흥시설 등에 대한 운영 중단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방역 주무 부처가 전국 특정 업종·업소에 한시적 운영 중단을 권고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세븐럭 카지노는 문체부 산하 준시장형 공기업 그랜드코리아레저(GKL)가 운영하는 사업장이다. 사진=이동섭 기자
정부의 강력한 권고안이 발표된 뒤 이틀이 지난 3월 23일 GKL과 파라다이스 등 외국인 전용 카지노 운영 업체들은 임시 휴장을 결정했다. 이 업체들은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권고 기한’ 시작일인 3월 22일로부터 이틀이 지난 후에야 영업을 멈춘 셈이다. 업계에서 “공공기업 GKL이 운영하는 세븐럭이 정부 권고안에 충실히 대처하지 않았다”며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GKL은 한국관광공사가 51% 지분을 가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준시장형 공기업이다.
GKL 측은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카지노 사업장 방역 작업을 통해 고객과 직원의 안전을 확보하려 최선을 다했다”면서 “사업장에서 확진자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공식 입장을 전했다. GKL 관계자는 “휴장 시기의 늦고 빠름에 대해선 드릴 말씀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정부나 지자체가 카지노 사업장 휴장을 권고한 적이 있었는지를 묻자 GKL 측은 “상급기관인 문체부에선 3월 23일 오후 2시경 휴업 권고 사항을 전했다”면서 “지자체에선 특별히 (휴장 권고를) 요청한 사항이 없었다”고 답했다.
내국인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카지노 강원랜드는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본격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던 2월 23일 임시 휴장에 돌입한 바 있다. GKL이 운영하는 세븐럭 카지노보다 한 달 빠른 시점이다. 3월 23일까지 휴장 예정이던 강원랜드는 4월 6일 오전 6시까지 임시 휴장 기한을 연장했다.
GKL의 휴장 시점은 다른 공기업들이 운영하는 사행성 산업과 비교해도 늦은 편이다. 한국마사회는 2월 28일부터 경마 일정을 중단했다. 경마는 4월 6일부터 재개될 예정이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은 2월 23일부터 경륜과 경정을 미시행했다. 3월 24일이었던 경륜·경정 미시행 기한은 4월 9일까지로 연장됐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