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청명 전남 대표이사는 구단이 어려운 시기 경영을 맡은 것에 대해 “경영자로서는 행운”이라며 웃었다. 사진=이종현 기자
전남은 이외에도 오랜 기간 팀에서 활약한 프랜차이즈 스타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선수들로 스쿼드를 채우며 팬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에 팬들과 구단 수뇌부의 만남인 간담회를 여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겨울 K리그2에서 화제를 모았던 전남 조청명 대표이사를 만났다.
1980년대 후반 포스코에 입사해 주요 직책을 거친 조청명 대표는 지난해 2부리그로 강등된 전남을 수습할 인물로 낙점을 받았다. 스포츠 구단 대표로는 처음 맞는 시즌, 그는 지난 한 해를 “롤러코스터 같았다”고 표현했다.
“기업 경영만 하다가 스포츠 구단으로 오게 돼 ‘얼마나 재밌겠어’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1부리그에서 갓 내려온 팀이기에 성적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롤러코스터 탄 1년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전남은 개막과 동시에 곤두박질쳤고 순위는 최하위를 전전했다. 전반기를 지나고 나서야 반전을 이뤘다. 조 대표는 “성적 극복을 위해 적응에 힘겨워하던 외국인 감독과 작별하고 공격수를 보강하며 반등했다. 하반기 성적만으로는 2위(최종 순위 6위)다”라며 웃었다.
최근 수년간 전남은 추락을 거듭해왔다. 2017년 힘겹게 강등을 피했지만 결국 이듬해 최하위를 기록하며 2부리그로 향했다. ‘1년 만에 승격한다’는 의지를 보였던 2019시즌엔 6위에 그치며 승격에 실패했다.
하지만 전남은 만년 하위권에만 머물던 팀은 아니다. 허정무, 박항서, 하석주 등 스타 감독들이 거쳐 갔고 김남일, 김병지, 김태영, 노상래, 윤석영, 지동원 등 국가대표 선수들을 배출했다. 리그 우승 경험은 없지만 FA컵에서는 세 번(1997, 2006, 2007)이나 우승컵을 들어올리기도 했다.
롤러코스터와 같은 1년을 겪은 조 대표에게 ‘하필 왜 이런 시기에 팀을 맡았나’라는 원망은 없는지 물었다. 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경영자로서 행복한 사람이다”라며 “물론 그 집단이 좋은 상황에서 경영을 맡으면 즐기면서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전에 있던 곳도 어려운 시기에 내가 가게 됐다. 힘든 상황에 있었기에 반전을 이뤄내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브라질 출신 공격수 바이오는 지난 시즌 전남의 후반기 상승세를 이끌었지만 2020 시즌에는 대전의 유니폼을 입게 됐다. 바이오(왼쪽)와 조청명 대표이사.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외국인 공격수 바이오의 이적 건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 전남 구단은 지난 2월 초 ‘신뢰와 동업자 정신을 저버린 대전 하나시티즌의 비도덕적인 바이오 영입 추진을 규탄한다’는 성명문을 내걸었다. 지난 시즌 바이오를 임대로 활용했던 전남 구단이 완전 영입을 위해 협상 중인 상황에서 대전이 끼어들어 선수를 빼앗아 갔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여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더 많은 금액을 제시하는 쪽으로 선수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며 축구계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반론이 터져 나왔다. 이에 대해 조 대표는 “우리(전남)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부분이기도 하다”면서도 “그럼에도 ‘창피하지만 할 말은 하자’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축구계도 격이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운동장에서는 물론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구단 간 비즈니스적으로는 동업자라는 생각이 필요하다고 본다. 당장 눈앞의 성과보다 함께 리그를 가꾸고 꾸려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팬들 입장 먼저 생각하자”
조 대표는 바이오 이적 사태를 ‘새치기’에 빗대 설명했다. “이번 이적이 법률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분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관습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는 할 수 있다”면서 “새치기당한 사람에게 무능을 탓할 것인가, 새치기한 사람에게 휘슬을 불 것인가 생각했다. ‘휘슬 블로어(내부고발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새치기를 하면 안 되겠다’는 사회적 인식도 생길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승격·강등 팀 숫자를 정하는 과정(이번 시즌 상주시와 상무의 계약 종료로 연고 이동이 불가피해 강등이 돼야 하는 상황)에서도 눈앞의 이익보다 리그 전체의 발전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 대표는 “구단들이 서로 자신의 유불리만 따지기에 바쁘다. 팬들 입장에서 어떤 모습이 즐거울지 생각하면 어려운 결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조청명 대표이사는 2020 시즌 K리그2 전망으로 “제주, 대전, 경남과 우리(전남)의 4강 싸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진=이종현 기자
전남을 떠난 이는 바이오뿐만 아니다. 2020시즌을 앞두고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했던 김영욱, 이슬찬, 한찬희 등도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오랜 기간 팀에 주축으로 뛰어온 선수들이기에 전남 팬들의 상실감은 컸다. 조 대표는 “변화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전남은 부진을 반복해왔다. 선수단에 변화를 줄 시기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자극이 될 것으로 본다. 내가 축구 전문가는 아니기에 100% 성공한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전경준 감독이 꾸린 코칭스태프, 선수단에 대한 신뢰가 있다. 전 감독의 의사를 많이 반영하려 노력했다.”
#“프런트 역량 키울 터”
조청명 대표는 또 “전남의 문제는 축구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면서 “구단 프런트의 역량도 취약한 상황이었다”는 진단했다. 그는 “처음 구단에 취임해서 살펴보니 3년 이상 근무한 직원이 3명뿐이었다. 스포츠계에선 ‘1시즌 행복하려면 좋은 선수, 3년 행복하려면 좋은 감독, 명문 구단이 되려면 좋은 프런트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프런트 강화를 위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1년의 풍파를 겪은 조 대표는 새로운 2020시즌을 기약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일정이 확정되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리그 개막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우리 팀이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일지 궁금하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축구팬의 한 사람으로서도 흥미진진하다. 이번 시즌 K리그2에는 대기업 구단인 제주 유나이티드가 내려왔고 대전 하나시티즌은 운영 주체가 바뀌었다. 경남 FC도 무시 못할 팀이다. 이들과 우리가 4강을 형성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강등 첫 해 실패를 맛본 전남의 이번 시즌 목표는 당연히 승격이었다. 조청명 대표는 “우승을 하든 플레이오프를 거치든 이번 시즌은 다시 1부리그로 올라가는 기점이 돼야 한다. 작년엔 문제를 인식하고 뭘 해야겠다고 파악한 시간이라면 올해부턴 개선해나가는 시간이다”면서 “궁극적으로는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구단이 되고 싶다. 탄탄한 구단 운영으로 지속가능한 성적을 내며 지역민들과 연대감을 형성하는 구단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