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빈에 대한 관심과 ‘박사방’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본질을 다른 이슈로 돌릴 유일한 방법은 ‘리스트’다. 유명인들이 대거 ‘조주빈 리스트’에 연관돼 있다면 사회적 관심이 그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크다. 조주빈이 종로경찰서에서 포토라인에 섰을 당시 모습. 사진=고성준 기자
생각보다 무서운 존재다. 조주빈에 대한 관심과 ‘박사방’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본질을 다른 이슈로 돌릴 유일한 방법은 ‘리스트’다. 유명인들이 대거 ‘조주빈 리스트’에 연관돼 있다면 사회적 관심이 그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수사기관이 확보하는 방식이 아닌 조주빈이 하나둘 던지듯 공개하는 형태라면 정말 문제다. 조주빈이 짜 놓은 시나리오에 따라 한국 사회가 출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기 리스트 더 있나
경찰에 검거된 직후 자신은 ‘박사’가 아니라고 주장한 조주빈은 두 번째 조사에서 박사임을 인정했다. 그런데 계속 손석희 JTBC 사장과 윤장현 전 광주시장 사기사건 진술만 반복했을 뿐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고 한다. 그리곤 포토라인에서도 돌연 사기 사건 피해자인 유명인들의 이름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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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라인에 선 조주빈은 돌연 손석희 JTBC 사장과 윤장현 전 광주시장, 그리고 김웅 프리랜서 기자의 이름을 언급했다. 이후 검색어 1위 자리는 바로 ‘조주빈’에서 ‘손석희’로 돌변했다. 사진=이종현 기자
조주빈의 사기 범죄 형태로 볼 때 또 다른 유명인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프로파일러는 “검찰 송치 당시 포토라인에서의 모습을 보면 시선에 흔들림이 없고 목소리도 갈라지지 않는 등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였다”라며 “자신이 벌인 사기 범죄의 유명인 피해자가 더 있다면 앞으로도 유사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 유명인들을 언급하면 언론이나 대중이 관심을 보이니까 의도를 갖고 던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주진모 카톡 유출을 자신이 했다고 말한 것처럼 변호인이나 공범 등을 통해 외부로 자신의 이야기를 흘려보낼 가능성은 있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자신을 과시하려는 시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며 “여전히 일베나 텔레그램에 있을 수 있는 추종자들에게 자신이 거물임을 과시하려는 욕구가 있는 것 같다. 자기를 바라보는 시선, 이미지, 자존심, 온라인상에서의 캐릭터, 영향력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했다.
#만만치 않은 유료회원 찾기
‘박사방’ 유료 회원이 누군지를 밝히기 위해 경찰과 검찰 수사력이 집중되고 있다. 법무부도 검찰에 일반 참여 회원에 대한 적극적인 처벌을 지시했다. 이렇게 수사망이 좁혀오자 전남 여수에서 20대 남성이 자살을 시도하고 한강 영동대교에선 40대 남성이 투신하는 사건이 이어졌다. 둘 다 텔레그램 성착취 대화방 유료 회원으로 알려졌다.
시민단체에선 ‘박사방’ 유료 회원은 최대 26만 명까지 추정하고 있지만 중복 회원을 제외하면 1만여 명 정도일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가운데 유명인도 여럿 포함돼 있을 수 있다. 수십만 원에서 100만 원 이상을 내야 참여가 가능한 터라 예상 외로 유명인사 내지는 그들의 자제가 다수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수사가 난항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안전과는 빗썸, 업비트, 코인원 등 가상화폐 거래소 3곳과 대행업체 베스트코인을 압수수색하고 관련 자료를 확보해 분석 중이다. 그런데 조주빈이 유료 대화방 입장료를 받기 위해 공개했던 3개의 암호화폐 지갑 가운데 2개는 조주빈의 것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그냥 인터넷에 떠도는 지갑주소를 자신의 것인 것처럼 공개해 검거됐을 때 수사가 난항을 겪도록 대비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 입금은 유료 회원과의 일대일 대화에서 따로 알려준 자신의 지갑 주소를 통해 이뤄졌다. 국내에서는 암호화폐 거래를 하려면 신원을 기록해야 해 금전 거래만 확보하면 신분 특정이 가능하지만 아직 수사는 가짜 암호화폐 지갑에서 허탕을 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본사가 독일인지 러시아인지도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텔레그램이 수사에 협조할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안전과는 빗썸, 업비트, 코인원 등 가상화폐 거래소 3곳과 대행업체 베스트코인 등을 압수수색하고 관련 자료를 확보해 분석 중이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고성준 기자
#VIP 리스트 존재 가능성 높지만 압수수색만으론 한계 분명
결국 ‘리스트’ 확보를 위해선 조주빈의 수사 협조가 절실하다. 예를 들어 조주빈이 실제로 입금을 받은 암호화폐 지갑 등을 수사기관에 제공한다면 관련 수사는 급물살을 탈 수 있다. 그렇지만 이는 은닉한 범죄 수익과 관련된 부분이라 조주빈이 끝까지 함구할 가능성이 크다.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조주빈은 경찰에 검거될 당시 인천 소재의 한 정부지원 임대주택에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본인 소유의 자동차도 없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지만 호화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나마 집에서 1억 3000만 원의 현금이 발견돼 어딘가 범죄 수익이 은닉돼 있을 것이라는 추정만 가능한 상황이다. 그만큼 수사기관은 조주빈이 은닉한 범죄 수익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조주빈이 ‘VIP 리스트’를 갖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언급한 ‘조주빈 사기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유명인은 물론이고 ‘박사방’ 유료 회원 가운데 유명인의 리스트를 별도로 관리했을 수 있다. 조주빈은 ‘박사방’을 운영하며 유로 회원에게도 신상정보를 요구했기 때문에 충분히 유명인 회원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었다.
만약 그런 리스트가 존재한다면 자택 압수수색을 통해 수사기관이 확보할 수 있지만 조주빈이 검거된 임대주택에선 관련 증거를 못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범죄 수익과 함께 VIP 리스트 등이 어딘가 은닉돼 있을 것으로 보여 경찰과 검찰 수사력도 여기에 집중되고 있다. 검찰은 조주빈이 VIP 회원들의 경우 메신저 위커(Wickr)를 통해 별도 관리한 정황을 포착해 이 부분도 수사 중이다.
조주빈이 종로경찰서 포토라인에 선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이 조주빈의 강력처벌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앞서의 프로파일러는 “공범들이 남긴 행적을 보면 언젠가는 잡힐 것을 예상하고 수사기관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대비한 듯하다”며 “이런 점으로 볼 때 조주빈도 최소한의 대책을 세워놨을 것으로 보인다. 유명인 리스트가 실물로 존재한다고까지는 확신할 순 없지만 머릿속으로 구상 정도는 해놨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조주빈이 이런 VIP 리스트 속 인물들을 하나둘 공개하기 시작하면 한국 사회는 커다란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만약 총선 출마 후보의 자제 가운데 ‘박사방’ 유료 회원이 있다면 선거 판세가 흔들릴 만큼 파괴력이 크다. 역시 가장 두려워하는 곳은 연예계다. 한 중견 연예기획사 대표는 “만약 인기 그룹 멤버가 연루돼 있다면 그 그룹이 해체되고 조주연급 배우가 포함돼 있다면 그가 출연하는 드라마나 영화의 제작이 무산될 수도 있다”며 현재 연예계 분위기를 전했다.
물론 그런 유명인의 이름이 담긴 리스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조주빈은 이슈 전환을 위해 허위로 유명인의 이름을 언급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연예인 휴대폰 해킹 사건이 불거질 무렵 조주빈은 ‘박사방’에서 자신이 주진모의 휴대폰을 해킹해서 협박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경찰 수사 결과 거짓말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조주빈의 입에서, 비록 거짓말일지라도 어느 유명인의 이름이 거론되면 한국 사회는 또 한 번 술렁일 수밖에 없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