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국내 확산의 주요인으로 꼽히는 종교단체 신천지를 빗대어 만든 듯한 드라마 ‘구해줘1’이 새삼스레 재조명되고 있다. 사진=구해줘1 포스터
드라마 ‘구해줘1’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포털사이트 웹툰에 연재된 조금산 작가의 ‘세상 밖으로’가 원작이다. 새하늘님이라는 구원자의 호칭부터 흰색 정장을 입은 교주의 모습과 바닥에 꿇어 앉아 예배 하는 모습 등이 신천지를 연상케 한다.
드라마 도입부에 등장하는 소싸움 장면이나 소 농장 장면은 자연스레 소싸움으로 유명한 경북 청도를 떠올리게 한다. 청도는 신천지 교주인 이만희 총회장의 고향이다. 실제로 신천지 신자들은 이만희 총회장 생가가 있는 청도로 순례여행을 하는 등 성지로 추앙한다고 알려져 있다. 직접적으로 극의 배경이 청도임을 보여주는 신도 있다. 정말 순식간이지만 드라마 속 경찰서에서 ‘청도/사기/도박 관련’이라는 파일이 꽂힌 캐비닛 장면이 휙 지나가기도 한다.
초기에 코로나19의 감염 확산지로 집중 조명된 청도대남병원은 청도에서 제일 큰 종합병원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발생한 요양원과 폐쇄정신병동이 함께 있다. 병원 한가운데에는 청도군 보건소까지 있다. 보건소는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지역 내에서 그저 싼값에 예방주사를 맞는 곳만은 아니다. 지역의 의료기관을 관리하는 것도 보건소의 역할 중 하나다. 그런 보건소가 사립 병원과 붙어 있다는 것이 언뜻 이해가지 않는다. 대남병원에는 건강증진센터까지 있다. 청도의 지역사회와 청도대남병원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을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드라마에서도 종교단체인 구선원은 요양원 및 정신병동과 하나로 붙어있고 시설들을 관리한다. 드라마 속 구선원의 실세 중 한 명인 강사도(박지영 분)가 간호사 출신이라는 것부터 포교와 살림을 이끌면서 병원의 약제 관리까지 하고 있다는 설정 역시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일요신문 기사를 통해 청도대남병원의 전신이 구덕원이라고 밝혀진 바 있다(관련기사 코로나19 사망자 속출, 청도 대남병원 족벌경영의 민낯). 실제 구덕원은 각종 비리로 얼룩져 있었다. 드라마에서 가짜 환자와 처방전을 만들어 약을 빼돌리고 환자수를 늘려 보조금을 받는 스토리는 실제로 구덕원의 비리 중 일부라고 의심되는 부분이다.
‘구해줘1’의 한 장면.
#구선원과 신천지, 소름끼치는 연결고리
“글마들이 여기 오기 전에 어디 있는지 알아냈다. 대구!”
1인 방송을 하는 주인공 친구 우정훈(이다윗 분)은 제보를 통해 신천지를 떠올리게 하는 종교단체 구선원의 본산이 대구라고 밝혀낸다. 사실 구선원의 본원이 대구인지 아닌지를 밝히는 것은 극 중에서는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다. 특별한 연계 사건이나 인과가 없다. 단지 작가가 한번쯤 대구를 언급하고 싶었던 것으로 느껴진다.
드라마 곳곳에는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모를 정도로 잔잔하게 숨겨놓은 상징도 많다.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 친구의 이름이 ‘만희’라거나 군수가 이장이었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이장당선시계’를 소중하게 차는 장면은 최근 이만희 총회장이 국민 앞에 엎드려 사죄하며 부각된 일명 ‘박근혜시계’를 떠올리게 한다. 주인공인 한상환(옥택연 분)과 석동철(우도환 분)이 싸운 뒤 뻗은 아스팔트 바닥에 청도지역을 상징하는 싸움소의 그림도 순식간에 휙 지나간다. 그 상징을 알아보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숨은 그림 찾기다.
아스팔트 바닥에 청도지역을 상징하는 싸움소 그림이 그려져 있다. 사진=구해줘1 캡처
드라마에서 영의 아버지라 불리는 영부 백정기(조성하 분)는 신천지 총회장 이만희를 연상케 한다. 영모와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애쓰는 모습에서 이 총회장과 최근까지 사실혼 관계였던 김남희 씨가 떠오른다. 신천지에서 만민의 어머니라 불린 김남희 씨가 유튜브에서 폭로한 것처럼 김남희 씨는 스스로를 ‘이만희의 육적부인’이라 인정했다.
김남희 씨는 유튜브에서 “나는 이만희와 혼인 전 두 아이의 엄마이자 유부녀 상태였지만 자신과 결혼하지 않으면 가족 모두 죽을 수 있고 구원받지 못한다는 이만희 총회장의 꼬임에 넘어가 가정을 파탄내고 이만희와 결혼했다”고 폭로했다. 드라마 속에서도 영부는 상미(서예지 분)를 영모로 만들기 위해 그녀와 가족들을 상대로 영적 죽음과 구원을 미끼로 설득하고 협박한다.
드라마상 전도 수법도 신천지와 판박이다. 드라마 속에서 강의하듯 포교법을 설명하는 과정은 신천지의 센터강의와 비슷하고 거리 설문조사나 심리상담으로 위장한 포교도 마찬가지다. 탈퇴한 전 신도에 따르면 신천지에서는 일반적으로 거짓말을 동원해서라도 신천지임을 숨기고 포교하라고 가르치는데 이를 일명 ‘모략포교’라 칭한다. 드라마에서도 같은 방식의 포교법을 설명하며 ‘구원책략’이라 부른다. 친밀함을 이용해 지인부터 공략하고 마음이 힘든 사람에 접근하는 방식도 같다. 드라마는 신천지 탈퇴자들의 증언처럼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자주 만들어 일상에서 은근히 세뇌를 시키는 방법도 보여준다.
신천지에서는 일반적으로 거짓말을 동원해서라도 신천지임을 숨기고 포교하라고 가르치는데 이를 일명 ‘모략포교’라 칭한다. 드라마에서도 같은 방식의 포교법을 설명하며 ‘구원책략’이라 부른다. 사진=구해줘1 캡처
신천지에서 포교 대상자를 ‘열매’라 칭하고 전도가 완성되는 것을 ‘열매를 딴다’고 표현하는데 드라마에서도 방식이나 단어가 같다. 20대의 여자나 젊은 가정주부 등이 신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도 유사하다. 복음방과 센터를 거쳐 6~7개월간의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시험까지 치르는 신천지처럼 드라마에선 기초영성훈련 3주 과정을 이수해야 영부님을 볼 수 있다는 설정을 해놨다. 다만 드라마 속 예배당과 신도의 규모는 단출한 것에 비해 실제 신천지는 대규모 예배당을 갖추고 정렬해서 앉는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드라마 후반부에 이르러 사건을 캐내기 위해 구선원에 잠입한 사회부 기자 홍소린(전여빈 분)이 사회부 선배와 하는 대화에선 소름이 끼친다. “이건 내 촉인데 단순히 종교랑 정치유착 관계만은 아닌 거 같아. 여기 무지군이 발칵 뒤집힐 거야. 아니 어쩌면 대한민국 전체가 뒤집힐 수도 있어.” 신천지로 인해 대한민국이 지금처럼 발칵 뒤집힐 것을 2년 전 드라마 속에서 예언한 셈이다. 이쯤 되면 원작의 웹툰 작가가 뭔가 알고 쓴 것이 아닐까 상상하게 된다.
드라마 구해줘1은 구선원이라는 사이비 종교집단을 큰 주제로 학교폭력과 병원비리, 정치인과 경찰 등의 유착 등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사진=구해줘1 캡처
드라마는 매 회 도입부에서 “본 드라마에 등장하는 특정 단체, 지역, 종교, 인물은 허구임을 밝힙니다”라고 공지하고 있다. 드라마가 허구라고 밝히고 있으니 드라마를 빗대어 쓴 이 기사 역시 어쩔 수 없이 허구에 기반한 것임을 밝힌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